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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버드나무 여신 /이성희

한국적인 美 수양버들 어디 가고

삭막한 이 도시에 가로수는 온통 외래종뿐이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1-03 20:37:32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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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포 전, 민주공원 전시관에서 열린 고 박병제 화백 회고전을 보기 위해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산복도로를 지나게 되었다. 산복도로는 지상의 도심과는 다른 풍경, 다른 시간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었다. 영락없이 박병제 화백의 그림인 골목의 풍경이며, 바다쪽으로 탁 트인 시야에는 한 도시의 현재와 역사가 뒤섞이며 굽이를 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디쯤이었을까, 우리는 길가에 늘어선 수양버들을 발견하고 함께 자못 감회에 젖었었다. 그리고 보니 최근에 이 도시에서 버드나무를 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수양버들은 흔한 나무였다. 내 기억에는 그 시절, 부산의 가로수 대부분도 수양버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턴가 저들이 뽑혀져 나가고 외래종 나무들이 심겨졌다. 이른 봄, 연초록 물이 드는 수양버들 실가지들이 바람을 타고 넘실거리는, 선율 같은 아름다운 춤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단원 김홍도의 명품 '마상청앵도'는 봄날 말을 타고 가던 선비가 버들가지 위에서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를 듣고 돌아다보는 그 한 순간의 우주적 교감을 멋지게 포착하고 있다. 그림 속의 제화시는 이렇게 읊고 있다. "가인이 꽃 아래에서 천 가락 생황을 부니/시 짓는 선비가 술상 위에 귤 한 쌍 올려놓았나?/어지럽다 황금빛 베틀 북이 실버들 물가를 오고가더니/비안개 자욱하게 이끌어다가 봄날의 강에 비단을 짜 놓았구나." 실버들 가지가 씨실이 되고 그 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는 노란 꾀꼬리가 베틀 북이 되어 비단 같은 강의 풍경을 짠다는 멋진 비유는 그림에 못지 않는 절창이다. 그 외에도 우리는 김소월의 시 '실버들', 민요 '천안삼거리', 그리고 숱한 산수화와 이조백자의 문양 속에서 반복되는 버들의 상상계를 만난다.

사실 버들이 환기시키는 상상계는 아득한 신화 세계의 여명에까지 확장된다. 저 신화의 강에서 해모수를 만나 주몽을 잉태하는 유화(柳花)야 말로 버드나무의 여신이다. 유화는 남신의 아내, 영웅의 어머니 역할에서 끝나는 조연이 결코 아니다. 그녀는 상고대 동북아시아 최고의 위대한 어머니 여신이다. 고구려의 제천의식인 '동맹'은 동굴 속에 있는 유화신을 모셔오는 의례를 통해서 비로소 시작되며, 해모수가 아니라 유화가 주몽과 더불어 고려시대에까지 숭배를 받았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우리와 고대 역사의 터를 같이 했던 만주족의 신화 속에도 유화는 등장한다. 만주족의 시조 포고리옹순을 낳은 불고륜은 만주족의 창조신이자 시조모신인 푸투마마와 동일인이다. 그런데 푸투마마를 한문으로 번역하면 유마마(柳媽媽), 즉 유화이다.

일반적으로 나뭇가지는 위를 향하여 뻗기 마련이다. 그런데 버드나무의 가지는 아래를 향해 휘늘어진다. 늘어지며 능청거리는 멋은 음(陰)적이고 여성적이다. 우리 동양문화는 표면적으로는 유교와 같은 남성적 질서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그 심층에는 여성적인 흐름이 도저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 여성적 흐름은 노자와 장자의 위대한 사상으로 용출되기도 하고, 은사(隱士)의 문화와 예술로 이어졌다. 동양의 가장 대표적인 은거 시인인 도연명은 집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가 있었다고 해서 오류선생(五柳先生)으로 불렸다. 시와 은거와 버드나무는 이렇게 어울린다.

한국의 전통미는 버드나무와 더욱 친근하다. 우선 조선의 의상은 심을 넣어 윤곽을 유지하는 서양의 의상들과는 달리 도포자락, 치마, 옷고름이 아래로 능청거리며 흐른다. 조선의 춤도 그렇다. 서양춤이 솟구치는 도약을 중심으로 한다면 우리 춤은 아래로 흐르면서 바람을 타는 능수버들처럼 살짝살짝 추겨 올린다. 스란치마를 추겨 올리는 버선코처럼. 아악의 유장미도 또한 버들의 선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도시에 부드럽게 물결치는 버들의 곡선이 사라진 것은 어쩌면 우리 문명과 도시가 지나치게 남성화되고 있는 것과 연관된 것은 아닐까? 지나친 경쟁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근육과 감성, 모든 것을 직선화시키는 개발 강박증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화의 새벽을 열던 버드나무 여신은 어디로 갔을까? 휘늘어지는 곡선으로 굽이를 트는 산복도로에서의 상념이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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