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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세종기지 앞바다가 얼 때 /장순근

지구가 더워진 요즘 언 남극 바다 보는 건 흔치 않은 행운… 남극은 추워야 제맛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6-08 20:57:34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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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반구가 한여름인 요즘 남반구는 한겨울이다. 한겨울이 되면 기지를 지키는 월동대원들이 한결같이 바라는 게 있다. 바로 세종기지의 앞바다가 어는 것이다. 바다가 얼면 넓은 운동장이 생기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 위를 지나 외국기지도 갈 수 있다. 또 바다낚시도 할 수 있다. 날씨가 좋으면 얼어붙은 바다 위에서 불고기 잔치를 벌여도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출렁거리는 바다가 얼었다는 게 신기하다.

그러나 기지의 앞바다는 쉽사리 얼지 않는다. 얼음이 얼만한 조건이 돼야 언다. 먼저 6월 하순이나 7월 초순 들어 기온이 영하 7~10도 정도로 내려가고 바람이 일주일 정도 불지 않으면 바다표면의 광택이 없어지고 부옇게 된다. 그러다가 갑자기 언다. 그러나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얇은 얼음은 곧 깨진다. 바람이 멎으면 다시 언다. 어느 정도 언 다음은 웬만한 바람이 불어도 깨지지 않는다. 깨지기에는 얼음이 너무 두껍기 때문이다. 그 다음부터는 눈이 쌓여 얼음은 점점 두꺼워진다. 그러므로 바닷물이 언 얼음은 전체 얼음두께의 5분의 1 정도이고 나머지는 눈이 쌓인 것이다.

남극에서 네 번(1988년 2월∼1989년 2월, 1990년 11월∼1992년 1월, 1994년 11월∼1995년 12월, 2000년 11월∼2001년 12월) 월동하는 동안, 바다는 마지막 월동을 빼고 세 번 얼었다. 큰 행운이었다. 바다 한가운데 얼음의 두께는 50∼60cm 정도이며, 1991년 10월에는 8t짜리 러시아기지의 수륙양용차가 그 얼음을 건너서 우리 기지로 왔다 돌아갔다. 또 이론상으론 작은 비행기가 내려앉아도 된다. 기지를 찾아온 아르헨티나 조종사의 말로는 자기 비행기는 해빙의 두께가 30cm면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세 번째 월동에서는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다. 바로 1995년 7월 초순이었다. 아침에 바닷가에 갔다가 본 광경에 깜짝 놀랐다. 두께 7∼10cm 정도에 크기가 60∼80cm 된 얼음조각들이 "보도블록을 쌓아놓은 것"처럼 불규칙하게 해안을 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며칠 전 살얼음으로 덮였다가 얼었던 바다얼음이 깨진 것이었다. 얼음조각들이 이리저리 쌓인 그 모양이 참 신기했는데 당시 서울에서 있었던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직후의 모습과 비슷했다(우리는 그 모습을 칠레TV에서 보았다). 시간이 가면서 얼음은 더 높게 쌓였다.

이렇게 된 데는 날씨의 조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전날 아침 초속 6∼8m의 북동풍이 저녁때에는 초속 24m를 넘었다. 당일 아침 풍향이 북북동으로 바뀌었지만, 강한 바람이 계속 불면서 바다얼음이 깨졌다. 그러면서 바람이 북풍이라 남쪽인 기지 쪽 해안의 얼음이 먼저 깨졌다. 기지 앞바다의 북쪽은 위버반도에 가려져 바람의 힘을 덜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지 해안 쪽 얼음이 먼저 깨지고 얼음이 흔들리면서 북쪽의 얼음도 깨져 바람에 밀려와 남쪽에서 깨졌다. 얼음조각이 기지해안으로 밀려왔고 얼음의 뜨는 힘 때문에 얼음조각들은 점점 높아졌다.

이로써 풍향과 풍속과 지형과 얼음의 두께가 잘 어울려 생긴 보기 드문 광경을 연출했다. 곧 얼음을 깰 만한 풍속과 깨진 얼음을 기지 해안으로 보낸 풍향, 바람을 막아 바다얼음이 천천히 깨지게 한 북쪽의 위버반도, 바람에 깨질 정도의 두께를 한 바다얼음이 묘하게 조합된 결과이다. 어느 하나라도 빠졌다면 그런 신기하고 보기 드문 광경을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그 전이나 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며칠 지나 얼음조각들이 눈에 덮였고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면서 바다는 다시 얼었다.

최근 지구가 더워지면서 세종기지 앞바다는 덜 언다. 얼어도 어는 시간이 짧아진다. 그래도 2009년 겨울 기지의 앞바다는 7월 하순부터 10월 초순까지 오래 얼었다. 그런 의미에서 22차 월동대(대장 진영근 박사)는 행운이었다. 2009년 세종기지의 연평균기온은 영하 3도로 1991년과 함께, 세종기지가 준공된 이래 가장 추운 해였다. 작년이 워낙 추워 올해는 덜 추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바다가 얼면 좋겠다.

남극은 추워야 남극이다. 또 바다가 얼어야 낯선 경험을 할 수 있다. 남극만세! 월동연구대 만세!

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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