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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영화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

“난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1호…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 6년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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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 외길… 최고참 73세 감독

- 도쿄서 작품상 받은 ‘하얀 전쟁’
- ‘빨갱이’라는 불명예 딱지 안아

- 독재 정권의 고문 그린 ‘남영동’
- 사회문제 다뤄 블랙리스트 올라
- 어떤 작품 준비해도 투자 못 받아

- 지난주 개봉한 금융 비리 신작
-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다뤄
- 100만 관객 돌파하며 흥행 가도

1946년에 태어났으니 올해로 73세인 정지영 감독은 열 살 많은 임권택 감독과 더불어 한국 현역 감독 중 최고참이다.
1970년대 중반 김수용 감독의 연출부로 영화판에 들어와 40여 년간 한국 영화만 생각하며 걸어온 정지영 감독. 최근 그가 연출한 ‘블랙머니’는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김정록 기자
하지만 그는 ‘최고참’ ‘거장’과 같은 수식어를 반기지 않는다. 항상 청년의 마음으로 열정을 쏟아 창작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무로의 영원한 청년’ 혹은 ‘충무로의 사회파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린다. ‘남부군’(1990) ‘하얀 전쟁’(1992)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 ‘부러진 화살’(2011) ‘남영동 1985’(2012) 등의 사회성 강한 대표작과 지난 13일 개봉해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블랙머니’를 봐도 그에게 왜 이런 수식어가 어울리는지 알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김수용 감독의 연출부로 영화판에 들어와 40여 년간 한국 영화만 생각하며 걸어온 정 감독을 만나 그의 신작 ‘블랙머니’와 그의 외길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사회파 감독의 길

“우리가 사는 사회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 지식인의 자세다. 그런데 영화로 그것(사회 문제)을 표현하는 감독이 많지 않으니까 내가 하는 거다.” 짧고 명쾌하다. 1990년 당시 금기시되던 ‘빨치산’을 소재로 한 ‘남부군’, 1992년 베트남 전쟁을 한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최초의 영화 ‘하얀 전쟁’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되는 사회적 분위기임에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나를 변화시킨 첫 번째는 87년 6월 항쟁이에요. 당시 영화 검열이 없어지진 않았지만 국민이 정권을 이겼다고 생각했고, 영화를 만들 때 국민을 믿고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내 영화의 경향을 바꿀 수 있었어요.”

두 영화는 전쟁과 이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고, 빨치산의 인간적인 면모나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한국 군인들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정 감독에게 ‘빨갱이’라는 주홍글씨가 붙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사회적 시각을 무릅쓰고 영화를 완성했다. “한 번 더 자신감을 얻은 것은 ‘하얀 전쟁’이에요. 당시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정지영이가 국제영화제 가서 상을 받네’ 그랬죠.” 그는 ‘하얀 전쟁’으로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감독상을 수상하며 충무로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떠오른다.

‘남부군’ ‘하얀 전쟁’ 이후 문제적 감독이자 흔치 않은 충무로의 사회파 감독으로 손꼽히던 정 감독이지만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블랙잭’(1997) ‘까’(1998)가 잇따라 관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13년이라는 긴 터널을 걷던 그는 ‘부러진 화살’로 돌아왔다.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그리고 블랙리스트

영화 ‘블랙머니’ 현장에서 양민혁 검사 역의 조진웅(가운데)과 촬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정지영 감독.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8년간 ‘아리랑’을 준비할 때 ‘부러진 화살’을 만났어요. 문성근 씨가 건네준 서형 작가의 르포 소설 ‘부러진 화살’을 보고 ‘이거다’ 했어요.” 대학 입시시험에 출제된 수학 문제 오류를 지적한 뒤 부당하게 해고된 김경호 교수가 담당 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하며 공정한 재판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부러진 화살’은 우리 사회에 공정과 원칙, 상식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며 340만 관객을 기록했다.

정 감독은 그 기세를 몰아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자전적 수기 ‘남영동’을 원작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간 대학생이 간첩 활동에 대한 거짓 진술을 토해내는 고문의 과정을 그린 ‘남영동 1985’를 연출했다. 1980년대 군부 정권에 저항했던 운동권 학생과 가혹했던 독재 정권의 고문을 그린 영화였으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블랙리스트 꼬리표였다. 박근혜 정부의 예술인 블랙리스트에서 그는 맨 앞자리였다. “당시 사회 문제를 들고 나오면 투자가 안 될 것 같아서 멜로와 사극, 두 편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투자가 안 되더군요. 나중에야 블랙리스트 정지영은 영화를 하지 말라는 것을 알았어요. 솔직히 그 정도로 무지막지할지 몰랐어요.”

연출의 길이 막힌 정 감독은 그 시기 ‘천안함 프로젝트’ ‘직지코드’ ‘국정교과서 516일:끝나지 않은 역사전쟁’ 등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사회적 발언을 이어갔다. 그리고 1990년대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 때부터 함께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영화제작사 질라라비의 양기환 대표에게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영화화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메시지와 재미 다 잡은 ‘블랙머니’, 그리고 한국 영화

자산 가치 70조 은행이 해외 펀드 회사에 1조7000억 원에 넘어간 희대의 사건을 그린 ‘블랙머니’는 정치권과 검찰을 비롯한 금융감독원, 대형 로펌, 해외펀드 회사가 뒤얽힌 거대한 금융 비리를 파헤치는 평검사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다. “‘외환은행 매각 사건’이야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보도해서 알고 있었지만 복잡한 경제 이야기를 영화로 푸는 것이 어렵지 않겠나 싶었어요. 그래도 누군가 해야 하는 이야기 같아서 붙잡았는데, 복잡한 이야기를 쉽게 정리하는데 6년이 걸렸어요.”

얽히고설킨 매각 과정의 난맥상을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형사사건 검사였다가 금융 비리를 파헤치게 되는 경제 문외한 양민혁 검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처음에는 주인공으로 기자나 은행원, 교수, 변호사도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경제를 모르는 검사로 시작하면 관객도 알아가는 재미와 추리적 재미를 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친분 있는 검사와 변호사들로부터 수많은 자문을 얻어 완성된 시나리오이지만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일명 ‘모피아’(재경부 출신 인사들의 정계·금융권 세력)의 실체는 완벽히 드러나지 않는다. “내가 그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근처까지는 어떻게 가보겠는데 속 시원하게 파헤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블랙머니’는 근처에 가서 ‘니들 이렇지?’라고 질문하는 영화입니다.”

정 감독은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직배 영화 저지 투쟁,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 표현의 자유 쟁취 운동, 스크린 독과점 및 대기업 영화산업 수직계열화 문제 등에 앞장서 왔다.

“2000년대 영화와 대기업이 만나서 시너지를 이루며 발전을 이뤘어요. 그런데 대기업의 힘이 막강해지면서 마이너스 요인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현재는 정치 검열이 자본 검열로 바뀌었어요. 되는 영화, 스타 감독과 배우만 된다는 매뉴얼이 생겼어요. 바보 같은 생각이죠. 전체적인 한국 영화의 질이 5, 6년 전보다 떨어졌다는 것을 대기업도 느낄 겁니다.” 대작 중심의 투자로 흥행의 빈익빈 부익부, 스크린 독과점 등의 폐해를 낳고 있는 대기업 투자 성향에 대한 정 감독의 일침이다.

“앞으로도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재미있는 영화를 연출할 것입니다”라는 정 감독. “촬영 현장에서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며 웃는 그의 미소가 더욱 아름답게 다가왔다.

▶ 정지영 감독은

-1946년 충북 청주 출생

-데뷔:1982년 영화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감독

-2016~: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조직위원회 위원장

-제3회 사람사는 세상 영화제 집행위원장·제3회 들꽃영화상 심사위원(2016)

-1999~2001:영화인회의 이사장

-2013:제4회 올해의 영화상 감독상

-2012:제2회 김대중노벨평화 영화상

latehop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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