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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10> 안동 건진국시와 누름(지물)국시

안동국시 한 그릇…맛 정성 기품 그리고 삶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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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6-21 18:45:47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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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에도 예법 담긴 선비의 고장
- 미리 삶아놓은 국수 상에 올리면
- 정성 갖추면서 빠르게 대접 가능
- 밀·콩가루 섞어 만든 면이 특징

- 따로 말아 차게 먹는 건진국수
- 은어 등으로 맑게 끓인 육수에
- 얇은 면피·오색고명 얹어 완성

- 칼국수처럼 야채 등 함께 삶아내
- 걸쭉·고소한 국물의 누름국수
- 부드러운 면발 입안에서 사르르

한때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특정 지역 언어의 특징을 희화화한 말이다. 이 ‘국시’를 만들어 먹는 지역이 바로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북 북부지역이다. 안동지역 말로 ‘국시’는 국수를 이르는 말이다. 때문에 안동의 향토음식 중 하나인 ‘안동국수’를 안동사람들은 ‘안동국시’라 부른다.
   
장국에 국수를 바로 넣어 애호박, 여름배추 등 갖은 채소와 함께 삶아 먹는 안동 누름국수(지물국수).(왼쪽), 면을 삶아 찬물에 씻어 건진 뒤 장국에 따로 말아 먹는 안동 건진국수.
예부터 안동은 선비의 고장이다. 그러하기에 반가의 규범과 예법이 도도히 전승되고, 문중의 준칙과 가훈 또한 유구히 흐른다. 반가에서 내려오는 음식 또한 가문의 예법에 의거해 계승된다. 해서 음식 하나에도 문중 규범에 따라 정성과 예를 다한다. 맛도 맛이거니와 보기에도 정갈하고 기품 있어야 하고, 식재료도 권할 것과 가릴 것을 따져 장만했다. 손님상 또한 격에 맞게 소홀함 없이 정성을 다했음은 말할 것도 없겠다.

특히 문중의 대소사에 참여하는 많은 빈객을 치러내는 종가는, 음식 자체가 그 가문을 대표하기에 접대 음식에 소홀함이 없어야 했다.

빈객에게 소홀함이 없으면서도 수월하게 대접할 수 있었던 음식 중 하나가 ‘국수’였다. 국수가 귀한 음식이었던 시절, 미리 삶아놓은 국수를 한꺼번에 몰리는 손님들 상에 바로바로 올림으로써, 귀한 음식을 빠르게 제공할 수 있었던 ‘일석이조의 음식’이 국수였다.

■ 밀가루·콩가루 섞는 안동국수

예부터 국수는 사대부가에서도 돌잔치나 혼인, 회갑, 제사 등 특별한 날에나 먹던 음식이다. 국수의 긴 면발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기도 하거니와, 밥보다 한 수 위 고급 음식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주재료인 밀이 당시 고급 식재료이었던 점도 한몫 했을 것이다.

국수 재료인 밀가루는 고려 시대까지 중국에서 수입할 정도로 희소성 높은 곡물이었다. 조리공정 또한 정성이 많이 가고 복잡다단했다. 특히 ‘안동국수’는 종갓집 여인네들의 지난한 노력과 정성이 깃든 음식이었다. 제분업이 현대화되기 전이라 밀가루는 밀을 직접 절구에 빻아 구해야 했다. 대청에 병풍을 치고 한지를 깐 다음, 빻은 밀을 슬슬 부채질하면 고운 밀가루가 한지에 소복소복 쌓인다. 이렇게 만든 밀가루를 콩가루와 함께 섞어 오랜 시간에 걸쳐 반죽한다. 반죽은 치대면 치댈수록 부드럽고 쫄깃한 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안동국수의 특징 중 하나는 밀가루와 함께 콩가루를 섞어 면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안동은 예부터 콩의 주산지이었기에 콩의 활용도가 높았다. 당시 밀가루가 귀하여 콩가루를 섞었던 경제적 측면도 고려했을 것이다. 한때 밀가루와 콩가루 비율이 2:1, 3:1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콩가루가 많이 섞이면 점성이 떨어져 반죽하는 데 애를 먹는다. 또한, 면을 익히려면 오랜 시간 높은 열에 익혀야 한다. 하기에 여름철 안동 여인네들 손은 쉴 시간이 없었고, 부엌의 무쇠 솥은 하루 종일 국수를 끓여내야만 했다.
안동에는 크게 두 가지 국수가 전해 내려온다. ‘건진국수’와 ‘누름국수’가 그들이다. 면을 삶아 찬물에 씻어 건진 뒤 장국에 따로 말아 먹는 것이 ‘건진국수’고, 장국에 국수를 바로 넣어 애호박, 여름배추 등 갖은 야채와 함께 삶아 먹는 것이 ‘누름국수’다. 누름국수는 ‘제 물(장국)’에 바로 삶아 먹기에 ‘제물국수’라고도 부른다. 안동말로 ‘지물국시’다. 요즘 음식 형태로 치자면 ‘건진국수’는 ‘잔치국수’ 쯤 되고, ‘누름국수’는 ‘칼국수’ 쯤 된다고 보면 되겠다.

■ 장국에는 낙동강 은어를 썼다

제철은 밀 수확기이면서 애호박이 열리기 시작하는 음력 6월 전후이다. 장국의 주재료인 은어도 이맘때쯤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기에 모든 식재료가 준비되는 때이기도 하다. 때문에 ‘안동국수’는 안동 사람들이 여름이 시작되는 철에 즐겨 먹던 별미 보양식으로도 사랑받던 음식이다.

‘건진국수’는 주로 사대부가에서 차게 해서 정갈하게 먹었고, ‘누름국수’는 서민들이 뜨뜻하게 해서 든든하게 먹었던 음식이다. ‘건진국수’는 주로 여름 별식이나 귀한 손님상에 올리기에 격식을 갖춰 먹었고, ‘누름국수’는 농번기 때나 두루 나눠 먹을 수 있었던 두레음식이었다. 조리법 또한 다른 이 두 국수는 서로 가지지 못한 것을 나누어 가지고 있기에, 상호 보완하는 측면이 있던 음식이다.

‘건진국수’는 반죽을 밀 때 여간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이 아니었다. 차게 해서 먹는 음식이기에 면피가 종잇장처럼 얇아야 제 맛을 내므로, 반죽 안반의 나뭇결이 비칠 정도로 홍두깨로 밀고 밀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면피를 실처럼 얇고 일정하게 썰어 국수를 만들었다.

장국으로는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은어로 맑게 끓여냈다. 진하면서도 개운하고 수박향이 나면서 비린내가 나지 않아, ‘수중군자(水中君子)’라는 별칭이 있는 어종이다. 은어 대신 닭이나 꿩으로 육수를 내는 곳도 있었다. 장국이 준비되면 국수에 장국을 붓고 오색고명을 얹어 차려낸다. 은어로 육수를 냈다면 은어 살을 찢어 고명으로 올리고, 닭으로 육수를 냈다면 닭 가슴살을 올린다. 달걀 흰자위와 노른자위로 지단을 만들고 오이와 애호박 등을 채 썰어 보기 좋게 올린다.

‘누름국수’는 ‘건진국수’에 비해 면도 굵고 면피도 두꺼워 투박한 일면이 있지만, 한 그릇 먹고 나면 배가 불뚝 일어서는 ‘한 끼 음식’이다. 특히나 ‘누름국수’에는 ‘조밥’을 곁들여 상에 올리기에 더욱 든든한 밥상이 된다. 면발이 ‘건진국수’보다는 굵지만 장국과 함께 삶기에 면이 부드럽다. 함께 들어간 애호박, 여름배추 덕분에 풋풋함 또한 덤이다. 입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후루룩~’하고 녹아버리듯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국물 또한 걸쭉하면서도 구수하다.

■ 국수 한 그릇에 담긴 문화와 삶

   
요즘 ‘안동 건진국수’를 안동에서도 먹기가 힘들어졌다. 여간 고되고 신경 쓰이는 음식이 아니기에 그렇다. 취재 차 안동을 찾았을 때 ‘건진국수’를 조리하는 식당은 몇 곳 없었다. 그나마 하루 전 예약해야 하거나, 한정식 코스에 포함돼 있었다. 한옥 스테이에 간혹 아침상으로 내기도 한단다. 그 중 한 집을 찾았다. 요즘은 밀가루와 콩가루의 반죽 비율을 4:1, 5:1로 하여 국수를 뽑는다고 한다. 일반 솥이나 냄비에 면을 삶으면 제대로 익지 않아서이다. 반죽 및 면 작업도 기계로 하고 장국도 일반적인 멸치육수로 내는 실정이다. 비록 여러 공정을 간소화하고 많은 절차를 줄였지만, 그나마 ‘건진국수’ 조리법을 이어가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인 듯싶기는 하다. 옛 어른들 말에 따르면 ‘국수는 정성으로 먹는 음식’이라 했다. 가문을 위해 한 땀 한 땀 여인네들의 땀과 노력의 헌신이 정갈한 음식으로 다가오는 안동국수. 국수 한 그릇 속에는 지역사람의 삶과 문화를 읽을 수 있는 텍스트 또한 오롯하게 들어가 있다.

음식문화 칼럼니스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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