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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6> 충남 당진 장고항의 실치

하얀 실치 수십, 수백 마리 후루룩 국수 말아먹듯 회로

해풍·봄볕에 잘 말린 뱅어포, 김 굽듯 살살 구우니 칼슘왕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4-19 18:50:28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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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짓 크기의 실처럼
- 가느다란 ‘흰베도라치’ 새끼

- 서해안 당진·보령·태안 해안
- 4, 5월만 회로 맛볼 수 있어
- 모든 횟집 직접 잡아 판매

- 봄 아욱 더한 맑은 된장국에
- 실치 한줌 넣으면 국물 시원
- 튀김·파전에 넣어도 감칠맛 높여

자그마한 몸집이 하얗고 투명하다. 1㎝ 남짓 크기라 마치 ‘실처럼 가느다랗게 보이는 생선’이라고 ‘실치’란 이름을 가졌다. 서해안의 당진, 보령, 태안 쪽에서 곡우 앞뒤로 4, 5월에 한해 회로 맛볼 수 있는 어족이다.

원래 학명은 ‘흰베도라치’이다. 그러니까 흰베도라치 새끼란 뜻이다. 흔히 양념에 무쳐 밑반찬으로 내는 ‘뱅어포’가 이 실치로 만든다고 하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실치는 봄철 한 달 회로도 즐기고, 국이나 볶음으로도 먹으며, 말려서 실치포를 만들어 두고두고 먹을 수도 있다.
최근 찾아간 충남 당진시 장고항에는 실치를 말리는 ‘실치덕장’이 한창 펼쳐져 있었다. 현지에서는 이렇게 실치를 말리는 것을 ‘뱅어포 뜬다’고 했다.
■모든 횟집에서 직접 잡아 직접 장만

충남 당진시 ‘장고항’은 실치잡이로 하루를 시작하여 실치잡이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실치마을’이다. 장고항은 ‘장고를 닮은 목’이라 하여 장고항(長鼓項)이라 불린다. 1970년부터 실치가 어획되면서 ‘실치마을’이 형성되었고 해마다 ‘실치축제’를 개최한다. 이 기간 전국에서 10여만 명이 찾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기도 한다. 1970년대 실치잡이가 성행할 때는 마을의 150여 가구가 실치잡이에 종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서해안 개발과 방조제 사업 등으로 연안어업이 축소되면서, 지금은 10여 척의 실치잡이 어선이 장고항 인근 앞바다에서 실치를 잡고 있다.

바라실치
장고항 실치 어업은 3~5월이 제철로, 특히 4, 5월이 맛이 좋고 어획량도 많다. 시기별로 어획량이 차이가 있지만 하루 100㎏짜리 상자로 30여 상자씩 어획한다고. 1990년대 들면서 횟집에서 본격적으로 실치회를 팔기 시작했고, 2000년 초부터 실치축제를 열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장고항에서 잡은 실치는 시기에 따라 다양한 식재료로 가공되어 판매되는데, 4월에는 단연코 ‘실치회’다. 장고항의 모든 횟집에서 실치회를 파는데, 모두 실치를 직접 어획해 손님상에 낸다. 실치는 잡자마자 바로 죽어버리기에 유통기간이 매우 짧다. 횟집 주인장이 직접 어획하고 가공하고 손님상에 내지 않으면 제맛을 낼 수가 없다.

■별미 뱅어포와 건실치, 바라실치…

뱅어포
실치는 한 철 어획되기에 제철에 먹고, 남는 분량은 저장이 쉽도록 가공하여 두고두고 먹는다. 저장방법으로는 ‘뱅어포’로 말리는 방법이다. 멸치와는 다르게 실치를 삶지 않고 생으로, 김처럼 발에 얇고 고르게 펴서 말린다. 보통 7시간 정도 건조하면 뱅어포가 된다. 장고항은 이맘때쯤이면 마을 전체가 뱅어포 덕장으로 변해 장관을 이룬다. 말리는 발이 푸른색이라 온 마을이 푸른 물결로 출렁이는 것 같다. 발에 실치를 얇게 펴서 짭조름한 해풍과 햇빛에 말리는데. 이것을 ‘뱅어포 뜬다’고 한단다. 실치가 더 커 뼈가 굵어지기 전 포로 말려 두고두고 먹는 것이다.
“뱅어포는 첩 단위로 파는데, 1첩에 10장의 포로 구성되어 있슈. 김 굽듯이 살살 구워서 술안주나 밥반찬으로 다양하게 만들어 먹어유. 포는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은 것과 포 위에 고추장 양념을 발라 가공한 것이 있구유.” 장고항의 서해수산 임복동(70) 대표의 말이다.

실치포 말고도 실치를 멸치처럼 가마솥에 살짝 쪄 1.5㎏ 박스에 담아 파는 ‘건실치’가 있고, 실치와 새우가 비슷한 양으로 잡혀 일일이 가려내지 못할 때 실치와 새우가 함께 섞여 있는 채로 말린 ‘바라실치’도 판다. 바라실치는 ‘그물을 한꺼번에 털어 함께 말린 실치’라는 뜻의 충청도 말이란다. 5월이 지나면서 실치의 뼈가 긁어지면 실치로 액젓을 담근다. 까나리액젓처럼 담가 가을까지 발효했다가 판다고.

■‘실치포’ 아니라 뱅어포로 불리는 사연

실치회
뱅어포에 관한 팁 한 가지. 실치로 만든 포가 왜 뱅어포가 됐을까? 여러 추측이 난무하지만, 일단 학명으로 등재된 ‘뱅어’는 민물고기로, 강에서 산란하는 길이 10여 ㎝ 어종이다. 생김새 또한 희고 투명해 실치와 매우 닮아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하다. 예부터 겨울에서 봄까지 진미로 널리 사랑받았다고 한다. 이 뱅어를 옛사람들은 한자로 백어(白魚)라 표기했다. 그러니까 원래 뱅어는 민물어종인데, 이와 비슷한 모습의 희고 작은 어족을 모두 백어, 뱅어로 범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뱅어포는 ‘실치포’로 불려야 마땅할 것이다. 실치 외에도 이맘때쯤 경남 거제, 사천 연안에서 어획되는 ‘병아리’라 불리는 어족도 ‘백어’라 불린다. 이 병아리도 봄철 한 달만 회로 먹을 수 있는데, 먹는 방법은 실치회와 비슷하다. 이 병아리의 정체는 최근 밝혀진바 붕장어 치어라고 판명됐다.

실치국
‘실치밥상’이 차려진다. 가운데 ‘실치회’가 고스란하게 자리 잡고, 그 옆으로 ‘실치국’과 ‘실치전’, 곁들이 음식이 자리한다. 한쪽은 고운 흰색의 실치가 고봉을 이루고, 또 한 쪽은 무, 당근, 미나리, 양배추 등속과 땡초가 칼칼한 양념에 무쳐 나온다. 비빔양념채소와 함께 곁들여 먹을 수도 있고, ‘실치회무침’으로 무쳐 먹을 수도 있다. 잡으면 금방 죽어버릴 정도로 성격이 급해서, 아주 운이 좋아야지만 살아있는 놈을 맛볼 수 있다는 실치회이다. 우선 실치 몇 마리를 날로 먹어본다. 갓 잡아 접시에 올린 듯 실치의 부드럽고 은은한 식감이 입안을 흥겹게 한다. 살살 씹어 먹으니 쌉쌀하고 들큰하다. 살짝살짝 뼈가 씹히는 느낌도 있다.

■봄의 전령 실치회, 실치국, 실치비빔밥

실치전
일단 앞접시에 실치를 담아 초장에 비벼 먹고, 채소와 무쳐 먹고, 초간장에 찍어 먹어 본다. 국수를 말아먹듯 후루룩 입안으로 실치를 들이마시면, 수십, 수백 마리가 생기 있게 요동치면서 입안 가득 봄 바다가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실치국도 한 술 떠먹어본다. 맑은 된장국 베이스에 아욱이나 시금치 등속과 실치를 한 줌 넣어 끓여냈는데,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다. 봄 아욱의 부드럽고 쫀득함이 실치와 만나니, 봄을 알리는 전령이 따로 없다.

실치회를 밥과 비벼서 비빔밥으로 먹어본다. 바야흐로 봄의 기세가 등등하다. 각각의 식재료가 고유한 맛을 내면서도 서로 한맛이 되어 봄을 알리는 것이다. 채소와 쓱쓱 비벼 한입 가득 입에 넣는다. 실치들이 입안에서 풍요롭게 넘치고 출렁인다. 아삭한 채소의 식감에 살짝살짝 씹히는 실치가 흔쾌하기 짝이 없다. 입가심으로 실치전도 맛본다. 외형은 튀김과 비슷하다. 맛도 고소하면서 아삭아삭한 식감 또한 상쾌하다. 실치의 은은한 감칠맛도 뒤를 따라 좋다. 이 마을 사람들은 실치철이면 파전을 부칠 때도 실치를 넣고 부치는데 그 맛이 배가가 된다고.

보기보다 다양한 식재료로 널리 활용되는 봄의 진객, 실치. 1㎝ 남짓한 몸집으로 멸치보다 작지만, 칼슘이 멸치만큼 꽉 찬 어족이기도 하다. 하루 뱅어포 3, 4장 정도면 하루 평균 칼슘 권장섭취량을 먹을 수 있다니, 봄철 영양식으로도 손색이 없는 생선이다.

음식문화 칼럼니스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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