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차세대 영화인이 꿈을 펼치기 위한 날개를 달았다. 부산 영상위원회, 아시아영상위원회네트워크(AFCNET), 필리핀 영화개발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아시아 영화인재 육성 프로젝트 '플라이(FLY·Film  Leaders Incubator)'가 지난 25일 2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 행사는 한·아세안 협력기금이 후원했다.

■영화 다양성을 위한 인재 양성 

아세안 10개국과 한국에서 각각 2명씩 선발한 22명의 학생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기획, 촬영, 후반작업까지 영화제작 전 과정에 걸쳐 유명 영화인의 세심한 지도를 받으며 단편 영화를 제작했다. 이무영 감독이 연출을 지도하고 동서대 임권택 예술대학 송진열 교수는 촬영, 방준석 음악 감독이 영화 음악 지도를 맡았다. 또 필리핀의 아돌포 알릭스 주니어 감독과 알버트 반존, 메이사 드메틸로 촬영감독이 강사진으로 참여했다.

학생들은 각자 작성한 시나리오 중 두 편을 선정했다. 이를 토대로 직접 촬영 장소를 선정하고 현지에서 오디션을 열어 배우를 섭외하는 등 영화 제작의 모든 과정을 경험했다. 필리핀에서 참가한 존 마카힐라스 학생은 "막연했던 꿈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됐다.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만나 의견을 조율하고 작품을 만들어낸 경험이 내 꿈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미국과 유럽 영화에 맞서 아시아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 제작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이준익, 일본의 히라야마 히데유키, 필리핀의 티코이 아길루스 등 거장의 영화철학을 공유하는 마스터 클래스도 마련됐다. 이준익 감독은 마스터 클래스에서 자신의 영화 '왕의 남자'상영 후 이어진 질의 응답시간에 "우리는 영국과 프랑스가 어떻게 다른지 알지만 서양인들은 한국, 중국, 일본이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 '왕의 남자'는 한국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기 위해 만든 영화다. 부끄럽지만 나도 아세안 국가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한다. 이제 여러분이 보여줘야 한다"며 용기를 북돋웠다.

지난 25일 열린 시사회에서 A팀은 바쁜 생활 속에 관계가 소원해진 부부가 처음 만났을 때 나눠 가졌던 각자의 모습을 담은 그림과 사진을 매개로 화해에 이르는 내용의 '종이조각(Piece of paper)'을 상영했고, B 팀은 스마트폰 때문에 가족 여행을 와서도 대화가 없는 한 가족이 스마트폰이 고장나면서 즐거운 휴가를 보내게 되는 내용을 담은 '탈출(Escape)'을 선보였다. 이준익 감독은 "두 작품 모두 메시지가 선명한 작품이었다.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목적을 정확히 이해한 작품이다"고 평했다.

부산 영상위 오석근 위원장은 "교육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관리다. 벌써 내년 삿포로 영상위원회가 이들을 초청해 장편 영화 시나리오 제작 워크숍을 개최하기로 했다"며 "내년부터는 5년간 아세안 10개국에서 순차적으로 '플라이'를 개최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아시아영화기획개발 펀드를 창설해 한국과 아세안 대상에서 아시아 전 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아시아 영화 상생의 답안

세계 영화의 판도는 미국과 유럽 중심에서 미국, 아시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아시아는 매년 세계적으로 제작되는 5000여 편의 영화 중 절반 가량을 제작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는 저렴한 현지 제작 비용과 풍부한 영화 수요가 매력으로 작용해 영화 강국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세계영상위원회(AFCI)가 AFCNET에 준회원 가입을 신청하는 등 긍정적인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오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플라이'같은 영화 교육은 아시아 영화의 공동 번영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한·중·일 3국을 제외하면 다른 아시아 국가는 자국 영화 발전을 위한 기반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내년 한국영화 아카데미가 부산으로 이전하면 FLY, AFA와 함께 부산에서 진행하는 영화 교육 프로그램은 총 3개가 된다. 영화아카데미가 국내 영화인 교육이라면 AFA는 아시아 영화인을 한국에서 교육하는 프로그램이고, FLY는 저개발 국가에 찾아가는 서비스여서 저마다 목적도 다르다. 부산이 명실상부 영화 교육 도시가 되는 셈이다. 오 위원장은 "부산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과 함께 영화도시로 거듭났지만 실제로 부산에서 제작하는 영화는 없다는 비판이 많다. 시각을 조금만 돌려보면 영화 한 두편의 제작을 유치하는 것보다는 공적 인프라를 조성하는 일이 훨씬 의미있고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