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와 경남도가 지난달 28일, 오는 2028년 통합 자치단체장을 선출하겠다는 ‘행정통합 로드맵’을 전격 발표했다. 지역 주도의 균형발전을 실현하겠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화려한 청사진 이면의 ‘진정성’에는 의문이 남는다. 우리는 이미 ‘과거의 후퇴’를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경울은 2018년부터 단계적 행정통합을 추진해 왔다. 2020년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통과와 이듬해 ‘특별지방자치단체 합동추진단’ 출범은 광역 사무 발굴이라는 구체적 성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동력은 한순간에 꺾였다. 2022년 지방선거 직후 당선인들의 ‘재검토’가 이어졌고, 결국 그해 12월 부울경 특별연합은 공식 폐기됐다.
대안으로 등장한 ‘초광역 경제동맹’은 실질적 결속력 없는 ‘선언적 협력’에 그쳤다. 2028년으로 미뤄진 통합 로드맵이 또다시 ‘시간 끌기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에 본지는 ‘부울경 특별지방자치단체 합동추진단’의 2022년 주요 업무계획과 부울경초광역경제동맹추진단의 2024년, 2025년 시행계획에 대한 심층 비교 분석했다.
부경울(부산·경남·울산)이 내건 ‘초광역 경제동맹’의 화려한 청사진이 실상은 중앙정부의 처분만 바라보는 ‘천수답 국비’ 구조에 갇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체적인 재원 마련 없이 국비 확보에만 매몰된 협력 체계는 정부의 정책 기조 변화나 예산 삭감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충청광역연합 특별회계 설치 조례’를 제정해 안정적 사무 추진 기반을 닦은 충청권(충남·충북·대전·세종)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화려한 미래 산업, 속내는 ‘국비 구걸’
15일 ‘2025년 부울경 초광역권 발전 시행계획’ 분석 결과 ▷초광역권 산업육성 ▷초광역인프라구축 ▷시·도민삶의 질 향상 3대 분야 12개 핵심과제 전체 투자 계획 7411억 원 중 지방비는 941억 원(12%)에 그쳤다. 나머지는 대다수는 민간투자(3793억 원) 국비(2676억 원)이 차지한다. 지방비만 투입되는 사업은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부울경 먹거리 확보’(6200만 원) 뿐이다. ‘가덕도신공항 접근 교통망 확충’에는 예산이 한푼도 책정되지 않았다. 민간투자나 국비 사업도 세 광역지자체가 공동으로 유치한 게 아니라 각자 따로 유치해 ‘부울경’ 등의 이름으로 포장한 게 절대 다수다.
국비나 민간투자 사업은 중앙부처의 공모나 유치 결과에 따라 존폐가 갈리는 구조다. 이는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망치는 천수답처럼, 중앙정부의 예산 삭감이나 정책 기조 변화 한 번에 부울경의 미래 전략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해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사업은 정부의 예산 조정 과정에서 국비 확보가 지연되며 좌초될 위기에 처하는 등 ‘국비 옹이’의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부경울은 3개 시도 기획조정실장이 모이는 국비대응단을 운영 중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각 지자체 사업에 ‘정부 예산을 따오기 위한 모임’일 뿐이다. 2022년~2024년 49개 사업에서 국비 9259억 원을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이는 실무 부서가 기여한 바가 압도적으로 크다. 지난해에도 올해 국비 확보를 위해 올 9월과 11월 두 차례 국회를 함께 방문한 정도 수준에 그친다.
●‘동상이몽’ 부경울, 기금 조성은 뒷전…충청권과 대조적
더 큰 문제는 부경울이 초광역 경제 협력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실질적 동력이 될 ‘초광역 협력 기금’ 조성 논의가 고려된 바도 없다는 점이다. 취재 결과, 3개 시도의 속내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무원은 “경남도는 시·군별 재정 격차가 커 초광역 기금 출연에 따른 도내 시·군의 재정 압박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울산시는 인프라 혜택이 부산이나 창원 등 대도시권에 집중될 것을 경계하며 실익 계산에 분주하다. 부산시가 리더십을 발휘해 기금 조성을 주도해야 했지만, 실무적인 재정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떠올렸다.
충남도 충북도 대전시 세종시가 2024년 12월 ‘충청권 특별지방자치단체(충청광역연합)’를 구성하고, 초광역 협력 사무를 안정적으로 추진하기에 앞서 ‘충청광역연합 특별회계 설치 조례’를 제정한 것과 대조적이다.
국비 의존형 협력은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취약하다. 국비는 통상 시설 건립비에 집중되는데, 추후 막대한 운영비와 유지보수비는 온전히 지자체의 몫이 된다. 공동 기금이 없는 상태에서 광역교통 인프라 등이 완공될 경우, 이 시설들이 지역 경제의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이에 대해 부산시 관계자는 “시설마다 법령과 운영 주체가 달라 단일 컨트롤타워가 관리하기 어렵다”며 “철도(KTX)는 코레일, 국도는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며 지방도는 향후 시도 간 협의로 운영 주체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부경울 경제동맹이 허울 뿐이었다고 꼬집는다. 동아대 김형빈(행정학과) 교수는 “어차피 기금 조성도 뒷받침되지 않는 초광역 경제 협력은 모래성 위에 세운 집과 같았다”며 “현재의 경제동맹은 사실상 중앙정부 공모사업을 짜깁기 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순간 언제든 와해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