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업무보고 생중계를 두고 만기친람(萬機親覽)이란 지적과 비판이 제기된다.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에 대한 질타와 동북아역사재단 박지향 이사장과의 뜬금없는 ‘환단고기’ 논쟁으로 논란이 증폭되었다. 전 국민 앞에서 공직자 망신 주기로 공직사회를 흔든다는 강도 높은 비판까지 있다. 선급금 과다 지급, 도로공사 청소 지적,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지시 등등 마치 어전회의를 주재하는 조선시대 국왕을 연상케 한다. 지지자들은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는 대통령’이라 환호하며 효능감에 젖어 있지만, 정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만기친람에 걱정부터 앞선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국민을 대신해 묻는’ 취지라 설명한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국정의 투명성을 제고한다는 이유다. ‘나라의 모든 중요한 일을 임금이 직접 살펴본다’는 뜻의 만기친람은 국정이 단순했던 왕조시대엔 성군의 덕목으로 여겼겠지만, 규모와 차원이 다른 현대국가에선 국가 수장의 독선과 독단을 지적하는 비판적인 개념으로 사용된다. 근대 국가의 정부 조직은 방대하고 복합적이며 중층적이다. 하나의 정책 결정은 한가지 계통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처 간 협력이 필요하고 이해관계 상충과 갈등을 최소화시켜야 된다. 국정은 대통령 혼자 모든 걸 판단하고 결정하기 힘든 영역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엄중하다. 탄핵당한 윤석열 정권도 ‘대왕고래사업’ 직접 브리핑, ‘채해병 사태’ 등 대통령의 만기친람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국가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기에 발언에 고도의 진중함과 세심함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기업의 경영 방침이 바뀌고 주식이 등락하기도 한다. 실제 이 대통령의 ‘탈모약 건강보험 지원’ 발언이 나온 다음 날 탈모 방지 샴푸를 제조하는 한 회사의 주식이 29.77% 상한가까지 오르기도 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안보에까지 영향을 주기에 항상 준비된 발언이어야 하고 향후 미칠 파장까지 먼저 생각해야 된다.
국정은 대통령의 즉흥적 지시가 아닌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 국정 운영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적인 ‘영(令)’과 ‘계통’이다. 대통령의 생각은 법령에 의해 통제되고, 지시는 계통, 즉 시스템에 의해 진행된다. 왕정과 민주정의 구분은 사적 통치와 공적 통치에 있다. 영과 계통이 무너지면 사적 통치가 된다. 국민의 손에 뽑혔고 권력을 위임받았다 해서 대통령 마음대로 국가를 운영하라는 게 아니다. 헌법에 규정된 영과 계통에 의해 운영해야 된다. 이를 모르면 국정 난맥상이 일어나고, 이를 어기면 국민적 저항에 이르게 된다.
권력의 최정점인 대통령은 자아 팽창을 경계해야 된다. 권력이 높아질수록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늘어난다는 과학적 연구가 있다. 자아가 팽창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뭐든 가능하다는 자신감과 착각에 빠진다. 끊임없이 자기 객관화를 시키지 않으면 독선과 오만에 노출된다. 윤석열의 계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아팽창이 견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탄핵은 국정 운영이 비정상적 계통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계통을 무시한 비정상적 국정 운영은 모든 조직을 수동적으로 만들었고, 세월호도 윗선의 결정을 기다리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세월호는 결국 박근혜 정권을 무너트렸다.
“만약 군주가 바라는 바를 아무렇게나 말하고, 좋고 싫음을 밝힌다면 신하 된 자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군주에 잘 보이려 꾸민다. 비록 군주는 지혜가 있어도 혼자 계획을 세우지 않으며, 현명하더라도 과시하지 않으며, 용기가 있더라도 나서지 않음으로써 신하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한비자’ 주도(主道) 편에 나오는 문장이다. 마치 한비자가 현재 한국에 나타나 요 며칠간 이 대통령의 업무보고 생중계를 보며 쓴 것처럼 그 의미가 너무 생생하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도 “임금이 무위(無爲)하면 신하는 유위(有爲)하게 되고 백성은 자연(自然)스럽게 교화된다”고 했다.
공자는 ‘정명론(正名論)’을 통해 이름에 걸맞은 역할과 책임을 다할 때 신뢰가 완성된다 했다. 옛 성현들도 만기친람을 경계했던 것이다. 이 대통령의 만기친람은 이미 많이 보아온 통치 스타일이다. 성남시장 시절 산책하다 부하에게 전화해 맨홀 교체를 지시하고, 경기도지사 때도 공무원 40명을 대동하고 불법 영업 주점을 단속하려 현장을 급습하기도 했다. 만기친람의 노이즈는 정치적으로 충분히 이해하는데 이제 더 올라갈 자리도 없지 않은가. 작은 기업도 사장이 업무에 일일이 관여하면 직원들이 수동적으로 된다. 5000만의 안위와 생명을 지켜야 하는 대통령이다. 세세한 현안 업무는 국무총리에게 맡기고 큰 국정 기조와 방향만 잡아가며 경제 외교 국방 같은 대통령 직책에 맞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민초의 작은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