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시공간의 헤리티지 재창조
- 이준희 사진가 프로젝트 사진집
- 사상공단 지역 일상적인 장소에
- 현대무용 결합한 ‘환상적 찰나’
춤에 대한 철학과 사상이 아니다. 이 ‘사상’이 ‘부산 사상’일 줄이야. 어떤 연관이 있는 건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책 표지 아래쪽의 글이 정체를 말해준다. ‘부산 사상산업단지의 공간을 재창조한 프로젝트 사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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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희 작가가 ‘춤추는 사상’ 프로젝트로 선보인 작품. 빛과 춤은 공간에 변화를 주는 마법이 되어 잊혀가고 외면받는 공간에 새로운 시간성과 서사를 창조했다. 이준희 작가·스미다 제공 |
표지 사진은 이발소에서 춤추는 무용수이다. 한쪽에서는 주인이 손님의 머리를 다듬고 있다. 이발소 보기도 쉽지 않은 요즘, 더구나 영업 중인 이발소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라니. 어떤 사진들인지 점점 더 궁금해졌다. 책장을 휙휙 넘기자 버스에서 춤추는 무용수가 등장한다. ‘대도운수’에서 찍었다. 자주 이용하던 버스였는데, 무용수가 춤추는 버스로 만나니 반갑다. ‘유성이용원’ 앞에서 멋지게 도약하는 무용수도 나타났다. ‘백조 컴퓨터 세탁’ 앞을 날고 있는 무용수도 있다. 백조 세탁소 앞에 백조가 나타났다! 아니, 검은 의상을 입었으니 흑조인가? 의의의 장소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를 담은 사진은 신선하고 재미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사진을 찍었을까 생각하면서 사진 속의 장소를 다시 살펴본다. 그제야 잔잔한 감동이 밀려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그리고 우리를 살게 하는 ‘바로 그곳’이다.
이준희 작가는 2010년대 중반 직업 사진가의 길에 들어서면서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등에서 스냅 사진과 여행 사진을 촬영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현재 국내 아트 스포츠 사진을 개척하며 소셜 포토그래퍼로서 공공기관, 기업 등과 협업하고 있다.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부산장애인체육회와 함께하고 있으며, 부산시 사상구청과 ‘춤추는 사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책이 그 결과물이다. 직업 사진가로서 성장해 온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 ‘사진작가 이준희 직업 에세이-빛과 디렉션’도 함께 출간했다.
모두가 서울로 향할 때 부산으로 역주행한 사진작가 이준희는 부산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부산 시민이 쌓아온 다양한 사운드와 헤리티지를 발견했다. 연일 뉴스에서 들려오는 인구 유출 소식은 이제 막 부산 시민이 된 작가에게 고민을 던져주었다. 그는 “부산을 위해 사진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아트 스포츠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만큼 부산의 역동성을 사진에 담아내 볼까”를 생각했다. “공장에서 무용수가 춤을 춘다면? 세탁소에서 현대무용 사진을 찍는다면 어떨까?”
이준희는 올해 부산 사상구청과 협업하여 사상공단의 공장들과 사상구의 일상 장소들을 프레임에 담기 시작했다. 세탁소, 이발소, 버스 회사를 비롯해 로봇 공장, 신발 공장 등 우리가 잊었거나 인식하지 못한 일상의 공간들이 다채로운 조명과 현대무용가들의 춤으로 뮤지컬 무대처럼 바뀌었다. 조색하듯 섞어 쓴 조명들은 단조로운 공간을 새로운 색채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무용수들의 유연한 춤 동작이 그리는 곡선은 경직된 직선의 기계들과 대비되어 환상적인 찰나를 만들어냈다.
이 책은 빛과 춤을 통해 ‘공간과 사람’들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건너다니는 튼튼한 교량은 누구의 손을 거쳤을까. 오늘도 타고 내리는 이 버스가 없었다면 우리의 하루는 어떻게 되었을까.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을 소중히 가다듬어주는 이발소, 얼룩지고 낡은 옷도 새 옷처럼 만들어주는 세탁소. 우리의 일상을 지탱해 주는 공간들과 그 공간을 지켜오는 사람들을 우리는 한 번이라도 떠올려본 적이 있을까?”
빛과 춤은 공간에 변화를 주는 마법이 되어 잊혀가고 외면받는 공간에 새로운 시간성과 서사를 창조했다. 그 순간을 포착한 사진은 아름답고 생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