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1876년 개항 이후 150여 년 동안 우리나라 해양 경제의 관문이자 세계로 향하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 개항기에는 일본·중국·러시아를 잇는 동북아 교역의 중심지였고, 근대 조선기술과 해운·항만 물류가 부산을 통해 도입됐다. 산업화 시기에는 국가 수출입 물동량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고, 조선·수리조선·항만 하역 등 해양기반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며 국가 경제 도약을 견인해 왔다. 이처럼 개방과 교류를 통해 축적된 경험과 인프라는 부산이 조선산업과 물류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이 됐고, 오늘날까지 그 경쟁력을 이어오게 했다.
이제 부산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할 기회가 오고 있다. 세계가 인정하는 조선업과 다가올 북극항로 시대는 부산을 글로벌 해양수도로 도약시킬 새로운 발판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부산은 조선업의 초격차 기술 확보와 산업 생태계 고도화에 나서고, 북극항로 시대의 주도권을 선점할 수 있도록 선제적 준비를 해야 한다.
부산과 울산, 경남은 세계적인 조선소와 해양플랜트 기업이 집적한 제조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부산에는 HJ중공업 등 중형 조선소를 비롯해 전국 최대 규모의 조선기자재(58.4%)와 설계·엔지니어링 기업(52.9%)이 밀집해 있으며, 인근 거제에는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 울산에는 HD현대중공업 등 대기업이 자리잡아 지역 간 연계와 협력이 매우 용이하다.
부산은 이러한 이점을 살려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선도적 위치를 공고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중소기업 간 유기적인 협력과 혁신 생태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형 조선소의 기술력과 기자재업체의 전문 부품·공정 역량을 연계해 공동 연구·개발을 활성화하고, 4차 산업 기술 접목을 통한 공정 혁신과 AI 활용, 디지털 전환 등으로 생산성과 품질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산에 초격차 기술 개발을 전담할 기술 연구원과 KAIST UNIST와 같은 국립 조선·해양 대학원을 설립해 기술 개발과 인재 양성에 나서야 한다. 글로벌 초격차 기술 확보야말로 부울경이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는 핵심 동력이며, 나아가 대한민국 조선산업이 세계를 선도하는 원천이 될 것이다.
다가오는 북극항로 시대에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북극항로는 단순한 ‘선박의 항로’가 아니라 미래 신산업으로 연결되는 전략적 공간이다. 이 루트를 통해 에너지·자원 물류, 쇄빙선 등 특화 선박, 친환경 선박 정비, 해양기술, 크루즈 관광 등 다양한 고부가가치 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 특히, 항만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중요하다. 단순한 시설 확장이 아니라 스마트 항만으로의 고도화가 요구된다.
아울러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북극항로 시대를 대비할 제도·조직적 기반을 마련할 중요한 기회다. 부산에 집적되는 해양 관련 기관과 지역 내 해운·물류·배후 산업 기업이 긴밀히 협력할 수 있도록 통합적 해양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기관의 집적을 넘어, 전략을 구체화하고 실행으로 이어가는 종합적 체계로 자리 잡아야 한다.
끝으로, 부산이 세계적인 해양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소프트 파워, 즉 전문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산업계는 혁신 기술 개발에 힘쓰고, 정책·행정 분야에서는 선진사례 연구와 국제협력, 현장 중심의 정책 설계 역량을 통해 구체적인 사업과 정책 발굴에 나서야 한다. 또한 학계와 연구기관은 인력을 양성하고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부산에 해양수산부를 비롯한 해양 물류 관련 기업과 연구기관들의 이전이 가시화되며 해양 행정의 무게 중심이 이동해 오고 있다. 이는 부산이 명실상부한 해양수도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동시에 한층 높은 수준의 역량이 요구되는 도전이기도 하다. 부산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해양경제 선도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개항 150년 역사가 축적된 부산의 해양 경제 저력을 바탕으로, 이제 미래 100년을 향한 새로운 전진이 시작돼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