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민의 날(10월 5일)이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부산대첩 승전일이었나요?” 아직도 이렇게 되묻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 도시를 상징하는 기념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민의 날’을 선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조선 수군을 이끌고 왜군 본진을 공격해 큰 승리를 거둔 부산대첩은 사실상 정유재란으로 이어진 7년 전쟁의 막을 내리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 전투이기 때문이다.
물론 임진년 첫 전투였던 옥포승첩이나 연승을 거둔 당포승첩, 한산대첩 모두 부산대첩의 쾌거를 이루는 데 뿌리가 되고 줄기가 되고 꽃이 되었기에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이렇게 부산대첩으로 이어진 임진년 4대 승첩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해전에서 연전연승하는 이순신의 수군이 무서워 한동안 왜군은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해상 보급이 차단됨으로써 수륙병진 전략도 무위로 돌아갔다. 결국 조선이 제해권을 장악하게됐다. 특히 임진년 부산대첩의 위대성을 처음 제기한 이는 다름 아닌 이순신. 이순신 장군은 부산승첩 장계를 올릴 때 ‘옥포에서 한산까지 전후 10차례나 싸웠지만 장수와 군졸의 공로를 논함에 있어 부산승첩보다 더 큰 전투는 없었다’고 기록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근세 이순신 연구에 해박한 노산 이은상 선생은 1956년 부산 용두산공원에 건립한 이순신 동상 비문을 통해 부산대첩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비문에는 ‘임진란 때 왜적이 이 땅에 첫발을 올려 놓은 곳이 바로 여기였기로 그날의 고난을 뼈저리게 기억하자 함이요. 또 그가 왜적과 더불어 칠년 동안 싸우던 중에서도 부산 앞바다의 큰 승첩이 가장 결정적이었기로 그것을 외치며 자랑하자 함이요. 그리고 또 여기가 이 나라의 관문이라 예서부터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워 국토수호의 피어린 정신을 안팎으로 나타내자 함이니’라고 새겨져 있다.
45년 전 손재식 부산시장이 잊혀진 부산대첩일을 시민의 날로 기림으로써 이순신을 소환해 그의 애국애족 정신이 되살아날 기회를 마련했다. 부산여해재단과 부산대첩기념사업회가 이순신 정신을 되살리고 이순신을 닮아가고자 하는 ‘작은 이순신’을 길러내며 다양한 기념사업과 교육사업을 펼치고 있다. 부산시의회가 2019년 부산대첩기념사업 지원을 위한 조례를 제정했고, 2023년 북항 재개발지 신설도로 명칭을 ‘이순신대로’로 명명한 것은 시민사회의 염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북항에 부산대첩기념관 건립을 위한 타당성 용역 예산도 편성돼 추진 중이다.
이런 역사를 품은 부산항 북항재개발지에 조성된 공원 명칭을 단지 부르기 쉽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물가에 있는 공원’ 즉 ‘북항친수공원’으로 정하기에는 너무 싱겁지 않은가. 엄연히 살아 넘실대는 역사성을 외면한다면 도시의 좋은 콘텐츠를 잃는 일이다.
지자체가 도시공원 명칭을 공모할 때 제시하는 최우선으로 꼽는 조건이 지역 특성과 역사성 반영임을 되새겨봐야 한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해 지역주민에게 긍지를 심어주기 위함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이제라도 온 시민이 한 마음으로 나서 북항 바다에 묻힌 민족정신과 구국충혼의 얼을 되살려 보자. 다시 승리의 역사, 희망의 역사를 북항에서 만들어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