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지브롤터 해협은 국제 물류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으로 전 세계 해상 운송의 약 10%에 해당하는 연간 12만여 척의 선박이 통과한다.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는 아시아와 유럽 간 해운 루트는 반드시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야 하므로 컨테이너 화물이 목적지가 아닌 항만에서 배를 갈아타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는 환적 수요가 많은 곳이다.
지브롤터 해협 입구에 위치한 스페인 알헤시라스항이 오랜 기간 서부 지중해 최대 환적 항만으로 위상이 확고했으나, 2020년부터는 직선 거리로 불과 15㎞ 떨어져 마주보고 있는 모로코 탕헤르 메드항에 그 지위를 넘겨줬다. 지난해 알헤시라스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470만 TEU에 그친 반면, 탕헤르 메드항은 1020만 TEU를 처리했다. 최근 3년간 물동량에서도 탕헤르 메드항은 연평균 16%씩 증가했으나 알헤시라스항은 감소세다.
모로코 북부 해안의 황량한 어촌 지역에 건설된 탕헤르 메드항은 모하메드 6세 국왕이 모로코의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했는데 현재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가장 성공한 항만 개발 사례로 꼽힌다. 개발 초기에는 일부 외신들이 실현 불가능한 비전으로 치부했지만, 아프리카판 싱가포르를 꿈꾼 모로코는 2007년 항만 운영을 시작해 18년 만에 컨테이너 처리 실적에서 세계 17위 항만을 보유하면서 글로벌 물류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탕헤르 메드항은 환적 비중이 94%에 달하는 항만으로 싱가포르항과 부산항, 말레이시아 탄중 팔레파스항에 이어 4번째로 세계 10대 환적 항만들 중 가장 높은 19%의 증가세를 기록 중이다.
단기간에 세계 20대 컨테이너 항만에 진입하며 아프리카의 기적으로 불리는 탕헤르 메드항의 성공은 개별 항만을 넘어 국가 전략 차원에서 항만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입지가 좋은 항만들은 많지만 탕헤르 메드항은 국가의 전략적인 기획과 투자로 그 이점을 극대화하고 지브롤터 해협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단순 통과점이 아니라 물류 중심지로 전환시켰다. 탕헤르 메드항은 자유무역지대와 산업단지, 수출가공구역을 항만과 함께 개발했는데 단순 물류 기능이 아닌 생산과 유통, 수출의 통합 경제 생태계 구축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인프라 개발은 정부가 주도했지만 덴마크 APM Terminals, 프랑스 CMA CGM, 독일 Eurogate와 같은 글로벌 선사와 터미널 전문 기업들이 운영에 투자하는 분업적 협력 구조를 만들어 항만 운영의 효율성은 높이고 해외 투자자들의 장기적인 신뢰를 확보했다. 현재 4개 컨테이너 터미널이 있는데 총 선석 길이는 4.2㎞, 야드는 50만 평에 달한다.
마지막으로, 선도적이고 과감한 대규모 투자로 경쟁 항만과의 초기 격차를 확보했는데 설계부터 대형 선박 접안이 가능한 충분한 수심과 자동화 터미널, 디지털 통관 시스템 등을 구축해 미래 대응력 있는 인프라를 선점했다. 올해 초에는 세계 2위 해운 선사인 덴마크 머스크가 중동에서 미국 동부로 가는 주요 서비스 노선에서 알헤시라스항 대신 탕헤르 메드항을 핵심 기항지로 발표해 모로코의 물류 여건과 인기는 더 커지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중국 관세 정책으로 중국에 진출한 일부 유럽 기업들이 본국에 가까운 곳으로 생산 거점을 이전하는 니어쇼어링으로 유럽 대신 모로코에 제조 공장을 이전하는 사례들도 나타나고 있는데 유럽 시장 접근성과 낮은 인건비 외에 탕헤르 메드항과 같은 우수한 물류 인프라가 있기 때문이다.
4, 5년 전부터 자동차 부품 제조 분야를 중심으로 우리 기업들의 모로코 진출도 활발하다. 탕헤르 메드항은 이미 전략적 공급망 허브로 진화하고 있어 성장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북미를 연결하는 불변의 지리적 이점은 공급망 급변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고 있고 해운·물류 기업들의 집중 투자는 항만의 지속 성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생산 기지라는 인식도 글로벌 제조 기업들의 진출을 계속 유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