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월, 일본에서는 동북아 해운물류 지형을 바꾸는 고베 대지진이 발생했다. 당시 세계 5위 항만이자 동북아 허브였던 고베항은 심각한 피해를 입어 부산항이 물류허브 역할을 이어받게 된다. 2000년대 중국 시장 개방이라는 훈풍까지 불며 부산항은 환적화물을 중심으로 급성장했는데 부산항의 환적화물 비중은 2001년 37%에서 2024년 55%까지 증가했다. 특히 부산항은 지리적 인접성으로 일본의 환적 허브로도 도약했다. 2001년에는 일본의 수출입 화물 중 3.8%만이 부산에서 환적되었으나, 2023년에는 그 비중이 10.2%까지 높아졌다.
부산항이 동북아 물류거점으로 성장하며 환적 허브라는 개념이 부산항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되었는데 환적 허브란 무슨 뜻일까? 쉬운 예로 대구에서 미국으로 여행갈 때 대구발 직항노선이 없어 인천국제공항에서 환승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상대적으로 여객 수요가 적은 대구에 값비싼 미국행 항공노선을 투입하기보다 인근 거점인 인천공항에 승객을 모아 미국으로 운항, 경제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항공사의 의도가 반영돼 있다.
부산항이 일본의 환적 허브로 자리잡은 데에는 다른 요인들도 있는데 우선은 부산항의 풍부한 수출입 화물이다. 원양항로의 글로벌 선사들은 요코하마항, 고베항 등 5개로 분산돼 있는 일본의 주요 항만보다 한국 수출입 화물의 60% 이상을 단일 처리하는 부산항에서 더 많은 화물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렇게 풍부한 수출입화물은 환적화물의 추가 유치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었다.
또한, 일본은 좁고 긴 지형적 특성과 높은 국내 운송비로 전국에 흩어져 있는 화물을 자국 거점항으로 집중시키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가령, 규슈지역 화주는 미국으로 화물을 보내기 위해 주요 항만 중 하나인 고베항보다 가까운 부산항에서 환적하려는 수요가 생길 수 있다. 이는 물론 수요가 적은 규슈에 미국행 직항노선이 거의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한일 노선은 대부분 한국선사가 운항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일 간에는 1967년 제정된 해운진흥법에 의해 한국 수출입화물은 원칙적으로 한국선박 운송이 의무화되었고 이러한 배경 속에 한일노선은 현재까지 대부분 국적선사들이 운항하고 있다. 국내에 강한 영업망을 보유한 국적선사들은 부산항을 거점으로 환적화물을 유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에 힘입어 부산항 환적화물 중 일본화물 비중은 2023년 14.2%로 중국에 이어 2위 규모로 성장해 왔으나 최근은 상황이 좋지 않다. 일본의 장기 저성장으로 환적물량도 감소하고 있기 때문인데 부산항 환적물량 중 일본 비중은 2024년 12.6%를 기록해 그동안 지켜온 2위 자리를 미국에 내주었다. 앞으로 전망도 밝지 않은데 일본 물량에 과거와 같은 성장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2020년 일본의 수출입 컨테이너 물동량은 팬데믹 영향으로 7.6% 감소한 1740만TEU를 기록했다.
이후 2021년 글로벌 물류대란이 발생, 세계 주요 항만들은 물동량이 급증한 반면 일본 항만은 2023년 1732만TEU를 기록하며 아직까지 2019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일항로의 선박 대형화 추세도 도전과제다. 그간 일본 지방항과 부산항 간 항로에는 300~800TEU급 소형선박이 투입되었으나, 최근에는 1000TEU 이상 선박이 투입되며 수용 능력이 적은 일본 지방항에 기항하기 어려운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과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부산항만공사는 일본 내에 부산항 경쟁력을 전파하기 위해 2000여 개 화주DB를 도출,포트 세일즈 활동을 펼치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부산항의 본질적 경쟁력 강화에서 찾아야 한다. 일본 화주들은 특히, 부산항에 대해 저렴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인식이 강한데 환적에 따른 정시성 저하 등이 불편 요소로 작용한다.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 국면에서 일본 환적화물 추가유치는 부산항의 미래 성장에 더욱 중요하다. 부산항이 일본 환적허브로 다시 비상하는 것은 부산항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혁신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