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주관으로 편찬 작업을 진행해온 ‘부산민주운동사’ 2021년판이 지난 달 새롭게 출간됐다. 1998년 부산민주운동사가 처음 출간된 지 23년 만의 일이다. 새로 출간된 부산민주운동사는 1987년 6·10민주항쟁 때까지를 제1권, 그 이후를 제2권에 나누어 기술했다. 대체로 제1권의 내용은 1988년판 민주운동사에서 서술 내용을 보완 수정하는데 중점을 두었고, 제2권은 6·10민주항쟁 이후 시민운동을 중심으로 민주화 시대의 민주주의 과제에 대한 성과와 한계를 밝히는 데 중점을 두었다.

1987년 6·10민주항쟁에 이어 이른바 6·29선언과 동시에 우리 사회는 민주화시대의 문을 열었지만 이후에도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른바 ‘역진적 민주화’가 진행되는 속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한국 민주주의가 큰 위기를 맞았고, 결국 민중은 ‘촛불혁명’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촛불혁명은 민주주의를 다시 한 번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그것이 이번에 부산민주운동사를 재발간하게 된 주요한 동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꼭 그것만은 아니다.

세계사적 견지에서 볼 때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특별한 점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많은 국가 가운데 한국처럼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는 보기 드물다. 무엇보다 4월 혁명을 기점으로 잡더라도 수십 년에 걸쳐 민주화 운동이 지속해서 전개됐다는 점 또한 독특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한국 민주화운동이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의 시발점이 지방이었다는 점이다. 4월 혁명이 대구의 2·28과 마산의 3·15로부터 발단했고, 부산 마산 광주에서 일어난 지역의 민주화운동이 서울의 정국 변화와 민주화운동의 전국화를 초래했다.

특히 한국 민주화운동사에 있어서 부산의 지역성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데 바로 부산이 4대 민주항쟁 중 하나인 부마민주항쟁의 진원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1980년대까지 부산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한 중심축이었다. 이 점을 제대로 해명하지 않고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왜 그렇게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져 왔는가를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1998년에 이어 2021년 부산민주운동사를 재차 발간해야 했던 진짜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부산의 위상은 무엇일까? 왜 부산은 민주화운동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 것일까?

서울을 제외하고 보면 1876년 개항 이후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인 곳은 바로 부산이다. 서구의 근대화 과정을 보더라도 도시의 발달과 민주 시민의 성장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개항기와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부산은 토착 주민보다는 일본인과 주변 농촌 인구를 포함한 외부 인구의 유입으로 인해 급속한 인구 성장과 함께 국제성과 개방성을 지닌 도시로 발전했다. 해방 이후에도 부산은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1960, 70년대 대규모 임해공업단지를 품은 공업도시로 발전했다.

특히 전쟁과 산업화는 부산이 근대적 시민사회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고 그와 함께 시민의식이 성장했음도 분명하다. 특히 한국전쟁 기간 중 거대도시로 급격히 성장한 부산은 약 3년간 임시수도로서 정치 중심지였으며, 이때 이승만 독재에 대한 경험은 이후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밑거름이 됐다. 게다가 부산은 1960년대 이미 대학이 밀집한, 서울에 버금가는 교육도시로 발전했다. 이를 배경으로 4월 혁명에 이어 부마민주항쟁 또한 학생들의 시위로 촉발됐다. 1980년대까지 지역의 민주화운동에 있어서 학생들이 선구적 역할을 한 것은 전국적 현상이지만 그 중에서도 부산의 경우는 특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지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한국전쟁 기간 부산인들이 겪은 정치적 경험은 1960년대 이후 한국 민주화운동 연구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요소이다. 4·19 혁명만을 예로 들어도 인접 도시 마산에서 일어난 3·15 부정선거 항의 시위가 4·19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던 사실은 누구나 익히 아는 사실이다. 부산 또한 4·19 혁명 당시 어느 도시보다 강경한 투쟁을 벌였고, 상대적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러한 4·19 혁명의 경험과 혁명 정신이 다시 부마민주항쟁에 어떤 방식으로든 전승됐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최근 한류가 급속히 확산돼 이제 글로벌한 현상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지난 2월 쿠데타 발생 이후 지속되고 있는 미얀마 민중의 군부에 대한 저항 속에서 1980년대 전후 한국의 민주화투쟁 때 불린 민중가요가 호명된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 민주화운동은 지역 민주주의 의 지속적인 성장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제대로 설명되기 어렵다. 새로 발간된 부산민주운동사가 ‘민주주의와 인권’으로 상징되는 부산의 지역적 정체성을 회복하는 디딤돌이 되길 기대해 본다.

동아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