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미국대통령선거는 재선에 나섰던 민주당 프랜클린 루스벨트와 캔자스 주지사였던 알프 랜던 공화당후보 간 치열한 경쟁이었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지는 수백만 명에게 질의해 랜던 후보가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고, 업계 신출내기인 조지 갤럽은 루스벨트의 승리를 점쳤다. 결과는 루스벨트가 60.8%의 득표율과 1100만 표의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가? 리터러리 다이제스트가 확보한 조사 명부는 당시 미국 사회에서도 부유층이나 등재되는 전화번호부나 자동차등록명부 같은 자료를 주로 활용한 데서 후보 지지가 이미 공화당 쪽으로 편향됐다. 그러나 갤럽은 여론조사 역사상 세계 최초로 과학적 표본추출을 실제 사례에 적용했다. 역사상 최초로 4선에 당선된 루스벨트 선거에 이후 두 번이나 다이제스트 방식과 갤럽 방식이 적용돼 갤럽 방식의 옳음이 증명됐다. 다이제스트는 곧 폐간됐고 지금은 갤럽 방식이 전 세계적으로 표준형으로 적용되고 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갤럽식 여론조사를 적용한 언론은 조 바이든의 승리를 예측했고, 인공지능(AI)은 도널드 트럼프 승리를 예측한 바 있다. 물론 여론조사로 박빙의 선두 다툼까지 언제나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것은 아니나 최소한 여론의 큰 흐름은 파악이 가능하다.
그런데 여론조사는 다양한 요인에 따라 응답자의 답변이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클린턴 대통령와 모니카 르윈스키의 스캔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의 업무수행에 관해 질문했을 때와, 한 인간으로서 클린턴을 질문했을 때 응답자들의 답변이 달라진다. 또한, 일반적으로 아들의 정계 진출에 대한 찬성률보다 딸의 정계 진출을 먼저 물어보고 나서, 그렇다면 아들의 정계 진출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찬성률은 대체로 더 높게 나온다. 이렇게 질문지에 사용되는 단어와 질문의 방식 등에 따라 응답자의 반응이 달라진다.
1990년대 미국의 이라크 전쟁 당시 “전쟁 비용과 목적을 생각할 때, 사망한 미군의 수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해 64%가 적절하지 않다, 소수인 33%만 적절하다고 응답해 부정적 의견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이라크 상황이 전쟁할 가치가 있다고 보나”라는 질문에는 가치가 있다는 긍정적 답변이 58%이고, 가치가 없다는 부정적 답변이 42%로 질문을 가치의 잣대로 구성하면 전쟁 수행의 지지도가 더 높았다.
따라서 여론조사 결과는 환경적 혹은 상황적 요인에 따른 가변성이 존재한다. 핵심은 이런 가변성 때문에 여론조사의 과학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대된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의 깊은 의미와 통찰력이 여기에 있다.
요 며칠 가덕도신공항 건설특별법 통과와 관련해 국민 반응을 조사한 기사가 다양한 언론 매체에서 보도되고 있다. 이 조사는 YTN이 의뢰해 리얼미터가 지난달 26일에 실시했다. 대부분의 보도는 여론조사에서 사용된 실제 질문 문항은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이번 법안 통과에 대해 대다수 국민이 매우 부정적으로 판단한다고 보도했다. 리얼미터 홈페이지(www.realmeter.net/category/pdf/)를 참고하면, 응답자에게 녹음된 목소리로 들려주는 실제 문항의 자구는 다음과 같다.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주도로 부산 가덕신공항 건설을 신속히 진행하기 위해 경제성 평가를 면제하는 특별법이 통과됐습니다. 귀하께서는 이 같은 처리가 얼마나 잘된 일이라고, 아니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이번 특별법의 상황을 설명하는 ‘경제성 평가를 면제하는’이라는 문구다. 이런 것을 ‘필터(Filter)’라고 한다. 필터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 여론조사의 반응에 일정한 흐름을 강제해 조사의 의도와 의지가 장착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잘된 일(전국 33.9%, 부울경 38.5%)과 잘못된 일(전국 53.6%, 부울경 54%)의 큰 격차가 도출돼 많은 부산시민도 이번 특별법 통과가 잘못되었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의 질문지를 작성할 때, 특별법의 상황을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지난 20년간 실패를 거듭한 신공항이 불가역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된 특별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했으면 그 결과는 크게 다르게 나왔을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가장 중립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문구는 다음 예처럼 특별법이라는 문구 앞에 어떤 형용사도 첨가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이번에 국회에서 통과된 가덕도신공항 건설특별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번 YTN에서 의뢰한 리얼미터 조사는 특정한 목적을 띠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편향된 조사라고 판단된다. 또한, 비슷한 기간에 YTN과 리얼미터가 실시한 정례 대통령 국정수행평가는 2513명(총 통화 4만5696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나 이번 조사는 고작 500명(총 통화 7981명)에 불과해 조사의 진정성과 준비성이 미흡하다. 500명 중 부울경 응답자는 76명뿐이다. 아울러 특별법 통과 이전에 몇 년간 가덕신공항은 환경, 비용 등의 측면에서 불필요하며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사업으로 국민에게 세뇌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진행된 조사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부산디자인진흥원장·신라대 국제학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