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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려증동 국립경상대 명예교수가 지난 9일 경남 진주시 주약동 자택에서 자신을 학자의 길로 이끈 조부의 '로석집(老石集)'을 펼쳐보이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 한글 맞춤법 바로잡기에 한평생
- '사필귀정' '독야청청' 신조 삼아
- '마르퀴즈 후즈 후' 인명사전에
- 국어국문학자 중 유일하게 등재
- 을사늑약·경술국치 등 역사용어
- 로마자 표기법 수십 년 만에 채택
- 두음법칙은 얼토당토않은 규정
- 학교문제는 지나친 경쟁서 비롯돼
- 스승 잊지않는 것이 제자의 도리
국내 국어국문학 분야 학자 중 유일하게 '마르퀴즈 후즈 후' 세계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 한일합방 을사조약 등의 역사용어를 경술국치 을사늑약으로 바로잡은 역사의식이 뚜렷한 학자, 두음법칙의 모순점을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평생을 싸워온 국어교육학자. 짐계(斟溪) 려증동(呂增東·79) 국립경상대 명예교수다.
스승의 날을 엿새 앞둔 지난 9일 오후 경남 진주시 주약동 려 명예교수 자택을 찾았다. 흰색 두루마기에 눈빛이 형형한 노학자가 '먼길 오셨소'라며 기자를 맞았다. 거실은 노학자의 저서들이 성채처럼 쌓여 있는 서재였다. 책장 위 벽에 걸린 두 개의 작은 현판이 눈에 띄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독야청청(獨也靑靑)'.
-두 현판의 글귀가 선생의 삶을 연상시킵니다. 걸게 된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요?
▶대학에 다니고 교수 시작할 때 세상은 세종이 만든 배달글자를 온통 엉터리로 쓰고 있었어요. 려(呂) 라(羅)씨 등 'ㄹ' 성씨들이 자기 성도 제대로 쓰지 못하게 하는 두음법칙은 백성을 괴롭히는 깡패규칙인데 지금도 말글살이를 옭죄고 있잖아요. 한일합방 갑오경장 개화 등 침략용어가 버젓이 교과서에 실리는 세상을 두고 볼 수가 없었어요. 이런 용어가 잘못됐다고 학술발표회 등을 통해 수없이 지적했는데도 저그들(국어학계 주류학자들)이 들어주질 않아요. 싸우다 보면 그른 것은 언젠가 고쳐질 것이라 믿고 '사필귀정' 현판을 걸었어요. 그런데 국어교육학과 첫해 졸업생들이 찾아와서 이럽디다. '교수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하지만 교수님 혼자 이러신다고 세상이 어떻게 바뀌겠습니까. 교수님 따라 하면(교과서에 실린 역사용어를 안 쓰고, 두음법칙을 어기면) 우린 교사가 못 됩니다'. 슬펐고 외로웠지요. 어쩌겠어요. 제자들 앞길을 막을 수는 없지 않아요. 그래서 그랬죠. '너희들은 너희 길로 가거라. 싸움은 나 혼자 하마'. 그래서 '독야청청' 현판을 내걸었어요. 두 글귀는 평생 나의 신조입니다.
책장의 서적 중에는 '마르퀴즈 후즈 후' 세계인명사전 1997년, 2010년판이 꽃혀 있고, 책장 위에는 '마르퀴즈' 인증 목판이 세워져 있었다.
-1996년판 '마르퀴즈 후즈 후' 세계인명사전에도 등재됐다고 들었습니다.
▶1996년 제13집이 미국에서 왔길래 펼쳐보았어요. 그런데 내 이름이 증동려(JEOUNG-DONG RYEO)로 성과 이름의 순서가 잘못 적혀 있는거예요. 화가 나 편지를 동봉해 미국으로 되돌려 보냈어요. 서툰 영어로 편지에 이렇게 썼어요. "코리안 이름적기는 코리안 식으로 해야 한다. 내 이름 소리 차례는 어디에 가나 'RYEO, JEOUNG-DONG'이다." 그랬더니 이듬해 이름을 제대로 적어 다시 보내왔데요.
-당시 국내 학계에서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는데 해외에서 먼저 인정해준 셈이네요.
▶인명사전에 앞서 인증 목판이 먼저 왔는데, 거기에 발행인 명의로 이렇게 쓰여 있습디다. '등재된 사람은 자신의 분야에서 업적을 성취하고, 또 그로 인해 자신이 사는 세상이 지니고 있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데 귀중한 공헌을 한 사람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취임 선서식에서 'I am Ban Gimun'이라고 하는 걸 보고 보람과 위로를 느꼈어요.
선생은 대화를 하다 말고 손을 잡아 끌었다. 몸이 성치 않은 부인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며 아파트 앞에 마춤한 커피숍이 있다고 했다. 60년 해로자(부인 이경숙)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엿보였다.
-참여정부 때 을사늑약이란 용어가 공식화되고 요즘은 경술국치란 용어도 언론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용어를 선생께서 맨 먼저 쓰신 건가요?
▶나의 할아버지(로석·老石 려구연·呂九淵)입니다. 한학자였던 조부의 '老石集'에 이미 일본 침략자의 입장이 아닌 우리 민족과 백성의 관점에서 지은 경술국치, 경술실국 같은 역사용어가 적혀 있어요. 학계에서는 아마 내가 제일 먼저 주장했을 테지요. 한일합방이란 용어가 1962년에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보고 분을 참기 어려웠어요. 그때부터 역사용어 바로잡기 연구에 본격 나섰지요.
-공식적으로 주장한 것은 언제인가요?
▶1976년 숙명여자대학에서 열린 제18회 국어국문학과 전국학술발표회로 생각되네요. 발표회 주제가 '개화기 문학'이었는데, 주제 발표 후 내가 질의를 했어요. 개화라는 말은 일본 쪽의 침략용어다. 총독부 발행 '조선사'에 '1894년 갑오년에 조선이 개화했다. 갑오년이 경장(更張)되는 해로 되었다'고 적혀 있다. 갑오년으로부터 16년 뒤가 경술년(1910년)이다. 16년 뒤에 나라가 망했는데, 16년 앞에 있었던 나라 사건을 경장(르네상스)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갑오망조(甲午亡兆)라고 해야 옳다. 갑오년이 개화면 그 이전 세종시대는 '미개 야만시대'냐고 목소리를 높였지요.
-반응은 어땠나요?
▶발표자는 내게 '대안을 내놓으라'고 소리치데요. 그러자 진행을 본 전광룡(서울대 문리대) 교수가 '질의자에게 대안을 내놓으라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일축하고 '개화기'란 용어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며 '가칭'을 붙이더군요. 이듬해 학술발표회에서 이씨조선→조선시대, 을사조약→을사늑약, 한일합방·일한병탄→경술국치 경술실국 등 력사용어 7개를 발표해 참석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어요. 그래도 잘못된 력사용어가 바뀌질 않으니 정말 미칠 지경이올시다. 정부가 고칠 의지를 보이지 않고, 또 언론도 고쳐쓰질 않으니까 그럴 수밖에. 2003년 당시 로무현 대통령이 을사조약 대신 을사늑약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어요.
-개정된 '로마자 표기법'과 '-읍니다'를 '-습니다'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선생께서 처음 했다고 들었습니다.
▶1970년대 초부터 ㄱ은 G로, ㅋ은 K로, ㅂ는 B로, ㅍ는 P로 적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정부가 그대로 수용해 공식화한 것은 2000년이에요. 30년이나 걸렸죠. 1984년에 '한국가정언어'란 책을 통해 '-읍니다'를 '-습니다'로 바꿔야 한다고 했는데, 2년 뒤 '-읍니다'가 폐기처분됐어요.
-두음법칙은 아직 논란이 많은데요, 두음법칙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근본적인 잘못은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라는 원칙 아닌 원칙이지요. 소리와 글은 다른 것이에요. 글자는 으뜸글자가 바뀌지 않아야 하는데 소리나는 대로 바꾸다보면 세종대왕이 만든 배달글자는 결국 원형을 잃어버리게 돼요. '첫소리법'이라고 해서 'ㄹ'를 앞에 쓰지 못하게 하는 규정도 당치 않아요. 주류한글학자들은 '발음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리 리 리 자로 끝나는 말은…' 노래도 하는데 뭐가 어려워요. 게다가 대법원이 1996년에 라(羅) 량(梁) 려(呂) 등 10개 'ㄹ' 성씨의 표기를 두음법칙에 맞게 표기한다는 호적예규를 발표했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에요. 2007년에 조치법으로 일부 완화되긴 했지만 아직도 북한의 동생은 리씨인데 남한의 형이 이씨라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우리 말글살이에 고통만 주는 두음법칙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해요. 헌법소원을 해서라도 죽기 전에 바로잡을 겁니다.
-얼마 전 여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학교문제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학생들을 지나치게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1970년대 내가 국어교육론에서 이런 주장을 했죠. 1등은 거만해서 사람 노릇 못하고, 2등은 1등이 교통사고 나길 바라고, 3등은 재미가 없고… 50등은 신세한탄을 한다. 요즘 대학에서도 C, D 학점을 받은 학생들은 교수에게 인사도 잘 하지 않아요. 이명박 정부 들어 더욱 심해졌다고들 해요. 상대평가를 없애고 적성에 근거한 독립평가(서술식)를 해야 합니다.
-며칠 후면 스승의 날인데, 스승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의 학문적 스승과 정신적 지주는 한학자였던 할아버지입니다. 대학을 간 것도 할아버지 문집을 내라는 부친의 무언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어요. 대학의 스승은 작고하신 소당(素堂) 천시권(千時權) 선생이십니다. 제자의 지적을 흔쾌히 수용할 정도로 품이 넓은 달인이셨지요. 스승의 길은 학문에서나 가르침에 있어서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옳은 길을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자의 도리는?
▶자신을 가르쳐 주신, 일으켜 주신 분을 그리워하고 잊지 않는 것이 겠지요.
선생은 힘센 쪽이 잘못인줄 알면서도 인정도, 고치려고도 하지 않는 세태가 가장 슬프다며 쓸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파벌을 짓는 것은 소인배나 할 일이라면서 젊은 사람들이 붓대롱으로 세상을 보지 말고, 약자를 도우며 살아가기를 당부했다. 편집부국장 pine@kookje.co.kr
● 약 력
▶1933년 경북 성주 출생 ▶1958년 경북대 사범대학 국어과 졸업 ▶1958~60년 합천농업고등학교 교사 ▶1963~70년 진주교육대학 교수 ▶1970년 국립진주농과대학(현 국립경상대학) 교수 ▶1971년 국어교육학과 창설 ▶1971년 경북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졸업▶1997년 마르퀴즈 후즈 후 세계인명사전 등재 ▶1998년 정년퇴직·국민훈장 모란장 ▶2010년 국제평화상 ▶현재 경상대 명예교수 ▶'한국가정언어' '한국역사용어' '배달문학통사 1, 2' '거짓이여, 물러가라' 등 저서 2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