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에 올라가 기우제(물제)를 지내면 비가 올까?
많은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이는 사람들의 사고가 비는 심리적인 기원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믿는 합리성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기우제는 비를 오게 할 개연성이 있는 행위로 알려져 있다. 먼저 기우제는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올라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이때 많은 사람들이 산꼭대기에서 피우는 먼지가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만들어질 수 있다. 또 기우제를 지낼 때는 많은 짚을 쌓아 두고 불을 피우는 행위가 꼭 들어가는데, 산 위에서 불을 피우는 행위에서 발생한 많은 연기와 재의 탄소 알갱이가 하늘에 올라 구름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기우제를 지냈기 때문에 비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일상생활을 원망보다는 기대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설령 비가 오지 않을 경우엔 자신들의 정성이 부족하거나 부정을 탄 경우이니 다시 정성으로 기원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 이처럼 비합리적인 주술 행위로 보이는 일들이 과학적, 심리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추석에도 이러한 비합리적인 행위들이 많다. 먼저 4700만명의 국민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3500만명이 이동을 해서 전국적으로 교통대란이 일어나고 있는데, 고향으로 수십 시간 달려가서 단 몇 시간 동안의 차례를 지내고, 다시 수십 시간 걸려 돌아오는 행위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인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한복도 그렇다. 남자 한복을 입을 때 대님(가불때이, 다님)을 매고 바지를 끈으로 매는 행위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여자들도 긴 한복을 가슴부터 입는 것에서 시작해 폭넓고 긴 치마가 부엌에서 일하거나 볼 일을 볼 때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반달 송편도 그렇다. 송편은 달을 보고 기원하는 의미에서 시작된 음식이라 한다면 송편의 모양이 반달이 되는 것이 이상하다. 중국 사람들이 월병(月餠)이라 하여 둥근 달 모양의 떡을 만들어 먹는 것처럼 송편은 보름달처럼 둥근 것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먼저 한복부터 생각하자. 한복에서 불편하게 보이는 요소는 끈으로 맨다는 점과 주머니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주머니는 천의 재활용과 관련해서 이해될 것이고 끈과 대님은 건강과 관련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한의학적으로 끈을 허리에 매고 신장 부위을 자극하거나 끈으로 발목을 자극하면 살이 찌지 않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머리에 끈을 동여매고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우리네 습관을 생각하면 동여매는 일은 피상적인 불편함보다 보이지 않는 건강함에 있다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송편은 원래 솔잎을 깔고 찐다고 송편(松)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송편은 '손으로 빚는 떡'이라는 뜻으로 '손편'에서 바뀐 말이다. 우리 경상도에서는 '생편'이나 '생핀'이라고 하는데 이 송편에는 손자국이 드러나게 빚는 기원적 의미의 떡이다. 떡의 흰색과 더불어 반원은 완전함을 바라는 기수 문화의 반영물이다. 기수 문화란 양수인 홀수를 선호하는 문화로 완벽한 완전함을 추구하는 짝수(우수)문화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와 일본 사람들은 축의금이나 부조금을 1, 3, 7, 9 등의 홀수에 해당하는 금액을 내어 놓지 절대 짝수로 내지 않는다. 더욱이 일본 사람들은 짝수의 선물을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로 생각한다. 또 우리도 음식물의 가짓수도 3첩상, 5첩상, 7첩상 등으로 홀수로 맞춘다. 그러나 짝수 문화권의 중국에서는 선물을 홀수로 주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며 초대한 손님과 음식의 가짓수도 짝수이어야만 한다. 이런 이유로 중국에서는 완전한 보름달 모양의 월병을 만들고 선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우리 나라에서는 반달의 송편을 만들어 소원을 비는 것이 자연스런 행위가 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엄청난 교통난을 무릅쓰고 고향으로 가는 행위도 반달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름달 같이 완전하게 되어 가길 소망하는 의식의 일종이다. 이러한 의식은 비합리적인 고통을 다 감쇄할 만큼의 정신적인 위안과 넉넉함을 바탕으로 하는 합리적인 행위이다.
경상도 말에도 이러한 합리성이 반영되어 있다.
송편을 부패하지 않게 만드는 소나무 가지를 '솔까지(관솔)'라 하고 마른 소나무 땔감을 '소깝' 혹은 '소깨비'라고 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소나무'라고 하지만 유독 경상도 지역에서만 '솔나무'라고 하는 것이 이상하고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엔 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솔+나무'를 '소나무'라 발음하는 이유는 '솔라무'라고 소리가 변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ㄴ' 앞에 있는 'ㄹ'을 탈락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소리를 끊어 발음하는 경상도 사람들의 습관에는 '솔나무'는 자연스러운 발음이 된다. 이런 발음은 '솔가치' '솔방울'과 같은 어형과 동일한 형태인 '솔'을 유지하여 기억하기도 편한 장점이 있다. 또 목요일이 '모교일'로 발음되지 않고 '몽요일'로 촌스럽게(?) 나타나는 발음도 이와 같이 첫음절을 끊어 읽는 버릇 때문에 나온 자연스런 형태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부침개'를 '찌짐, 찌지미'라고 하는데, 원래 불에 달군 판에 기름을 바르고 전 따위를 부쳐 익혀 만드는 방법은 '지지다'이지 '부치다'가 아니다. '부치다'는 번철에 기름을 바르고 얇은 빈대떡, 저냐(전유어), 전병(煎餠) 따위의 음식을 익혀서 만드는 것이라서 가자미(까지매기), 두부(조피, 조포) 등 두꺼운 음식을 기름에 익히는 것은 부치는 행위가 아니라 지지는 행위이다. 이러한 지지는 행위는 '찌지다'
로 첫소리가 강화되어 나타나고 이 '찌지다'를 '-ㅁ'을 붙여 명사로 만든 것이 '찌짐'이다.
경상도 일부 지방에서 젯상에 사용되는 '상어고기'를 '돔배기, 톰배기, 덤비기'라고 하는데, 이것은 '도막(토막)+이'에서 변한 말로 상어의 토막 고기란 뜻이다. 이것도 바다에서 가장 힘센 상어 고기를 토막내어 조상께 바침으로써 자신들의 지극한 정성을 보이고 음덕을 바라는 순순한 기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추석과 관련된 비합리적인 행위와 불편함, 그리고 어색한(?) 사투리는 나름대로의 합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유산이다.
이근열 부경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