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보면 나라마다 거스름돈을 주고받는 방식은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큰 액수의 돈을 먼저 건넨 뒤 그 다음 작은 액수의 돈을 건네지만 서양 사람들은 작은 액수의 돈을 먼저 건넨 뒤 그 다음에 큰 액수의 잔돈을 건넨다. 즉, 만원을 주고 2500원어치의 물건을 샀을 때, 서양 사람은 500원을 먼저 건네주고 그 다음 7000원을 건네준다. 그것도 거스름돈을 한꺼번에 계산하지 않고 물건 값에 돈을 일일이 더하면서 셈을 하는 방식을 택한다. 만일 7달러짜리 물건을 사고 10달러를 주면 주인이 8, 9, 10 순서로 1달러씩 읊조리면서 3달러를 준다. 암산이 강한 우리 나라 사람이 보기엔 답답하고 짜증나는 일이지만 정확한 셈을 위한 필요한 수단이다.
또 손을 숫자를 표현하는 방식도 나라마다 약간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은 손가락으로 수를 셀 때, 손을 편 후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굽혀가며 세지만, 서양 사람은 주먹을 쥔 후 손가락을 밖으로 하나씩 펴 가며 센다. 손가락을 밖으로 펴는 방법에도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유럽과 남미의 칠레 사람들은 엄지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새끼손가락까지 차례로 펼쳐 나가지만,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사람들은 새끼손가락을 먼저 펴고 마지막에 엄지를 편다. 미국이나 캐나다 사람들은 검지부터 펴기 시작해서 새끼손가락까지 넷을 센 후 다시 엄지를 펴서 다섯을 센다. 중국은 우리와 같은 동양문화에 속하지만 수를 세는 단위가 다른 나라들보다 발달해 있다. 보통의 경우 한 손을 조합해서 나타낼 수 있는 수가 다섯밖에 없지만 중국 사람들은 한 손에 아홉까지 만들 수 있다. 즉, 우리 나라 사람은 여섯을 만들 때, 한쪽 손의 손가락을 모두 펴고 다른 쪽 손의 손가락 한 개를 펴지만, 중국 사람들은 한 손만 이용해 주먹 쥐고 엄지와 새끼손가락만을 펼친다. 일곱은 엄지와 검지를 붙여서 만들고, 여덟은 엄지와 검지만을 펼쳐 손바닥이 자신을 향하도록 해서 만들며, 아홉은 검지를 펼쳐 끝을 약간 구부려 만든다. 중국 사람도 열은 두 손을 이용해서 오른손의 검지와 왼손의 검지를 서로 겹쳐 열십(十)자로 만든다.
이러한 여러 방법은 새끼 손가락을 굽히고 펴는데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에겐 어려운 방식으로 불편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의 다름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의 차이로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즉, 거스름돈을 지불하는 방법과 손으로 숫자를 세는 방법은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나가는 방법과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가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앞의 것은 완전한 것을 대상으로 해서 자꾸 작아지는 것으로 인식하는 방법으로 내향적 문화, 소극적 문화의 산물이고, 뒤의 것은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모아가는 방식으로 외향적 문화, 적극적 문화의 산물이다. 이러한 현상은 언어 전반에도 잘 나타나는 일반적인 인식의 차이일 뿐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
우리말은 주어, 목적어, 서술어 등의 완결된 구조를 미리 만들어 놓고 거기에다 낱말을 집어 넣는 방식이라면, 영어는 주어 뒤에 서술어만 놓고 다시 덧보탤 성분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우리말은 꾸미는 말이 앞 쪽에 놓이지만, 영어는 꾸미는 말을 뒤에 덧보태서 무한히 길어질 수 있다. 주소의 표기, 날짜의 표기 등에서도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우리말 고유어로 셀 수 있는 가장 큰 숫자는 아흔 아홉이다. 예전에는 백(百)을 뜻하는 '온'과 천(千)을 뜻하는 '즈믄', 만(萬)을 뜻하는 '골', 억(億)을 뜻하는 '잘', 조(兆)를 뜻하는 '올'도 있다고 하지만 '온, 즈믄'은 이미 사라진 말이며, '골, 잘, 올'은 최현배님이 밝힌 것으로 구체적으로 확인이 안 된 것도 있다. 한 자릿수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이고 두 자릿수는 '열,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이다. 그런데 영어에는 둘(two)과 스물(twenty)은 의미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은 의미적으로 동일한 어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말 둘과 스물, 넷과 마흔, 다섯과 쉰 사이의 형태적 유연성이 없다. 셈말의 경우 모든 사람이 쉽게 인지하고, 기억하기 편리하도록 형태적 유연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경상도말은 기본적인 수를 세는 방법에도 다른 지역보다도 형태적 유연성이 많다.
먼저 '하나, 두나(둘), 시나(셋), 니나(넷), 다앗나(다섯), 여엇나(여섯), 일곱나(일곱), 여덜나(여덟), 아곱·아옵나(아홉), 열나(열), 시물나(스물), 서런나(서른), 마안나(마흔), 쉰나(쉰), 여신나(예순), 이런나(일흔), 여던나(여든), 아언나(아흔)'와 같이 '하나'의 어형의 '-나'가 '두, 시, 니, 다앗, 여엇, 일곱, 여덜, 아옵, 열, 시물, 서런, 마안, 쉰, 여신, 이런, 여던, 아언'에 동일하게 붙어 있어 형태적으로 동일한 패턴을 보인다. 여기서 '나'는 '-낱'에서 나온 말로 추정된다.
이러한 형태적 유연성은 '하니, 두리, 서이, 너이, 다아, 여어, 일고비, 여더리, 아고비, 열이' 등에서 나타난다. 이는 '하, 두, 시, 니, 다앗, 여엇, 일곱, 여덜, 아옵, 열'에 '-이'를 붙여 세는 방법인데, 다섯이나 여섯에는 '다이, 여이' 혹은 '다앗이, 여엇이' 등으로 나타나지 않고 '다아, 여어'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이하다. 또 이러한 방법은 열까지만 세는 것에만 나타나고, '스무리, 서른이, 마흐니' 등과 같이 나타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또 숫자 세기는 입을 통해 나타나므로 노력절감을 위해 '다섯'을 '다' '여섯'을 '여'라고 하여 '한, 둘, 세, 네'와 같이 한 음절로 발음하는 경향도 나타나며, 발음이 약한 'ㅎ'은 탈락되기도 한다. 즉, '다서, 다아, 다(다섯), 여서, 여어, 여(여섯)' 등에서는 'ㅅ'이 약화되거나 탈락되어 나타나지 않고, '아옵(아홉), 설언(설흔), 마언(마흔), 일언(일흔), 아언(아흔)' 등에서 'ㅎ'이 약화되어 들리지 않는다.
경상도 말의 차례를 나타내는 말은 '첫채, 두채, 시채, 니채, 다아채, 여어채, 일곱채, 여덜채, 아곱채, 열채' '다섯분채, 여덜분채, 아옵분채', '첫채뿐, 니채뿐, 아옵채뿐' 등이다. 여기서는 다른 지방의 '째'가 '채'로도 나타나고 '번째'도 '분채'로도 실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간혹 '분채'가 '채뿐'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다른 지방 '째 번'의 변이형이다.
경상도말에서도 '한둘, 두우(두개 정도), 서너, 너댓, 대앳(다섯 정도), 여나무(열남짓)…' 등과 같은 어림수가 사용된다. 어림수는 추상적 인식의 표현으로 객관적이지 못한 대상을 지칭하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사
고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림수는 대상의 개수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거나 상황에 따라 다른 조건이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들을 이를 배려한 언어 책략으로 보인다.
즉, '여나문 개 가 온나'는 열 개를 기준으로 하고 나머지 한 두 개 정도는 듣는 사람이 상황에 따라 더 가지고 올 수도 있고 적게 가지고 올 수 있는 배려가 있는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근열 부경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