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선사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문화 발전에 기여한 발명품을 순서대로 조사한 적이 있다. 1위가 무엇일까? 전기, 컴퓨터, 불? 아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수세식 변기를 1위로 꼽았다. 우리들의 인식으론 수세식 변기가 뭘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생각하겠지만, 서양인들에게는 지독한 냄새와 처리과정의 복잡함으로 인해 그들의 고통이 매우 심했기 때문에 수세식 변기는 대단한 것이라고 한다.
또 서양인의 양산과 하이힐도 이러한 처리과정과 관련해 생긴 것이라고 하니 수세식 변기는 그들에겐 골치 아픈 배설물 처리를 해결한 획기적인 발명품임엔 틀림이 없다. 과거 중세 유럽에서는 아침이 되면 밤새 집안에 모아 두었던 배설물을 집밖으로 처리하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이층에 사는 사람들이 모아둔 배설물을 창문으로 내다버려서 거리엔 온통 배설물 냄새가 진동하고 발에 밟히기 일쑤였다고 한다. 심지어 길을 걷다가도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배설물을 걱정하며 거리를 걸어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하이힐을 만들어 신고 배설물을 피해 걷고, 대낮에도 파라솔을 만들어 들고 다니며 위에서 떨어지는 배설물로부터 옷을 보호하려 했다고 한다. 이 점을 생각하면 서양인들에게 수세식 변기는 아주 중요한 문화적 지표임에 틀림없다.
이에 반해 재래식 변소는 이른바 '푸세식'이라 지독한 냄새와 불결한 처리과정으로 인해 세련되지 못한 촌스러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농경 문화를 기반으로 한 재래식 변소는 순환을 기본으로 한 배설물의 효율적인 처리 과정이므로 전혀 촌스러운 것이 아니다. 수세식 변기가 세련된 것이라는 생각의 밑바탕에는 배설물은 더러운 것이며, 안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이라는 단순히 외형적인 가치에 묶인 현상학적인 태도가 깔려 있다. 수세식 변소의 맹점은 집에서 보낸 그 물이 눈으론 보이지 않는 순환 과정을 거쳐서 다시 우리 가정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서양 사람들은 배설물이 그냥 눈에서 사라져 깨끗하게 처리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물로 걸러진 배설물이 하천을 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에 흘러간 물을 물고기가 마시고 먹어서 우리의 식탁으로 되돌아온다는 점을 간과한, 촌스러운 생각이다. 그러나 '푸세식'은 모아진 배설물이 거름이 되고 나중에 배추나 무들의 양분이 되어 우리들에게 먹을거리로 다시 돌아오는 적절한 순환 과정을 이룬다는 점이 중요하다. 재래식 변소의 순환의 질서는 안 보이는 것에도 일종의 순환이 존재한다는 인식의 소산으로 이해된다면 촌스러움의 이미지를 넘어서 인간을 생각하는 세련된 인식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처럼 문화의 세련됨과 촌스러움도 결국은 단순한 현상적인 가치만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저에 자리하고 있는 인식의 차이와 함께 비교할 때 비로소 나타날 수 있는 개념이다. 언어도 문화의 일부라 할 때, 타 언어에 대한 인식도 단지 외형적 가치만의 비교가 아닌 인식과 문화적 가치에 기반을 두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넷에 나타난 외지인들의 경상도 말에 대한 인식은 극과 극이다. 가장 짜증나는 말도 경상도 말이요, 멋있는 말도 경상도 말이고, 좋아하는 말도 경상도 말로 나타난다. 이는 신기함에 대한 반응이 긍정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낯섦과 촌스러움으로 인지한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으로 표출된다. 그런데 다른 지역 사람들이 경상도 사투리 중에 가장 촌스러운 것으로 거론하는 낱말은 무엇일까?
모든 어휘가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딸딸이(슬리퍼), 쌔때(열쇠), 봉다리(봉지), 구녕(구멍), 동글뺑이(동그라미)' 등이 촌스러운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언어를 촌스럽다고 규정하고 그 낱말을 확인하는 것도 촌스러운 일이지만 그들의 언어적 환경과 인식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언어를 평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경상도말의 촌스러운 낱말은 인식의 편이에서 오는 경제적 행위의 소산이거나 발음의 편이에서 오는 단순한 어형, 과거 중세말의 흔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먼저 경상도말 '딸딸이'는 '슬리퍼'에서 나는 소리에 따라 붙인 말이다. '슬리퍼'는 발음도 어렵고 그 대상이 인식도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사물의 특성인 '딸딸'거리는 소리에 착안하여 '딸딸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경상도말은 인식의 편이를 위해 사물의 구체적인 특성을 그 명칭으로 붙이는 것이 특징인데, '경운기'를 '기웅기'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그 소리가 '탈탈'거린다고 해서 '탈탈이'라고 명명하는 것도 이와 유사한 것이다. 또 '장끼, 까투리'로 암수를 구분하는 어려운 말보다는 '암꽁, 수꽁' 등과 같이 쉬운 말로 인식하는 것도 이와 유사한 방식이다.
경상도말 '쌔때'는 '쇠로 만든 대'란 뜻의 '쇠대'에서 온 말로 '열쇠'의 옛말이다. '자물쇠'는 '쇠로 만든 통'이란 뜻의 '쇠통'(쌔통)으로 불린다. 보통 '자물쇠'와 '열쇠'는 잠그고 연다는 기능에 초점을 둔 말이라면 '쇠통'과 '쇠때'는 '쇠로 만든 통과 대'라는 재질과 형태의 특이성에 따라 붙인 명칭이다.
이와 함께 '봉다리'는 한자말 '봉지'의 '봉'에다 '-다리'를 붙여 만든 것으로 '-다리'는 작은 물건에 붙이는 '-아리'의 변이형이다. '끈'도 긴 것은 그냥 '끈'이지만 작은 것은 '끈'에 '-아기/애기'를 붙여 '끈애끼'로 쓰거나 '-다리'를 붙여 '끈다리'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또 '구녕'은 '군녕'으로도 나타나는데 이는 옛말 '구녁'이 그대로 남아 있는 형태이다. 경상도 말은 옛말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일종의 중세국어의 화석과 같은 말이라 특이한 어형은 중세어를 비교하면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낱말이 많다.
마지막으로 '동글뺑이'는 '동그랗다'에서 '뱅이'를 붙인 말인데, 이 '뱅이'는 둥금에서 연유된 '방'에 이름씨를 만드는 '-이'를 붙여 만들어진 말이다. 세모난 것은 '세모재비', 네모난 것은 '네모재비'라 하는 것도 '세모, 네모'에 '-잡이'를 붙인 말로 '동글뺑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말이다.
이처럼 이상하게 보이는 경상도말의 낱말도 인식의 편이나 발음의 편이를 위한 것이거나, 옛말의 흔적을 간직한 말일 뿐이다. 단지 하나의 낱말을 자신의 언어와 비교해 평가하거나 그 말을 사용하는 화자들의 인식을 이해하지 않고 현상만 판단하면 대상의 언어가 생소하거나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결국 경상도 말에 내재한 인식들을 자세히 이해해야 그 촌스러운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모든 타지역 언어를 현상만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은 촌스러운 것이며 그 현상 속에 스며든 그들의 인식을 추적하고 그들의 정신 세계를 이해해서 그 언어를 평가하는 것이 세련된 것이다.
이근열 부경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