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사람들은 누구나 도움을 청한다. 이 때, 우리 나라 사람들은 "사람 살리라"라고 외치지만 영어권의 사람들은 "help me(헬프 미)"라고 한다. 물론 경상도 사람은 "여 사램 살리라"고 하든지 "사램이 죽는다"라고 한다. 여기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사람'이라고 지칭하는데 비해 영어권 화자들은 '나'로 지칭한다는 것은 특이한 점이다. 동일한 존재를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것과 '나'로 지칭하는 것은 존재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반영한다.
자신을 소개할 때, 서양 사람은 '성실하다, 친절하다, 축구를 좋아한다' 등과 같이 자신의 성격이나 자신의 행동을 위주로 설명하는 경향을 보이며, 동양 사람은 '나는 친구와 같이 노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한다'와 같이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적 관계를 동원하여 대답한다. 이렇듯 동양 사람은 사물의 관계에 따른 범주로 인식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어서 주체적 개념보다는 범주적인 개념을 주로 사용한다. 이에 반해 서양 사람은 사물의 본질에 충실하여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서 범주적 인식보다는 개체적 인식으로 사물을 이해한다.
그래서 특정한 사고가 나면 서양 사람들은 사고의 원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고가 난 배경과 환경을 중요한 문제로 제기한다. 특히 우리나라 매스컴에서는 특별한 사고가 나면 그 사람의 성장 과정에 따른 특이함을 자세히 설명하고 주변적인 인물의 평판, 교우 관계 등 사건과 관련없는 내용을 밝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와 같이 언어 인식적 측면에서 동양 사람은 서양 사람들보다 사건간의 관련성을 잘 파악하고 주변 환경에서 개별적인 사물을 분리하는 문제에선 서양 사람들보다 어려워한다. 또 서양 사람들은 사람의 행동을 설명할 때 상황적인 요인은 무시하고 그 사람의 내부 특성만 강조하며 동양 사람들은 어떤 일이 발생하고 나면 '내가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지'라는 예측적 성향을 강하게 보인다. 더욱이 서양의 유아들은 동사보다도 명사를 더 빠른 속도로 배우는데 비해 동양의 유아들은 명사보다도 동사를 더 빨리 배운다. 언어적 표현 역시 명사 중심의 서양 언어와 동사 중심의 동양 언어로 구분된다.
그래서 우리말은 '첫사랑하시었겠습니다'와 같이 동사에 '높임, 과거, 추측, 서술' 등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서술어의 정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전달하는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없다. 또 미국 사람과 한국 사람에게 여러 색깔의 볼펜을 선물로 주면서 고르라고 할 때 미국사람은 가장 희귀한 색의 볼펜을 고르고 우리 나라 사람은 가장 흔한 색깔의 볼펜을 고른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신의 개성을 추구하는 서양사람과 자신의 개성보단 집단의 인식을 더 고려하는 동양 사람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개성적 성향의 서양 사람과 집단적 성향의 동양 사람의 차이는 언어에서 나타나고 이러한 언어의 사용은 그들의 고유한 인식을 강화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러한 관계적 인식의 대표적인 표현은 상대를 높이고 낮추는 대우법과 호칭어에서 잘 드러난다. 대우법과 호칭어는 특정한 체계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틀에 벗어나면 어색하게 여겨지거나 되바라진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 보통이다. 또 지역별로 그 등급이 다르고 사용되는 경우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인 잣대로 판단해서는 편견이 생기기 쉽다.
예를 들어 경상도에서 "할매 니가 안 그랬나, 할배 니가 무라 했제" 등과 같이 상대가 손윗사람일지라도 특별한 비격식 상황에서 반말투의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또 가까운 형님뻘 손윗사람에게는 '자네'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이런 점으로 다른 지역 사람들은 위아래가 없이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경상도 말은 '할마시, 할매, 할무이'나 '할바시, 할배, 할부지' 등에서 보듯 격식에 따라 다양한 호칭이 있기 때문에 특정한 집단에서 격식을 갖추지 않고 하는 말을 일반화하는 것은 잘못이다.
경상도 말에서 '할마시나 할바시, 할매탕구, 할배탕구' 등은 속된 표현이며, '할매나 할배'는 평칭이며 '할무이'나 '할부지'는 높임의 표현이다. 공식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친밀감의 표현으로 '할매'나 '할배'를 쓸 수 있으며 부름말이나 높임의 의미로 '할무이'나 '할부지'를 쓴다. 그러나 속된 표현의 '할마시, 할바시'는 본인의 가족이외 타인을 지칭하는 데는 평소에 쓰이지 않으며, '할매탕구, 할배탕구'는 욕이나 비하의 의미로 쓰일 뿐이다.
덧붙여 노인을 '나만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평칭이지만 노인을 대접하여 부를 때는 '어런시, 어런'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어런시'는 경상도 말의 특이한 유형인데 '어른'에 높임의 '시'가 뒤에 붙은 특이한 꼴이다.
또 '할배 니' '장군 니'는 격식적인 표현이 아니며 나이가 적어서 체면을 모르고 어리광을 부릴 때만 쓸 수 있는 표현이다. 호칭 뒤에 '니', '지그' '저그' 등과 같이 불필요한 수식하는 말이 붙는 것도 경상도 호칭의 특징인데, '철수 지그 아배, 순이 지그 엄마, 저가바이'처럼 부류의 지칭을 한번 더 언급하면서 관계를 규정하고 확인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경상도 말 '자네'는 예사 낮춤으로 쓰이는 호칭어이다. 높임의 뜻으로 쓰이는 것은 '당신'으로 지칭되며 예사 낮춤으로는 '자네' 아주 낮춤으로 '니, 재개, 이핀'이 쓰이는 경향이 있다. '재개'는 토박이들이 자기와 같은 부류의 상대로 인식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은 "재개가 해 놓고 와 야단고?"에서 사용되는 것처럼 '자기'들의 뜻인데 옛말 '자기'라는 뜻의 '자갸'에서 변한 말로 보인다. '이핀'은 '이녁'과 같이 이쪽이라는 뜻인데 다른 지방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부를 때 쓰는 말이지만 경상도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 쓰이는 것이 특징이다.
인간의 만남은 대상에 대한 호칭과 지칭에서 비롯된다. 그렇기 때문에 호칭과 지칭은 공동체 언어 생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반적으로 호칭과 지칭 방식은 높임법처럼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인식과 태도를 반영하는 산물이다. 매스컴에 등장하는 '할배 니'라는 비격식적인 호칭과 지칭 방식의 남용은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오해와 편견을 조장할까 염려된다.
이근열 부경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