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선생님의 이야기가 있다. 먼저 충청도에서 살았던 학교 선생님이 전라도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전근을 한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문제들을 풀어가며 학생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다.
설명 끝에 학생들에게 "이게 겨? 안 겨?" 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몰라서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선생님만 바라보고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까, 선생님은 재차 "이게 겨? 안 겨?" 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계속 어리둥절해 하며, 선생님만 쳐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선생님은 "맞다, 틀리다"로 대답을 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신경질을 내며 더 큰 소리로 "이게 겨?, 안 겨?"하고 말했다. 그러자 학생들이 모두 바닥에 엎드려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또 다른 경상도 출신의 선생님이 서울 학교에 임용되었다. 생물시간 연못 속의 미생물에 대한 수업 시간이었다. 연못 속에 살 수 있는 여러 생물들이 그려진 도감을 들고 선생님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야! 느거들 이거 좀 보거라. 연못 속에 미생물들이 억수로 많재! 그쟈?" 그러자 학생들이 "선생님 억수로가 무슨 말입니까?"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난감해 하면서 "억수로? 아! 억수로는 몽창시리 많다는 뜻 아이가"라고 답했다. 또 학생들이 "선생님! 몽창시리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약간 짜증이 난 선생님이 "몽창시리는… 가만있자… 생물이 연못에 미생물이 버글버글 한다는 뜻이다. 인자는 알아 듣것재?" 이에 학생들이 다시 "선생님 '버글버글'을 모르겠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아참. 미치것네. 버글버글은… '쌔비릿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연못에 미생물이 '항거석' 있다는 말이다. 알것나?"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이 "선생님. '쌔비릿다'는 말과 '항거석'이 무슨 말이지 전혀 모르겠어요"하고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있는 대로 고함을 질렀다 "야, 이놈들아, 그 말은 미생물이 연못 속에 천지 삐까리로 있다는 말이다. 알것나!"라고 했다.
이 우스갯소리의 선생님들은 답답하고 융통성이 없고 권위적인 선생님으로 보인다. 특정 사투리 화자인 선생이 교육의 대상인 아이들의 수준과 언어 이해 정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데 이 우스갯소리의 문제가 있다. 이 우스갯소리에 나타난 선생님은 안타까울 정도로 교육에 대해 무지하다. 학생들이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나 개념이 있다면 자기 스스로 전달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살펴보아야 했다.
위의 충청도 선생은 '맞느냐 안 맞느냐'를 '겨, 안 겨'로 아이들을 윽박지르고, 경상도 선생은 "매우 많다"란 개념을 "억수로, 몽창시리, 버글버글, 새삐릿다, 항거석, 천지 삐까리"로 바꾸어 가면서 자신의 말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이러한 우스갯소리 속의 선생들은 충청도말, 경상도말을 사용해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선생님으로서의 기본적인 원칙을 어겼다는 것이 더 문제이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수준에서 생각하고 전달의 효율성을 고려해서 언어를 선택해야 하는데 자신의 언어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일종의 폭력에 해당한다. 서울 아이들에게 경상도 말을 쓰는 것이나 전라도 아이들에게 충청도 말은 쓰는 것은 비교육적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선생님은 사투리 사용하면 안 되며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으로 정해졌다. 물론 맞는 말이다. 언어의 통합을 위해 표준어 교육은 필요하다.
그러나 경상도 아이들에게는 경상도 말로 교육하고 전라도 아이들에게는 전라도 말로 교육하는 것이 지식의 전달과 설명에 더 효율적이다. 부산의 학생들은 서울말에 신기해하고 관심을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언어와 다른 서울말이 오히려 이상하게 들리며, 닭살 돋는다며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학생 자신들이 쓰거나 접하지도 않는 말을 들으며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두 가지 모두를 신경 써야 한다는 점에서 효율적이지 못하다.
심지어 수능시험에 듣기 시험을 표준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말로 들려줘야한다는 것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듣기시험의 측정내용은 전달 매체인 언어가 문제가 아니라 전달의 내용의 문제이다. 수능 공부를 하는 학생에게 서울말을 중심으로 한 표준말의 짐까지 부담한다면 지방학생에게만 불리한 수능이며 공정한 경쟁 원리는 아닐 수도 있다.
듣기 교육의 공정성은 모든 학생들에게 지방의 언어를 체계적으로 교육해서 서로의 가치를 이해하려는 태도를 기르게 하는 것이다. 서울 학생들도 전라도 말을 배우고 전라도 학생도 서울말을 배우고 경상도 학생도 전라도 말을 배우기 시작하고 이것이 중요한 교육의 목표라고 생각한다면 한 곳으로 편중된 어색한 통합의 논리를 극복할 수 있다.
우리 나라는 그 동안 강한 전체주의적 태도에 의해 모든 지방적 요소는 전체를 위한 도구적인 성격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 중심으로 한 중부 지방이 표준이 되고 그 표준 속에 지방의 다양한 가치는 흡수되어 그 정체성마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표준으로서의 한국어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지역의 언어도 그 지역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어느 특정 지역말이 대한 민국의 정체성을 대표할 수는 없으며 지역말이라는 정체성들이 모여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 사람에게 자신의 말로 인해 모멸감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말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교육의 힘에서 나온다. 광주나 대전 사람에 대한 이해는 내가 부산 사람이라는 확실한 정체성에서 출발한다. 자신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며 다른 지역 사람의 말에 귀를 열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투리의 교육은 중요하다.
이근열 부경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