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할리와 미즈노 준페이. 한 사람은 미국인으로서 한국으로 귀화한 사람이고 한 사람은 아직 일본인으로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들의 공통점은 외국인 출신이라는 점, 한국인 아내를 둔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우리말을 잘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한우, 이다도시 등과 같은 외국인보다 로버트 할리나 미즈노 준페이가 더 인기가 좋은 것은 그들의 외모가 아니라 구수한 사투리를 서울 사람보다 잘 쓴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이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 아무도 방송에서 사투리를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데도 부산말이나 전라도말을 자랑스럽게 말하며 인기를 끈다는 점이 더 공통점이다. 이들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방송에서는 표준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있으며,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들의 사투리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신기해하고 있다. 경상도 출신 강호동이 오락 프로그램에서 억지로 어색한 표준어로 진행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에 비해 이들은 사투리로 마음껏 이야기해서 인기를 얻는 것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사투리에 대한 편견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근데 여기서 엉뚱한 의문이지만 미국사람인 로버트 할리가 부산말을 잘하고 일본 사람인 미즈노가 전라도말을 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꾸로 미국사람인 할리가 전라도말을 배우고 일본 사람 미즈노가 부산말을 배웠다면 어떨까? 또 둘 다 표준어를 배웠다면 어땠을까?
먼저 미즈노 준페이는 원래 일본 홋카이도에서 태어나 천리대학 조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건너와 전남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동 대학 일어일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한국어를 천리대학 조선어학과를 졸업한 뒤 11년간 전라도에 살면서 전라도 말을 자연스럽게 익혔을 것이다.
로버트 할리의 경우는 17세때 이미 선교사로 한국에 와 본 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립대 법학박사 학위를 따고 국제변호사가 되어 87년에 다시 부산에 와서 진해 출신의 아내와 결혼하고 영도 하씨 '하일'씨로 귀화한 한국인이다. 그래서 그는 부산말을 다른 외국 사람보다 더 구수하게 구사한다.
그런데 한 지방에 오래 산다고 해서 그 지역의 말을 쉽게 배우는 것은 아니다. 언어 구조가 유사하거나 언어 감각이 비슷한 경우에 가능하다. 먼저 일본말은 영어와 같이 악센트[강세] 언어이다. 악센트 언어는 특별한 위치의 강세에 따라 낱말의 뜻이 구별되는 언어로, 높낮이로 구분되는 경상도 성조 언어와 유사한 점이 있는 언어이다. 더러는 경상도 말을 고저 악센트 언어라고도 하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악센트[강세]란 소리의 세기에 따라 인식되는 것으로, 센소리는 높게 들리며 약한 소리는 약하게 들리기 때문에 특별한 기준이 없으면 성조 언어로 혼동하기도 한다.
전문적으로 악센트 언어나 성조 언어는 표면적으로 유사한 음의 높낮이로 인식되지만 내부적으로는 소리의 높낮이가 미리 고정되어 있는 것이 성조 언어라면 소리의 높낮이가 고정되지 않아 발음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이 악센트 언어라 구분한다. 중국어가 성조 언어라면 영어나 일본어는 악센트 언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부산말은 악센트 언어와 성조 언어의 특징을 함께 가지는 언어, 즉 고저 악센트 언어라면 광주를 중심으로 한 전라도 말은 악센트 언어에 가깝다.
부산말은 소리의 높낮이가 미리 정해져 있지만 조사나 어미를 뒤에 붙여 나타날 경우에는 높낮이가 변하는 악센트 언어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광주를 중심으로 한 전라도 말은 센소리의 경우에는 높게 나타나고, 센소리가 아닌 경우에는 낮게 나타나는 악센트 언어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전라도 말을 따라 하기 위해서는 센 닿소리인 'ㅋ,ㅌ,ㅍ,ㄲ,ㄸ,ㅍ'이 있는 음절을 높게 발음하면 어렵지 않게 흉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미즈노 같은 일본말 화자는 악센트가 없이 길이로만 분화되는 서울말보다는 악센트 언어적 성격을 가진 전라도 말을 쉽게 인지하고 배울 수 있다. 물론 미국 출신인 할리도 전라도 말을 잘 배울 수 있다.
 | |
| 이근열 교수 |
둘 다 악센트가 없는 서울말을 배웠다면 어색했을 가능성이 많다. 또한 부산말과 같은 고저 악센트일 경우에는 다이내믹 톤을 가진 영어권 화자인 할리가 미즈노보다 더 유리하다. 결국 두 사람의 유창한 사투리 실력은 그들의 모국어의 억양 특성과 유사한 언어를 선택해서 익힌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외국 사람들이 사투리를 배워 유창하게 말하는 것이 신기한 것이 아니라 부산 사람들이 방송에 인터뷰할 때 쓰는 어색한 표준어가 신기한 것이다. 자기들끼리는 사투리로 신나게 떠들다가도 마이크만 갖다 대면 신기하게도 다들 익숙하지 않은 표준어로 말하는 것이 방송은 표준어로 나타나야 한다는 지나친 강요와 자신의 언어가 부끄럽다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는 당당하게 부산말로 방송에 나설 때이다. 로버트 할리, 아니 하 일씨처럼. 이근열 부경대 외래교수
◇ 로버트 할리가 부산 사람인 두가지 이유
첫째, 자신이 처음에 부산에 오고 싶었던 이유이다.
"처음엔 억수로 오기 싫었어예. 어려서 부모님이 가끔 중국요리를 시켜주곤 했는데 억수로 맛이 없었거든예. 그 때부터 중국뿐 아니라 동양을 싫어하게 됐심더. 나중에 부산의 자갈치시장도 눈앞에 어른거리고 신발벗고 들어가야 했던 부산집도 생각나는 거라예. 친구들도 무지 보고 싶고예"
둘째, 모 텔레비전에 출연한 할리가 맛있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장면이다. 할리의 구수한 부산말과 함께 완전히 부산 사람이 된 할리의 인식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홍렬 : 할리씨는 보신탕 드셔 보셨어요?
할리 : 당연히 무그바찌예, 억씨로 맛있었쓰예∼.
이다도시 : (경멸하는 눈빛으로) 오…그걸 어떻게 먹어요?
할리 : 맛있기만 하든데예. 머.
홍렬 : 몇 번 먹어 보셨나요?
할리 : 마이 무그봤으예. 우리 장모님이 여름되면 마이 해주지예!
이다도시 : (째려보며) 개를 어떻게 먹을수 있죠? 오∼ 마이갓!
할리 : 즈그들은 달팽이도 무그면서 개묵는 거 가꼬 난리고.
이미 이홍렬은 웃느라 뒤로 넘어간 상태였다.
이다도시 : 개는 우리의 친구예요. 그걸 어떻게 먹어요?
이때 할리의 명언 한마디
할리 : 달팽이도 우리의 친구지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