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안방을 하루 동안 화장실로 만드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방을 고쳐 구석에 새로운 화장실을 다시 만들거나 간이 화장실을 들여 놓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만 사용하겠다고 화장실을 새로 만드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고, 간이 화장실을 들여 놓는 것은 커서 많이 불편하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요강과 병풍을 이용하는 것이다. 안방 한 구석에 병풍을 이용하여 공간을 만들고 그 뒤에 요강을 가져다 놓으면 완벽한 화장실이 된다. 냄새도 뚜껑이 있기 때문에 막을 수 있다. 요강과 병풍을 사용해서 안방을 변화시키지 않고도 화장실로 쓸 수 있게 한 것은 기존의 가치를 효율성과 다양성을 추구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통 서양식으로 침실을 만들고 식당을 만들고 서재를 만들어 공간을 규정하는 것도 나름대로의 합리성이 있지만, 우리식으로 안방을 크게 만들고 거기에다 책상을 펴면 공부방이 되고 이부자리를 펴면 침실이 되고 밥상을 들이면 식당이 되는 방식은 고정된 장소의 이용을 극대화하는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또한 우리 조상은 마당에 나무를 심지 않고 그냥 비워 둠으로써 집안의 큰일에 이용하거나 곡식을 말리는 데 이용하면서 그 용도를 극대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지 정원을 가꿔 그 용도를 고정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방법이다. 우리 옷에도 이러한 활용법을 찾을 수 있다. 즉, 우리 옷은 저고리는 짧게 만들고 치마는 길게 만든다. 저고리가 짧으면 아무래도 불편한데, 저고리를 짧게 만드는 것도 천의 효율적 활용을 생각한 것이다. 치마는 길게 하고 재단하지 않도록 만들어서 나중에 다른 용도로 바꿀 수 있게 하고, 저고리는 재단해서 바느질해 붙여야 되기 때문에 최대한 짧게 만들어야 한다. 또 치마 안이나 저고리에 주머니를 달지 않은 것도 일부러 천을 칼로 손상하지 않게 해서 천 이용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인 효율성은 언어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말에 조사(토씨)나 어미(씨끝)를 이용하여 고정된 낱말에 많은 용도를 부여하는 방법은 이러한 효율성을 반영한 것이다. 여러 단어를 상황에 맞게 새롭게 만드는 수고로움보다 있는 낱말에 특정한 조사나 어미를 사용하여 많은 용도에 맞도록 만드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효율성으로나 합리적이다.
다른 말도 마찬가지이지만 부산말에서 '니만 보거래이' '니캉 내캉 보자' '니자태 간데이'에서 '-만'이나 '-캉' '-자태' 등의 조사도 명사 '니'에 붙어서 '혼자' '더불어' '쪽으로'란 의미를 표현하는 효율적인 언어 사용의 보기이다.
경상도 사람이 "그 아로 날로 도라"(그 아이를 나에게 다오)고 했을 때 '아이를 날 것으로 달라'는 섬뜩한 뜻으로 이해하는 서울 사람들이 많다. 이는 경상도 사람들이 '-에게'라는 조사 대신에 '-로'를 주로 사용한다는 조사의 용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오해이다. 또 '니 그 쿠니 내 그 카지'라고 했을 때 일본사람이라 오해하는 사람도 경상도 말 인용조사 '쿠(다), 카(다)'가 원래 '고 하다'가 축약되어 경제적으로 쓰이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오해다.
이처럼 원래 문법적인 요소는 지방별로 큰 차이가 없지만 조사나 어미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부산말에서 사용되는 특이한 조사는 다음과 같다.
먼저, 다른 지역에서 도구의 뜻으로 쓰이는 '-로써'를 부산에서는 '-까, -로까 , -ㄹ까'로 쓴다. '-까'는 원래 '-를 가지고'의 의미로 '자알까 간얼 마춘다'(장으로 간을 맞춘다)처럼 쓴다. 일반적으로 여격이라 부르는 조사 '-에게', '-한태'의 뜻으로 '-인태, -안태, -자태'를 쓴다. '자태'는 ' +에'에서 굳어진 말인데 ' '은 '곁'의 옛말이 그대로 쓰이는 경우이다. '니자태(인태, 안태)기댈라 쿤다'(너에게 의지하려고 한다)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비교나 견줌을 뜻하는 '-처럼'의 뜻으로 쓰이는 조사는 '매쿠로'가 있다. '매쿠로'는 '니 매이로 내도 할 수 있을끼다'(너 만큼 나도 할수 있을 것이다)에서처럼 '매로 매이로, 맨치로, 매치로'로 변이되어 쓰인다. 이러한 '매쿠로' 같은 비교를 나타내는 조사는 '처리, 마이, 만쿰, 마치, 카마' 등이 있다. 이중 '-처리'는 동부 경남지역에 많이 쓰이는 특이한 조사인데 '이처리 마이 주다?'(이 만큼 많이 주더냐?)에서처럼 '처럼'이 변이된 형태이다.
그 외에도 특이한 뜻을 보태는 조사로는 '-마중(-마다), - 까정(-까지), -ㄴ뽀너로'가 있는데 '-ㄴ뽀너로'는 'ㄴ본으로(본들)'에서 나온 말로 '-ㄴ뽀널'로도 쓰이는데 '닌뽀너로 가마 잇갯나'(넌들 가만히 있겠나), '물인뽀널 갯나'물인들 흔하것나)에서 보인다.
〈 일본어로 오해 받는 사투리 〉
①니 그 쿠니 내 그 카지! → 네가 그러니깐 내가 그러지!
니 안 그 쿠면 내 그 카나? → 네가 그러지 않는데 내가 그러겠니?
②가가 가가? → 그 애가 이야기하던 바로 그 애냐?
③가가 가가가? → 그 애의 성이 가씨냐?
#'구미호'의 꼬리는 9개가 넘는다?
한자어로 '구미호'라 함은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여우를 말한다. 꼬리가 아홉 개인 여우는 오래 묵어서 사람을 잘 호린다는 전설상의 여우이다.
그런데 구미호는 용처럼 실재하는 동물이 아니라 상상으로 만들어 낸 동물이다. 구미호가 상상으로 만든 여우라면 꼬리가 아홉 개보다 많은 백 개나 천 개라면 더 재주가 많은 여우가 될 것 같은데 하필이면 아홉 개를 가질까? 그것은 우리말에서는 아홉은 양(陽)의 수 중에서 가장 큰 숫자로 오래되거나 많은 양, 큰 수를 지칭할 때 쓰이는 낱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중심처(아주 깊은 곳), 구절양장(매우 험한 산길), 구곡간장(매우 깊은 마음 속) 등의 낱말에 쓰이는 아홉(九)이란 수는 깊거나 많거나 심함을 드러내는 의미로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오래된 물건을 나타내는 낱말인 '구닥다리'(구년묵이)도 '십년묵이'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경상도 말에서는 '미구(매구) 오래비 본 듯하다' '백야시다'에 나타나듯이 구미호보단 '백야시' 혹은 '매구'란 말을 더 많이 쓴다. '백야시'는 '하얀 여우' '매구'는 '천년 묵은 늙은 여우가 변해서 된 다는 이상한 짐승'의 뜻인데, 백야시는 예쁘게 생겨서 사람을 좀더 잘 호리는 여우로 요사스런 여자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매구'는 백야시보다 더 꾀가 많은 짐승으로 여우보다는 한 단계가 높은 짐승으로 능청맞음과 교활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경상도말에서 '애수고개'니 '야시고개'니 하는 여우와 관련된 지명은 '아시' 즉, '작음'에서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에 변이된 지명이다.
결국 구미호의 '구'는 아홉에서 온 말이 아니라 오래되거나 많은 것을 지칭하는 말로 구미호는 꼬리가 많은 여우이거나 오래 묵은 여우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국어는 우리 민족의 다양한 삶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일상생활에서나 언어 생활에서 그 의미와 가치가 동일하게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말의 조사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어휘를 다양하게 변화시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근열 부경대 외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