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매
어느 텔레비전의 퀴즈풀이에서 '고구마'가 정답인 질문을 했는데 경상도 출신 출연자가 '고매'라 했다. 웃음을 머금은 사회자가 석자로 답하라 했더니, 이번에는 '물고매'라 해서 한바탕 웃었다. 웃음을 자아내게 한 '고매'나 '고구매'는 고구마의 경상도 방언이다.
외국에서 들어온 말이긴 하나 외래어라 하기가 오히려 이상스럽다 할 말이 이 '고구마'이다. 완연한 우리 옷을 입은 귀화한 말이기 때문이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고구마는 1590년 경에 중국에 전해지고 류쿠(오키나와에 있었던 옛 일본왕국)에도 전해졌다고 한다. 우리도 고구마의 존재를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1663년 김여휘 등이 류쿠에 표착하여 껍질이 붉고 살이 희며 맛이 마(薯)와 같은 식품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고구마가 우리 나라에 본격적으로 수입된 것은 영조 39년인 1763년, 동래부사를 역임했던 조엄이 일본에 통신사로 갔다가 그 종자를 얻어 부산진에 보낸 것이 그 효시라고 한다. 1764년에 동래부사로 부임한 강필리는 조엄이 보낸 고구마 종자를 받아 이의 재배에 성공했는데, 이로써 고구마가 전국에 퍼졌다고 부산시에서 펴낸 '부산의 내력'(1989)은 밝히고 있다.
고구마란 말은 처음 들어왔을 때 전라도 고금도(古今島)에서 많이 재배한 데서 생겼다고 하나 이는 일본에서 온 말이다.
옛날 일본에서 흉년이 들었을 때 어느 효자가 고구마씨를 심어 흉년을 면하고 그 부모를 잘 봉양하였다. 그 효자의 기특함을 찬양하기 위해서, 그 때 관(官)에서 그것을 효행의 감자란 뜻으로 효행저(孝行藷)라 했는데, 이 효행저의 일본 대마도 방언인 '고코이모'가 변하여 고구마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동래에서 심은 고구마가 전국으로 퍼졌다는 역사로 보면 고구마란 말도 경상도에서 전국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더러 경상도 사람들이 익살을 부리며, 생것은 '고구매'고, 삶은 것은 '고매'라고 하는 '고구마'란 말은, 경상도가 대마도에 이은 제2의 고향이라 할 것이다.
◇가새
쩌렁쩌렁한 가시개 소리를 들으며 헌 고무신으로 엿을 사 먹던 일은 이제는 아스라한 옛 풍속도라 하겠다. '가시개'는 낱말 속에 ㄱ을 유지하고 있는 옛말이며, '가새' 역시 다른 지방에서도 들을 수 있는 경상도 방언이다. '가새'는 '끊다, 베다'의 뜻인 옛말 ' 다'의 ''에 물건이란 '애'가 붙은 ' 애'가 변한 말로 '끊는 물건'이란 뜻이다.
'가새'가 사투리이기에 더러는 '가새'가 붙은 말도 사투리로 알기 쉬우나, '가새'가 붙은 표준어가 의외로 많다. '가새표'가 그 대표적이라 할 말이다. 틀린 것을 나타내거나, 문장에서 알면서도 고의로 드러내지 않음을 보이는 ×표의 이름이다.
'가새표'는 1940년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에서 편 '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문장 부호 이름으로 실린 후 60여 년 동안 표준어로 자리잡고 있는 말이나, 가위표에 밀려 사전에서 쫓겨나기도 한 비운(?)의 표준어이다. 몇몇 사전들에서 '가새표' 를 밀어내고 '가위표'를 표준어 자리에 앉혔기 때문이다.
'가위표'를 쓰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인지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편 '표준국어대사전'(1999)에서는 '가위표'와 '가새표'를 둘 다 표준어로 인정해 놓았다.
'가새'가 붙은 표준어로는 옛 형벌인 '가새주리'가 있다. 정강이 사이에 낀 주릿대가 가위 모양을 하고 있기에 '가새'라는 말이 붙은 것이다. 이 형벌에서 주릿대를 ×자 모양으로 젖히는 것을 '주리틀다'라고 하는데, 이는 '가새주리틀다'의 준말이다. 또 농촌에서 네 움큼을 가위다리 모양으로 서로 어긋나게 묶은 볏모의 단을 '가새모춤'이라 하고, 뽕나무과의 낙엽 교목을 '가새뽕나무'라 한다. 그 외에 '가새접'이나 '가새지르다'란 말도 있다.
'가새'는 가위의 옛말이다. '가시개'가 추억을 반추케 하는 엿장수의 쇳소리 나는 가위라면, '가새'는 말없이 옷감을 마름질하는 어머니의 가위 같은 말맛을 주는 정감 어린 말이라 하겠다.
◇ 에불낭구
경상도 말의 특징의 하나는 '머라카노'처럼 지나치게(?) 줄이는 것이다. '에불낭구' 역시 준말로 보이는데, 현재는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1992)에서만 '버드나무'의 경남 방언으로 밝히고 있다.
부산이나 동부 경남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으로 보아, 서부 경남의 방언이라 하겠는데, 이 말은 그 지방 사람들도 어원을 궁금해 하는 말이다.
버드나무를 계획적으로 가로수로 심은 것은 아마도 일제 시대가 아닌가 한다. 따라서 '에불낭구'는 '왜버들나무'가 변한 것으로 보인다. 곧, '왜'를 '에'로 발음하면서 '왜버들'을 줄인 '에불'에 '낭구'가 붙은 말이라 하겠다. 물론 '낭구'는 나무의 옛말인 '남ㄱ'이 '나무'의 'ㅜ'의 영향으로 '남구'가 되고, 또 '낭구'로 변한 것으로, 이는 '임금'이 '잉금'으로 잘못 발음되는 현상과 같다.
경상 방언에서 '왜'를 발음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묻는 말인 '왜'는 '와'로, 그 외에는 '에'로 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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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영남/한글학회 부산지회장·여명중 교장 |
한다. 그런 까닭에 '왜놈(倭-)'을 '에놈'이라 하고 '왜간장'을 '에간장'이라 한다. '왜버들'의 '왜'를 '에'로 발음한 것도 같은 보기라 하겠다.
'버들'이 줄어 '블'이 되고, '블'이 다시 '불'로 변한 것으로, 이는 옛 말의 '블(火)'이 오늘날 '불'이 된 것과 같은 현상이다. '에불낭구'는 축약된 속에서도 우리 옛말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특이한 경상도 방언이라 하겠다. 류영남 한글학회 부산지회장·여명중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