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 볼 때, 가장 감칠 맛 나는 말은 생활 현장에서 주고받는 일상어일 것이다. 생활 기반이나 공간적 테두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개인적인 의사 전달은, 공식적이고 뭔가 꾸민 것 같은 냄새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표준어보다는 무의식중에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는 그 지역 사투리가 훨씬 더 친근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자갈치 아지매들이 거침없이 사용하는 부산 사투리에 '사용 금지' 규정이라도 내려진다고 가정해 보면, 수족관 속에서 펄펄 뛰던 붕장어나 감시이, 뽈라구들도 갑자기 활기를 잃어버린 어시장의 무거운 분위기에 놀라 몸을 사리는 사태가 찾아오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생명감 넘치는 몸부림을 잃어버린 활어는 더 이상 부산의 명물 생선 횟감으로서는 자격 상실이다.
'샛바람반지 하단장 너무칩어서 몬보고 / 나리건너 명호(鳴湖)장 선가(船價)가없어 몬보고 / 골목골목 부산장 질몬찾아 몬보고 / 꾸벅꾸벅 구포장 허리가아파 몬보고 / 미지기짠다 밀양장 다리가아파서 몬보고 / 아가리크다 대구장 너무널러서 몬보고 / 이산저산 양산장 산이많아서 몬보고 / 코풀었다 흥해(興海)장 멋거러버서 몬보고 / 똥쌌다 구례장 냄새가나서 몬보기가' - 장(場)타령
부산 지방에서 널리 불려진 장(場)타령이다. 지금도 오시게, 구포, 좌천장 등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5일장
의 이름들이 몇몇 보이기는 하지만, 생활 속에서 장타령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재래 시장의 흥청거림은 과거의 추억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장타령이 보여주는 언어 유희를 곁들인 적절히 반복되는 사투리 사용이야말로 개미 쳇바퀴 돌 듯 살아가던 농경 사회의 우리 조상들에게는, 5일장에 걸었던 부푼 꿈과 현실적 좌절감이 뒤섞인 현장의 애틋한 호소였다. 비록 장타령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노래이긴 하지만, 우리 지방을 근거로 살아가고 있는 부산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친근감이 물씬 배어드는 이웃 소리를 만난 것 같아 한번 흥얼거려 보고 싶은 노래임에 틀림없다.
'언어의 건축'으로 비유되는 시를 쓰는 시인들은, 언어를 깎고 다듬고 손질하고 매만져서 그 정수를 캐내는 사람들이므로 어떤 문학 작품의 작가보다도 언어 사용이 섬세하고 창조적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경상도 시인이라고 해서 경상 방언을, 호남 시인이라고 해서 전라 방언을 남발해서는 좋은 시 본연의 모습을 보이기는 힘들 것이다. 시인이 신중하게 시어를 사용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어가 절차탁마의 큰 산을 넘어야 빛을 발한다고는 하나 깊은 가슴 한가운데서 무의식적으로 울려나오는 꾸밈없는 진실의 외침을 어떻게 막아낼 수 있겠는가.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 /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내리는데 //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 오냐. 오냐. 오냐. /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박목월 '이별가' 전문)
'뭐락카노' 이 한마디를 듣는 순간 경상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어떤 감정들이 뒤섞였을까. 이를 앞말에 대한 단순한 채근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경상도 사람들을 흔히 직설적이고 다혈질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경상도 사람들의 이런 속성은 장점으로도 또는 단점으로도 이야기된다. 그런데 이런 속성을 수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상도 사람들이 보여주는 일상의 말과 행동 때문일 것이다. 무뚝뚝하고 세련되지 못한 행동과 함께 하는 꾸밈없고 투박한 말투들이 타지역 사람들에게 신중하지 못한 다혈질적인 사람으로 치부된 원인을 제공했으리라. 그러나 누군가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생사를 넘나드는 기로에서 마지막 유언이 될 지도 모를 대중없는 하소연을 접할 때 던질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한마디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뭐락카노, 니 뭐락카노'만큼 절실하면서도 애틋한 말은 흔치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뭐락카노'로 다그친다고 해서 직설적이고 다혈질적이라고 나무랄 경상도 사람들이 누가 있겠는가. 박목월의 '이별가'는 적절하게 엮어놓은 경상도 사투리의 그물 때문에 가장 애절하면서도 감동적인 한 편의 이별시로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아우 보래이. / 사람 한 평생 / 이렇쿵 살아도 / 저렇쿵 살아도 / 시쿵둥하구나. / 누군 / 왜, 살아 사는 건가. / 그렁저렁 / 그저 살믄 / 오늘같이 기계장도 서고. / 허연 산뿌리 타고 내려와 / 아우님도 / 만나잖는가베. / 앙 그렁가 잉 / 이 사람아. / 누군 / 왜, 살아 가는 건가 / 그저 살믄 / 오늘 같은 날 / 지게목발 받쳐 놓고 / 어슬어슬한 산비알 바라보며 / 한 잔 술로 / 소회도 풀잖는가. / 그게 다 / 기막히는기라 / 다 그게 / 유정한기라.'(박목월 '杞溪 장날' 전문)
위의 박목월의 '기계 장날'은 현대판 경상도 장타령이다. 세월이 흘렀으니 재래 시장의 풍속도야 세월 따라 많이 변했겠지만, 시장 바닥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야 예나 지금이나 그리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세상 산다는 게 뭐 그리 큰 위세일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순박한 시골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사람들끼리 5일장에서 만나 막걸리 한 사발 주고받으며 쌓이고 쌓인 삶의 더께를 씻어내는 즐거움만큼 큰 삶의 위안도 드물 것이다.
목월은 이러한 삶의 의미를 구수한 사투리로 얽어 놓음으로써 가슴을 울리는 새로운 장타령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 속에서의 사투리는 소설만큼 빈번하게 사용되지도 않고 또 그 역할의 범위도 넓지 못하지만, 적재적소에 시어로 선택된 사투리의 빛남은 한 편 시의 값진 보석임에 틀림없다. 지금 부산에서도 수백 명의 시인들이 나름대로의 시심을 불태우고 있다. 우리 지방의 사투리가 좋은 시 작품에 녹아서 별빛처럼 찬란히 빛날 날을 기대해본다.
내성고등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