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표현이 있다.
이는 사촌의 잘 됨을 시기하는 우리네 심리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속담은 소위 '배 아프다'는 행위가 고통스럽다고 인식되기 때문에 시샘의 부정적인 상황에 쓰이는 경우이다. 그러나 '배 아프다'는 행위가 단지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돌려서 사용했다면 그 의미는 달라진다. 당시 화장실의 인분이 농작물의 중요한 거름으로 쓰이던 시절이라 자기네 변소만을 이용하는 구두쇠 영감이 생길 정도로 농사의 자산이었다. 그렇다면 '배 아프다'고 할 때 통시(화장실)에 가서 거름을 만드는 행위는 사촌의 땅에 거름을 주려고 하는 순수한 도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즉 배 아픈 행위는 돈은 못 도와 주어도 거름이라도 부조하겠다는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일 수도 있다.
이처럼 속담과 같은 관용적 표현은 특정한 지역이나 환경의 이해 없이는 그 뜻이 오해될 수 있는 소지가 많다. 그래서 관용적 표현은 일반적으로 그 말이 만들어진 상황을 고려해 뜻을 이해하고 파악해야 한다.
관용적 표현은 그 지역의 문화적이고도 역사적 속성을 반영한 그들만의 인식의 방법이다. 또한 관용적 표현은 특정한 상황을 구체적이고 집약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경제적이고도 효율적인 언어 사용의 예이다.
부산말에 "얌생이 몰다"는 말이 있다. '얌생이'는 염소를 뜻하는데, 염소를 몰고 다니는 행위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 이 표현은 한국전쟁 이후 어려운 우리네 상황을 반영하는 말로 미군물자의 하역과 관련된 지역에서 쓰던 재미있는 암시적 표현이다. 한국 전쟁 당시 피란민들은 어려운 식량사정 때문에 힘든 삶을 살았는데, 배고픈 사람들이 미군 물자가 하역되어 보관 중인 곳을 드나들며 물건을 훔치기까지 하면서 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미군들은 하역장 주변에 철조망을 치고 민간인의 접근을 막았지만, 놓아둔 얌생이가 풀을 뜯다가 철조망 너머로 들어가면 그 염소를 찾으러 가는 것은 허락했다. 유일한 생계 수단인 얌생이를 가지러 가겠다는 데야 미군은 막을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이 때 찾으러 들어간 사람이 미군의 하역 물자를 철조망 밖으로 밀어 내고 자신은 얌생이를 찾아 정문으로 나와 다시 그 물건을 가지고 갔다. 이러한 행위로 인해 '얌생이 몰다'는 '물건을 훔치다'는 뜻으로 고정된 것이다.
또 '구포밑이 꼬롬하다'는 말은 부산의 지리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타 지역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말이다. 다 알다시피 '구포의 밑'은 '사상'인데 사상이 불순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로 사상범으로 시국이 어수선할 때 생긴 표현이다.
관용적 표현은 그 지역적 특성에 따라 벼농사나 뱃일에 맞도록 변화되어 더 구체적이고 다양한 표현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부산 지역에서는 '곰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와 같이 쓸모없는 것도 가치가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당갈딩기 야시 고안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여기서 '당갈딩기'는 '현미를 찧은 등겨'로 억센 등겨를 말하는 데, 이 등겨도 야시(여우)를 유혹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경우이다. 이는 부산 지역에서 보기 힘든 '곰의 재주'보다는 쉽게 접할 수 있는 '등겨'를 이용하여 동일한 의미를 좀더 구체적이고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표현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핑비 불 끄는 소리하다'는 표현은 '풍덩이가 불끄는 소리'로 풍뎅이가 웽웽거리며 불을 끄기 위해 노력하지만 소리만 시끄럽고 실속은 없는 행위를 할 경우에 사용한다. 이와 같이 시끄럽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표현으로는 '통 내부리는 소리한다, 새따묵는 소리한다, 뒤퉁스러븐 소리한다' 등 다양하다. 우선 빈 통을 내버리면 소리만 요란하게 퉁탕거리기 때문에 사용되는 표현이다. 새따묵는 소리는 혀 짧은 소리로 그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말을 하기 때문에 사용되는 표현이며 뒤퉁스러운 경우도 상황에 맞지 않은 엉뚱한 소리를 한다는 뜻의 표현이다.
부산 지방의 관용적 표현은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좀더 은근하며 비유적이고 재미있는 관용적 표현이 많다.
예를 들면 '쌔빠질 놈'이라는 표현이나 '쌔가 만발이 빠질 놈'이라는 뜻은 '혀가 빠질 사람'이란 뜻으로 혀가 축늘어져 죽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해서 드러낸 말인데, 직접적으로 죽을 사람이 하는 것보다는 좀더 완곡한 비유 표현으로 보인다.
또 '헌 주우 가래이 불알같다'는 표현은 바지가 낡아 떨어져 중요한 부분이 자주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경우로 무엇인가 자주 들락 날락할 경우에 쓰이는 표현이다. 다음으로 '안다이 똥파래이'라는 표현은 어디든 날아드는 똥파리 같이 무엇이든지 아는 것처럼 '아무 일이나 끼어드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문 닫고 나왔나 문 열어 두고 나왔나'는 집안의 막내인가 장남인가를 묻는 표현이며, '미그지잡다'는 표현은 '애쓴 결과 진흙탕물에 미끄러졌다'는 뜻이다. 또 '보쌀 소쿠리 쥐눈이다'는 보리쌀 소쿠리에서 먹을 것을 훔쳐 먹으며 주위를 살피고 있는 쥐눈처럼 잠들 시간이 지난 때에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는 뜻으로 쓰는 표현이다. 이처럼 재미있게 그 상황을 묘사하는 것은 수준 높은 언어 생활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표현은 은근하면서도 구체적 상황을 제시하므로 그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이런 까닭에 관용적 표현은 할아버지에게서 손자에게 전수되어 세대를 이어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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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모 |
관용적 표현을 이해하는 것은 특정 지역의 언어 환경과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므로 전통의 이해와 보존의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요즘같이 핵가족 시대는 세대간의 단절과 함께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서 전수되는 중요한 표현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표현보다는 상황 중심적이고 구체적인 표현이 좀더 재미있고 넉넉한 사회를 만드는 기본이다.
김봉모 부산대 국문학과 교수
#재미로 풀어보는 관용표현
1. 다음 중 "굉장히 좋아하다."는 뜻의 관용어는?
①해 볼시래 하다 ②패악 지긴다 ③칙사리 올라온다 ④볼로 히비다
2. 다음 중 "어렵게 여겨야할 사이"라는 뜻의 관용어는?
①씬밥디이 ②손 아픈 새 ③오새다 ④헌 주우 가래이 불알
3. 다음 중 "없었던 것으로 간주하다"는 뜻의 관용어는?
①팬이 했다 ②땅띠기 한다 ③물새하다 ④난리 굿이다
4. 다음 중 "미구(매구) 오래비 본 듯 한다."는 뜻은?
①반가워 한다 ②낯설어 한다 ③먹고 싶어 한다. ④부끄럽게 여긴다.
5. 다음 중 "보기보다 힘이 없다."는 뜻의 관용어는?
①재주가 메주다 ②허북산이다 ③어간에 방장같다 ④보쌀 소쿠리 쥐눈이다
정답
1. ④
2. ②
3. ③
4. ①
5.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