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든 그 영역에서만 쓰는 고유의 용어들이 있다. 바둑에도 다른 분야에서는 쓰지 않는 말들이 많이 있는데, 바둑을 이해하려면 이런 용어들에 익숙해져야 한다.
김인만씨가 펴낸 ‘바둑용어사전’에는 2천개 이상의 어휘가 들어있다. 여기에는 인명과 기전 이름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을 제외하고 순수한 바둑용어를 꼽는다면 1천개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바둑용어 중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수(手)와 관련된 것들이다. 정수 호수 묘수 악수 이적수 침입수 촉촉수 등 수의 특징을 나타내는 이름들이 상당히 많다. 기력이 낮은 바둑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기수 괴수 귀삼수 후절수와 같은 용어도 있다.
행마에 관한 단어도 꽤 많다. 한칸뜀 마늘모행마 날일자행마 등에서부터 젖힘 끼움 끊음 붙임 등 바둑돌이 움직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들이 많이 있다. 이런 용어에서 가지를 친 이단젖힘 건너붙임 껴붙임과 같은 파생어도 있다.
바둑을 가리키는 한자말인 ‘기’(棋)자가 들어간 말도 십여개 이상 된다. 위기 혁기 속기도 있고 기사 기전 기품 기력 기리와 같은 말도 있다. 바둑해설가들이 쓰는 용어 중에 ‘기’자가 들어간 단어는 대체로 바둑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바둑용어 중에는 부적절하게 여겨지는 것도 있다. 포석에서 상대방 귀에 다가가는 ‘걸침’이라는 말이 하나의 예다. ‘다가서기’나 ‘접근’이라고 해야 정확할 텐데 ‘걸침’으로 불리는 것은 일본어의 ‘가카리’라는 말을 그대로 직역을 해서 썼기 때문이다. 이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조남철 9단은 ‘걸이’라고 하자고 제안했으나 이것 역시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팬들이 좋아하는 ‘빵때림’이란 말도 좀 이상하다. 맛좋게 한 점 따내는 것을 나타낸 말인데 따내는 것을 때린다고 한 것은 다소 살벌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필자의 경우 ‘빵따냄’이라는 말로 통일해서 쓰고 있다.
우리의 바둑용어는 예로부터 전래되어 오는 말과 일본에서 유입된 말이 섞여 있다. 일본에서 계마 대계마로 표현하는 말을 우리는 날일자 눈목자로 쓰고 있다. 그런가 하면 ‘비마(飛馬)’라는 말은 일본어를 도입해 쓴다. 일본에서는 바둑의 영토를 ‘지(地)’라고 하고 개개의 영토를 ‘목(目)’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 대신 ‘집’이나 ‘가(家)’ ‘궁(宮)’자를 쓰고 개개의 집은 ‘호(戶)’라고 한다.
바둑용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없었기 때문에 용어의 출처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패싸움에 나오는 ‘패’가 순수한 우리말이란 주장이 있으나, 패(覇)라는 한자어로 쓰는 사람도 있다. 기세로 버틴다는 뜻에서는 패(覇)가 어울리는 것 같은데, 계속 되풀이된다는 뜻의 ‘겁(劫)’자를 한자어로 쓰고 있는 것을 보면 패를 우리말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최근 우리의 바둑용어를 재정리해서 사전으로 편찬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한국기원에서는 바둑 룰의 재정립과 함께 바둑용어를 정리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유건재 사무총장은 세계 최강이라는 한국바둑계가 이런 기본적인 것을 정립하지 않고 있어서는 말이 안 된다고 역설한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올바른 바둑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다행스런 일로 보인다.
바둑용어 정립은 바둑 세계화 정책과도 관련이 있다. 현재 국제적으로는 상당수 일본 용어들이 영어식 발음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고’(위기) ‘조세키’(정석) ‘센테’(선수) ‘하네’(젖힘) ‘폰누키’(빵따냄) ‘미아이’(맞보기) 등. 일본이 세계 바둑보급에 앞장 선 공로를 인정하여 이런 용어들을 국제적 언어로 통용시킬 것인가, 아니면 바둑(baduk) 행마(haengma)와 같은 한국식 용어를 수출할 것인가?
난감한 문제지만 이런 것을 논하려면 무엇보다 우리 용어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 정수현 9단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