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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의 연극이야기 <32> 잊혀진 조연 배우 박제행

노역·희극 연기의 대명사… 해방 이후 마침내 주연상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0-28 20:43:06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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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극 초창기 조역 배우로 이름을 날린 박제행.
연극을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인내를 요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각자 역할을 분담해야 하는 만큼, 집단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입장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연극을 시작한다는 것은 무대에 서는 일이고, 무대에 서는 일은 크고 작은 차이야 있겠지만 관객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따라서 '큰 배역'을 맡아 관객에게 중요한 인상을 남기는 일은 연극배우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목표이다.

하지만 연극도 사람의 일이라, 모든 사람이 주요 배역을 맡을 수는 없다. 엄격하게 말해서 주인공은 한 사람이고, 상당수는 작품의 부수적인 배역에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캐스팅은 전적으로 연출이나 제작자의 소관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제기할 수도 없다. 그러니 배우로서는 속이 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식민지 시대 배우 박제행은 평생 조역으로 이름을 날린 배우였다. 그의 장기는 '노역'과 '희극 연기'였다. 그러한 조짐은 연극을 시작하는 시점부터 이미 나타났다. 그가 데뷔한 극단은 1920년대 극단 토월회였다. 그는 토월회에서 '춘향전'의 허봉사, '심청전'의 선인 두령(뱃사람)을 맡았다. '춘향전'의 허봉사는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다.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하고 옥에 갇힌 춘향을 찾아가, 춘향의 꿈을 풀이하는 점쟁이 역할이 허봉사이다. '춘향전'이라는 방대한 이야기를 감안하면 그야말로 '작은 역'에 불과했다. 다행히 옥중에 갇힌 춘향(복혜숙 분)을 오랫동안 어루만지는 기막힌 행운(?)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배우로서는 약간 서글픈 배역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심청을 공양미 300석에 사서 배에 태우고 가는 선인 두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이후 박제행은 대중극단을 전전하며 활동했다. 그는 1930년대 초반에는 토월회의 후신인 중외극장·태양극장·명일극장에서 활동하였고, 이후 동양극장 청춘좌(1935~1936)를 거쳐 중앙무대(1937), 인생극장(1938), 화랑원(1938), 고협(1939) 등으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신극 계열로 이적해서 국립극단 단원이 되기도 했으며, 6·25 전쟁이 발발하자 월북(납북)했다.

박제행의 이러한 행로는 주로 심영, 서월영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들은 평생 연극의 동지로 살았다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박제행이 두 사람의 벽에 가로막혀 주연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박제행에 대한 평가는 노역 전문 배우, 희극 전문 배우가 사실 전부였다. 그는 평생 노역으로 이름을 날렸고, '약방의 감초'역할인 희극성을 살리는 연기를 전담해야 했다.

평생 조역으로 활동하면서 노역만 전문적으로 맡았던 배우였던지라, 그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나그네'에서의 상찬을 맴돌곤 했다. '노역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는.'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노역이라고 해서 작품마다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르다고 한들 얼마나 다를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평생 조역을 해야 했던 배우의 마음가짐은 어떠했을까. 자기 발전을 꿈꾸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제행은 평생 노역을 갈고 닦았다고 한다. 자신이 맡았던 배역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했고, 제한된 범위였지만 그 틀을 벗어나기 위해서 각종 시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결과 1940년대 들어서면서 드디어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해방 이후에는 결정적인 배역으로 주연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의 일생을 지켜보고 있으면, 연극배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연극배우란 '작은 역' 하나에도 일희일비하는 존재임에는 틀림없지만, 인생이라는 '큰 역'을 보고 멀리 연기할 수 있는 존재임에도 틀림없다는 생각 말이다.

연극평론가·부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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