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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문학기행 <100> 소설가 전성태와 몽골(하) 테를지의 밤과 하라호름의 낮

초원에서 나를 만났고 문학기행을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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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긋한 무덤을 만드는 일조차 덧없게 만드는 유목의 삶은 시와 문학의 친구였다
- 아름답고 외로운 초원에서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기행에 걸맞은 미니백일장을 치렀다

초원이 이다지 넓다면 별도 많으리란 생각을 왜 처음부터 못 했던 걸까? 한반도에서 농사 지으며 살던 조상 대부분이 평생 본 적도 없거나 그런 곳이 있으리라 꿈도 못 꾼 채 생을 마감했을 지평선 풍경 속을 달리다 밤을 맞았다. 울란바토르에서 두 시간 반 거리 테를지국립공원이었다.

"오늘 밤은 꼭 별을 보리라." 야무지게 마음먹었다. 문학기행 일행이 여장을 푼 곳은 테를지 안에서도 별 관측 명소임을 내세운 '바얀하드 스타 캠프'. 캠프장 작은 불빛 몇 개 말고는 별빛을 방해할 것이 없었다. 뜻밖에 만난 '훼방꾼'은 달빛이었다. 맑은 밤하늘 둥실 뜬 보름 근처의 달은 예뻤다. 그 바람에 기대만큼 흔전만전 피어난 별빛을 못 보았지만, 달을 탓할 수는 없었다. 자정까지 버티다 게르에 들어갔다. 새벽 4시. 다시 나왔다. 달은 안 보인다. 하늘은 검었고, 별밭이었다. 그믐께가 아니어서 '쏟아질 만큼 많은 별들'은 아니었지만, 저토록 뚜렷한 북극성과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를 본 것이 언제였던가.

■"울란바토르 바깥으로 가보세요"

우리 문학기행 일행을 싣고 초원을 가로질러 달리던 버스가 멈춰섰다. 사람들이 내려 초원 쪽으로 몇 발짝 다가가자 그들은 이내 풍경이 되었다. 사람과 자연이 구분되지 않은 채 하나였다.
인구 약 300만 명인 몽골에서 100만 명 이상이 몰려사는 울란바토르(현지 발음은 '울란바타르'가 아닌 '울란바토르'였다)는 중심지였다. 재미있는 것은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권고가 "울란바토르가 몽골의 참모습은 아니니 초원으로 나가보라"는 것이었단 점이다. 시인부터 학자, 현지 사정에 밝은 한국인과 몽골 토박이까지 그렇게 권했다. 몽골에서 6개월 살며 유목민 게르를 찾아다녔고 늑대사냥도 따라나선 적이 있는 전성태 작가도 그랬다.

"은발의 어머니가 아락(바구니)을 등에 지고/다시 못 올 사람처럼 아르갈(땔감으로 쓰는 가축의 마른 똥)을 모으러 갔다./백발의 내 아버지가 언덕을 넘어서/세상에 다시 못 올 사람처럼 양을 치러 갔다./초원에 서면 아버지가 그립다./난로에 불 지필 때면 어머니 모습이 아른거린다.…운명의 폭풍이 몰아치면/경주마를 타고도 도망칠 수 없나니/사별과 인생의 비애가 다가오면/바위 뒤로 들어도 숨을 수 없나니/나는 쌍봉이 기울어진 낙타처럼 허리가 굽어간다.…"

몽골작가동맹위원장인 칠라자브 시인이 지난 19일 데코르호텔에서 열린 한국-몽골 문학의 밤에서 낭송한 자신의 시 '별사'(別辭)의 일부다. 초원에서 살아가던 시인의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무치는 마음을 읊은 시라 한다. 몽골 사람들에게 초원은 이렇듯 철저한 삶의 현장일 것이다. 하지만 짧은 여정 동안 우리가 그런 초원의 속살까지 보기는 힘들었다.

■옛 영화는 가버렸지만

하라호름의 언덕에서 전성태 작가가 독자들에게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대신, 일행은 열심히 다니며 그런 초원의 빛깔과 냄새를 한 점이라도 더 접하려 애썼다. 안내인 비지야 씨가 "불편하다는 말도 없이 이렇게 열심히 즐겁게 다니는 팀은 별로 본 적이 없다"고 했을 정도다. 계곡, 숲, 바위산으로 이뤄진 테를지의 밤은 별과 달로 눈부셨지만 옛 몽골 대제국의 수도였던 하라호름의 언덕은 상상력으로 빛났다. 칭기즈칸(비지야 씨는 몽골식 발음은 '칭기즈~한'에 가깝다고 알려줬다)이 살아있을 때 유럽의 기술진과 막대한 노동력을 동원해 조성한 하라호름은 지극히 화려한 도시였다고 기록에 남아있다. 궁전 앞에는 술이 종류 별로 쏟아지는 분수가 있었고 세계 각지에서 귀중품과 물자를 싣고오는 수레가 끊이지 않았다는 곳이다.

지금 하라호름은 에르덴죠 사원과 낮은 집들만 있을 뿐, 옛 영화의 흔적은 보기 힘들다. 그런 하라호름을 내려다보는 언덕에서는 바람과 햇살 속에서 그 옛날을 상상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상상여행은 문학기행의 또 다른 묘미이자 초원의 진면목을 느끼는 방법이었다. 칭기즈칸의 무덤을 지금도 못찾고 있는 이유와 끝없이 떠돌아디니는 유목민들에게 아예 봉분을 만들지 않는 평장(平葬)의 전통이 있다는 점 사이에는 분명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것도 있다. 몽골은 여름방학이 끝날 즈음인 8월 25일 부모가 반드시 학교로 가 "우리 아이는 이번 가을학기에도 이 학교에 다닐 것"이라고 확약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당국은 '당연히' 아이의 집이 멀리 유목을 떠난 것으로 간주하고 새 학기에 그 아이를 아예 등록조차 시키지 않는단다. 이런 유목의 전통 덕에 몽골인은 이민갈 때도 아무렇지 않게 훌쩍 떠나버릴 만큼 이동에 두려움이 없단다. 옛 영화는 갔지만 그것을 가능케 했던 유목의 삶은 몽골에서 현재진행형이고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 유목과 떠돎은 시와 문학의 친구였다.

■백일장, 문학기행을 완성시키다

말타기 체험 뒤 테를지를 떠나기 직전, 전성태 작가의 제안으로 일행은 맑은 톨강 계곡에 내려가 '백일장'을 열었다. 각자 느낀 몽골을 직접 시로 써보자는 것이었다. 심사위원은 안도현 시인이 기꺼이 맡아 상품으로 책을 주겠다 약속했다. 문학기행 현장에서 백일장을 연 것은 처음이다. 제100회를 끝으로 이 문학기행은 막을 내리므로, 마지막 백일장이기도 했다. 독자와 문인이 만나 문학현장을 여행하는 문학기행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그게 오래 궁금했는데, 여기 답이 있었다. 독자가 직접 창작에 나서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참가자 한 분의 시는 이런 내용이었다. '몽골의 들꽃이 예뻐 에델바이스며 민들레며 뜯어왔더니 운전기사 일을 하면서 일행을 안내해준 바트을지 씨가 자연은 자연으로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이라고 얘기했다. 나는 부끄러웠다'. 초원 풍경은 마술 같아서 바로 곁에 있던 사람이 몇 발짝만 초원 쪽으로 들어가도 순식간에 풍경으로 변해버렸다. 풍경과 사람이 구별되지 않았다. 아름다웠지만 그 속에서는 고독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고독은 도시의 소모적인 외로움과는 꽤 다를 것이다. 전성태 작가의 말마따나 "초원은 내면여행"이었다.

'왼쪽으로 가면 화평할 길을 굳이 반대 길을 택하고 보니 한 여인이 있다/주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나에겐 없는 것만 많았고 그녀는 춥고 아름다웠다…몸살나게 하얀 그녀를 나는 자작나무라 불렀다'.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허태임 씨의 시 일부다. 도시에 있었으면 평안했을 것을 굳이 불편한 초원을 거쳐 거슬러 올라간 테를지의 사원 근처엔 정말로 자작나무가 많았다. 초원과 사막과 자작나무의 숲과 시와 나를 돌아보는 여행. 100번 째, 마지막 문학기행이 닿은 곳에서 이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 기행을 끝내며

- 10년 100회대장정… 초청 문인들 돌아보니 한국문학의 거대산맥

'마지막 신문학기행' 참가자들은 아쉬움 속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본지에 지난 10년 동안 연재해 온 '신(新) 문학기행'이 막을 내린다. 2001년 10월 조지훈 오일도 이문열을 낳은 고장 경북 영양을 행선지 삼아 첫발을 내딛은 '신문학기행'은 2010년 8월 소설가 전성태와 함께 한 몽골문학기행으로 100회를 채웠다.

'신문학기행'의 가장 중요한 특징과 원칙은 독자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 참여를 보장하고, 문학인들을 직접 초청해 독자와 창작자가 함께 문학현장을 찾아 향유토록 했다는 점이다. 독자들끼리만 가는 것도, 문학인들끼리만 즐기는 것도, 해설사의 강의만 듣고 돌아오는 방식도 아니었다. 문학인들의 참여도도 높아졌다. 지난 100회 동안 '신문학기행'에 초청된 문학인들만 열거해도 그 자체가 바로 오늘의 한국문학을 증언하는 거대한 산맥을 이룬다.

이 같은 행보가 계속될 수 있었던 데는 현장행사를 주최한 부산의 대표적 문화기업이자 향토서점인 동보서적(대표 김두익)의 의지와 부산문화연구회(대표 김성배)의 기획력이 있었다. 동보서적은 책이라는 문화상품을 통해 지역에서 거둔 이윤을 지역문화 발전에 환원한다는 원칙 아래 무려 10년 동안 독자를 위한 전용버스 임대료와 도서상품권을 후원해 문학기행 자체를 가능케 했다. 부산문화연구회는 지역사회에서 아무나 흉내내기 힘든 기획력으로 실행을 도맡았다.

마지막 행사인 제100회 몽골문학기행에 초청된 안도현 시인은 "10년 동안 이런 대장정을 펼친 저력이 놀랍다. 지역문화를 위해 참으로 의미있는 일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몽골문학기행 참가 독자들은 "마지막이라니 무척 아쉽다"며 "어떤 형태로든 이 같은 문화 참여의 길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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