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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제르바이잔인들이 1990년 1월에 구 소련군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수도 바쿠 등에서 죽거나 실종된 피해자들을 추모하며 카네이션을 헌화하고 있다. |
- 각국 문화·역사 따라 꽃말 상이
5월이면 한국 방방곡곡에 카네이션이 가득하다. 꽃집들마다 빨간색 분홍색 하얀색 등 다양한 색깔의 카네이션이 진열돼 있고, 사람들은 한 손에 꽃바구니 등을 들고 바쁘게 걸어간다.
한국인은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을 맞아 감사한 사람들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한다. 필자가 한국에 살기 시작한 이후 이 풍경을 볼 때마다 늘 묘한 감정을 느낀다. 왜냐하면 내가 자란 나라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카네이션이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빨간 카네이션은 단순히 아름다운 꽃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고, 슬픔이며, 역사다.
아제르바이잔인에게 빨간 카네이션은 ‘1월 20일’을 떠올리게 한다. 1990년 1월 20일 소련군이 수도 바쿠에 진입해 폭력적인 진압을 해 수백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고 부상을 당했다. 다음 날 도시 전체는 붉은 카네이션으로 뒤덮였다. 사람들은 거리와 묘지, 그리고 희생자들의 곁에 카네이션을 놓았다. 그날 이후 카네이션은 아제르바이잔에서 희생과 추모의 상징이 됐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카네이션을 들고 부모님과 선생님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꽤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내게는 슬픔의 상징이었던 꽃이, 여기서는 감사와 사랑의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깨달았다. 꽃은 변하지 않는다. 그 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기억과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됐다.
거리에서 카네이션을 든 사람들을 바라볼 때마다 문화의 차이는 생각보다 아주 작은 곳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꽃이라도 어떤 역사와 기억을 담고 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한 나라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떤 꽃을 어떤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1월에 태어난 사람들의 탄생화인 카네이션의 꽃말은 색에 따라 차이가 있다. 붉은 카네이션은 국제노동절(5월 1일) 시위에 자주 사용된다. 포르투갈에서는 1974년 권위주의적인 에스타도 노보 정권이 전복되었을 때 밝은 빨간색 카네이션이 사용됐으며, 이 사건은 카네이션 혁명으로 알려져 있다. 진한 빨간색은 깊은 사랑과 애정을 나타낸다. 흰색 카네이션은 순수한 사랑과 행운을 상징하고 줄무늬 카네이션은 사랑을 나눌 수 없는 아쉬움을 상징한다. 보라색 카네이션은 변덕스러움을 나타낸다. 프랑스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주는 전통적인 장례 꽃이다.
※시민기자면은 부산시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