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되자 관노는 비수로 아랑을 죽이고, 그 시신을 영남루 앞 대나무 밭에 묻었다.

갑자기 종적이 묘연해진 딸을 한없이 그리워하며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던 밀양부사는 결국 딸을 찾지 못한 채, 한양으로 올라가고 말았다.
그 후, 밀양에 새로 부임해 온 부사들은 하루 밤을 넘기지 못하고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아무도 밀양으로 부임해 오려는 사람이 없어서 밀양부사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가지 재주는 출중했지만 아직 벼슬을 하지 못하고 있던 이 진사라는 젊은이가 꿈을 꾸는데, 머리를 산발한 여인이 나타나 자신은 밀양 부사의 딸이었는데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면서 원수를 꼭 갚아 달라고 하였다.
이 진사의 꿈이 너무 선명한 데다, 밀양 부사로 부임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그는 밀양 부사를 스스로 지원하였다.
이 진사가 부임한 첫날 밤, 잠자리에 들자 머리를 산발한 처녀가 피를 흘리며 나타났다. 그러자 이 진사는 "너는 누구냐? 사람이면 용건을 말하고, 귀신이면 썩 물러가거라"고 호통을 쳤다.

"저는 유모의 꼬임으로 달 구경을 나왔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전임 부사의 여식이오니, 저의 억울한 한을 꼭 풀어 주십시오."라며 모든 이야기를 한 뒤, 내일 아침 나비가 되어 자기를 죽인 관노의 갓에 앉겠다는 말을 끝으로 하직 인사를 한 후, 홀연히 사라졌다.
이튿날 부사의 명으로 모든 관속들이 모이자, 흰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어떤 관노의 갓 위에 앉았다.

범죄 사실을 극구 부인하던 관노는 이 진사가 곤장으로 추궁하자, 아랑을 죽이고 영남루 앞, 대밭에 던진 사실을 털어 놓았다.

그들의 자백을 받고, 대나무 밭으로 가보니 가슴에 칼이 꽂힌 아랑이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그 때까지 살이 썩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부사가 관노와 유모를 처벌하고 아랑의 시신을 수습해 제사를 지내주니, 아랑의 영혼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고을도 태평해 졌다고 한다.
조선 명종 때, 밀양 부사의 외동 딸 동옥 아랑 낭자의 절정을 기리는 사당이다. 아랑 전설은 우리나라 고전 소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장화홍련전을 탄생시킨 모태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매년 밀양 아리랑 대축제 기간 중에 모범 규수로 선발하여 음력 4월16일 제향을 올리고 있으며, 아랑의 영정은 1963년 10월 9일 고 육영수 여사가 이당 김은호 화백의 솜씨를 빌어 제작하여 봉안한 것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