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시 북구 ‘만덕동’ 이 만덕 이라는 지명은 어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 어원은 먼저 고려시대에 세워졌던 ‘만덕사’라는 절 이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충혜왕의 서자 석기를 왕으로 추대하려했던 음모사건과 관련하여 석기가 유폐 되었던 절이 만덕사이며, 현재의 만덕1터널 입구 좌측 산 쪽에 있는 사기마을에 있는 페사지에 만덕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이곳에 있는 고갯길에는 도둑들이 들끓었고 여기를 오르내리던 장꾼들의 물품을 털어갔는데 이 고개를 넘으려면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넘어야했기 때문에 ‘만등고개’라고 했다. 여기서 이 지역의 이름이 만덕으로 되었다는 설도 있다.

동래에서 구포로 넘어가는 만덕고개의 서쪽 산중턱에 잇는 만덕사지(萬德寺址)는 중앙부에 금당지(金堂址)로 추정되는 장방형의 축대가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있다. 이 축대를 중심으로 뒤편과 동북 및 서북쪽으로 200m 정도 내려간 시냇가에 당간지주가 있어, 규모가 큰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만덕사지는 1990년부터 3차례 걸쳐, 발굴조사를 하였는데 금당지에서 대형 ‘팔각좌대석(八角座臺石)과 굴찰급 사찰의 지붕에 설치하던 대형치미가 발굴되었고 강원(講院)터에서는 해무리굽 청자와 장흥고(長興庫) 명문 분청사기가 발굴되어 사찰의 위상을 증명해 주었다.

고려시대 만덕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은 전국에 다섯 군데 있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여 볼 때 이 곳이 충혜왕(忠惠王)의 서자 석기가 유폐된 절로 추정된다. 그러나 만덕동의 절터가 고려사에 기록한 만덕사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특히 1990년 10월 부산박물관에서 금당지로 추정되는 곳의 일부를 발굴한 결과 다양한 고려시대 유물과 함께 기비사(祇毗寺)라 적힌 명문 기와가 출토되었는데, 이를 근거로 만덕동의 절터는 석기와 관련된 만덕사가 아니고 기비사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발굴 결과 처음 창건 때부터 폐사될 때 까지 여러 차례 증, 개축된 사실로 보아 절터의 성격, 전체 규모 등 전반적인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기록 및 발굴 등의 면밀한 조사와 검토를 거쳐야할 것 같다.

한편 이 곳에 흩어져 있던 석탑의 석재를 1979년 2월 부산박물관에서 조사 수습하여 3층 석탑 한 개를 부산박물관 정원에 복원하였다. 이 석탑은 기단부가 단층으로 간소화 되었으나 탑신의 각층이 적당한 비례로 줄어져 아름답고 안정감이 있는 아담한 석탑이라고 한다. 현재 만덕사지는 부산지방문화재3호로 지정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