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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의 연극이야기 <43> 물이 흐르는 무대

물세트에 스토리는 흐르고 관객은 빠져

1930년대 '명기 황진희' 공연 등 최초 무대예술가 원우전이 시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1-13 21:03:15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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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국립극장에서 뇌우가 공연될 때의 모습. 김남석 제공
연극 공연을 보다 보면, 무대 위에 물을 가두어 극적 효과를 자아내는 경우를 간헐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가령 2004년 국립극장은 연출가 이윤택에게 '뇌우'라는 공연을 의뢰했다. '뇌우'는 1950년에 이미 공연된 작품으로 장안의 선풍적인 인기를 끈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양하게 분석되지만, 그 중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비오는 세트'였다.

1950년 6·25가 일어나기 바로 직전, 서울의 관객들은 무대 위에 설치된 세트 뒤로 흐르는 물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명 무대미술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김정환의 솜씨였는데, 무대 주변에 파이프를 설치하여 인공강우를 실현한 것이다. 사람들은 세트 뒤로 흘러내리는 물을 보고 무척 감탄했다고 한다. 1950년의 성공에 고무된 국립극장은 1988년에 이 작품을 재현했다. 당시 공연 필름을 보면 세트 뒤로 세워진 큰 유리창에 물이 흐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1980년대의 관객은 1950년대의 관객만큼은 열광하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 흘러, 그때쯤에는 이미 평범한 물에 관객들이 흥분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4년 '뇌우'재공연 때에는, 물이 무대 뒤로만(배우들이 연기하는 공간과 분리되어) 단순하게 흘러내려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무대를 기울여서(경사진 무대) 물이 무대 바닥을 흘러 앞쪽 무대까지(객석 앞까지) 나아가도록 조치했다. 물은 무대 뒤에서 무대에 떨어진 다음, 기울어진 경사를 타고 배우들이 연기하는 공간을 가로질러 객석 앞까지 흘러갔다. '뇌우'의 끔찍한 인연처럼, 물은 인간들의 삶을 마구 침범하는 운명의 손길처럼 보였다. 덕분에 2005년 '뇌우'는 관객들의 호응과 경탄을 다시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1930년대에 이미 물의 이런 속성을 이용하여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했던 무대디자이너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토월회 공연부터 조선의 연극계에 뛰어들어 '최초의 무대미술가'라는 호칭을 들었던 원우전이었다. 그는 이합집산이 심했던 1930년대 연극계에서도 누구(극단)에게나 환영받던 연극인이었다. 그것은 그가 뛰어난 실력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극장은 1936년 8월 1일부터 7일까지 박종화 원작, 최독견 각색 '명기(名妓) 황진이'를 공연했다. 이 작품의 무대 미술을 맡은 원우전은 무대 배경으로 금강산 폭포를 구상했다. 날씨도 더운데 무대를 통해 시원한 청량감을 불어넣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무대에 목재로 금강산을 만든 이후, 무대 바닥에 구멍을 뚫고 아래에서 물을 끌어올려 이를 세트 위로 흐르도록 장치했다.

무대가 열리자 관객들은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고 한다. 어떻게 했기에 무대에서 물이 흐를 수 있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무대 아래에서는 몇 사람의 장정이 동원돼, 쉬지도 못하고 흘러내리는 물을 퍼내기 바빴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물이 흐르는 무대는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이로 인해 이 작품은 크게 성공했다.

이처럼 한국의 연극사에서 흐르는 물은 무대의 실감을 높이는 역할을 맡았다. 우리는 흔히 어떤 작품을 보거나 감상할 때, 실감난다는 표현을 쓴다. 리얼리즘의 표현 기교에서 사실(실제)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은 우선적인 가치를 점유한다. 따라서 잘 된 작품에 '실감난다'고 칭찬하는 것은 우리가 그 작품을 사실주의 관점에 입각해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 된다.

초창기 우리 연극계는 사실성, 그러니까 실감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그 가시적 성과 가운데 하나가 무대 미술이었다. 연극은 영화처럼 현지 로케이션이 불가능하므로, 무대 미술의 기발함과 안정감을 통해 실감을 보완·확대·교정·강화하려고 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무대 미술은 과거의 관객이 꿈꾸던 연극의 목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오늘날의 관객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들 역시 실감이 있는 곳에서만, 감동을 찾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평론가·부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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