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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언 교수의 `건축, 시로 쓰다` <24> 태극도마을

무질서 속 질서, 즉흥의 건축들 神通(신통)하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2-27 20:02:00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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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마산 산복도로 산동네 태극도마을
- 빈틈없이 빼곡한 박스형 집들
- 설계도 그려 짓지 않았을 텐데 곳곳에 빼어난 건물

- 60년 전 전쟁 때 태극도 신도들의 신을 향한 마음인가
- 마을 어디에 서든 통신(通神) 느낌

- 과거 현재 미래, 농축된 이곳…반복의 광채 더욱더 빛나라

입체적으로 반원형 구도에다 마을의 모든 길들이 막힘 없이 하나로 통하는 깨달음의 구조를 띤 부산 사하구 감천2동 태극도마을 전경. 건축사진가 조명환
태극도마을에 오전 중에 가보기로 작정했다. 조명환 사진작가와 더불어 2명의 대학원생이 동행했다. 예상 외로 부산대에서 태극도마을까지의 도로가 한적해 약 40분 동안 이리저리 자동차 밖을 구경하다 보니 여전히 부산 변두리인 듯한 곳에 도달했다.

조작가에게 물어보니 태극도마을이란다.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그 마을처럼 보인다. 차를 타고 요모조모 구경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태극도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이것은 태극도마을이 더 이상 부산이라는 질서와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산 방식의 질서가 태극도마을에도 반복됨으로써 그야말로 조그마한 차이들로 부산의 질서가 태극도마을에 침투되었음을 안다. 질서상 부산과 태극도마을은 이미 떼려야 뗄 수 없은 관계이다. 천마산의 산복도로를 따라 형성된 산동네 태극도마을은 한국전쟁시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태극도 신도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그래서 마을이름이 태극도마을이란다. 한국의 '산토리니' 또는 '마추픽추'로 불리기도 할 만큼 동편의 바다와 어우러져 아름답다면 아름다울 수도 있다.

부산 사하구 감천2동 숨 쉴 구멍없이 빼곡이 들어선 박스형의 집들, 무수한 정사각형 내지 직사각형의 도장을 빡빡하게 찍어 놓은 듯하다. 반복이다. 동일성의 반복이기도 하지만 차이를 수반하는 반복이기도 하다. 마치 세잔이 즐겨그린 쌩 빅또와르 산 그림에서의 되풀이 되는 붓 터치와 유사하다. 세잔의 붓 터치는 이 그림에게 깊이를 주어 산을 산답게 한다. 만약에 이 그림에서 붓 터치가 없었더라면 평범한 풍경화에 그쳤을 것이다. 태극도마을의 집 한 채 한 채를 붓 터치로 본다면 세잔의 그림과 또 다른 감동을 우리에게 준다. 세잔의 붓 터치는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이지만 태극도마을의 집 한 채는 삶 그 자체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아주 오래된 집, 오래된 집, 새집 등으로 시간은 퇴적되어 있다. 아주 오래된 집이 많아서 시간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있다. 이와 동시에 시간이 너무 흘러 처음에는 이질적인, 차이가 나던 것들이 이젠 시간이 너무 흘러 시간이 마을 전체를 묶어준다. 시간에 의하여 나이테처럼 굵은 시간선이 마을을 묶어준다. 비록 처음 출발은 차이가 많이 났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래된 시간이 온 마을을 감싸 안고 있다. 미국의 철학자 스티븐 페퍼(1891~1972년)가 생각났다.

한국전쟁 시절 이후 계단식 건물처럼 들어선 태극도마을 주택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은 새로운 질서가 생겨 기존의 질서에 편입되는데 이 때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무질서가 질서로 변하기 때문이다. 무질서가 질서로 바뀌면서 질서는 무질서로 바뀐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이 세상은 끊임없이 바뀐다. 질서는 무질서로, 무질서가 질서로 바뀌면서 변화와 새로움이 수반된다. 태극도마을 역시 질서와 무질서, 새질서 사이를 왕복하면서 변화와 새로움 속에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습관화된 질서와 무질서가 통합되면 새롭고 변화된 질서가 형성된다. 기존의 질서가 무질서와 통합되면 새로운의 질서가 생기면서 새로움과 변화가 발생한다. 가령 예를 들면 구형 청소기로 집안 청소를 질서화시키던 사람이 신형 로봇 청소기로 집안 청소를 질서화시키면 새로움과 변화가 일어난다. 구형과 신형로봇 사이에 생기는 새로운 질서가 생기면서 변화와 새로움이 수반된다. 새로운 질서화는 반복되면서 질서화된다. 사건은 반복을 통해 질서를 만들고 습관적 방식과 차이를 만들어나가다가 사건이 반복을 통해 질서로 습관화되면 차이가 더 이상 형성되지 않는다.

강은교는 시, '어둠을 주제로한 시 두 편' 중 하나, '김수영을 추억함'에서 아래와 같이 읊조린다.

'어둠아 온 뒤에도 또 오네/ 어둡다 말한 뒤에도 또 오네/ 등불 하나를 켜도 또 오네/ 한 집 건너 또 오네/ 두 집 건너 또 올까/ 한 걸음 지나 또 오네/ 두 걸음 지나 또 올까/ 문 닫아도 닫아도 또 올까'

'어둠아 온 뒤에도 또 오네' 어둠이 온다는 말은 낮의 질서가 무질서로 향하여 깊어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등불 하나를 켜도 또 오네' 등불이 하나, 둘 켜져 어두움, 무질서가 극복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무질서는 숙명적으로 다가올 뿐이다. 두 편의 시 중에서 다른 한편의 시인 횃불에서는 인간에게 다가오는 질서에 관한 법칙을 쓰고 있다.

'…그 다음날 또 사고가 났네/ 우리는 몰려가 그 어둠을 펐네/ 우리는 몰려가 그 어둠을 펐네/ 밤새도록 펐네/ 드디어 그 어둠은 사라져/ 그 사람이 후들후들 심연에서 기어나왔네/ 우리는 이번에야말로 어둠이 다아아 물러간 줄 알았네/ 기뻐 날뛰었네/ 하루 낮을/ 또 하루 낮을/………/ 시인이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데, 누가 피곤한 내 가슴을 두드렸다/ 바람!/어둠이 그것의 허리를 꼬옥 안고 있었다.'

어둠을 퍼낸다는 의미는 무질서를 제거한다는 말이다. 어둠이, 즉 무질서가 다물러 간 것처럼 보이지만, 무질서는 물러가지 않고 바람을 안고 있었다. 그 바람은 시인의 가슴을 두들긴다. 질서의 밑바탕은 무질서이고 어둠인 무질서는 퍼내도, 퍼내도 끝이 나지 않는다. 어둠이 다물러 간 것처럼 보이지만 시커먼 심연을 드러낸다. 어둠의 깊숙함은 등불 하나, 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두움인 무질서가 밝음인 질서로, 밝음의 질서가 다시 무질서로 돌아감을 이 시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무질서가 질서로 형상화, 즉 어둠이 횃불로 인해 밝아질 때 세상은 질서화한다. 더 밝은 빛이 오면 질서는 더 멀리 퍼져나갈 것이다. 밝음이 방향을 바꿀 때 질서화한 것이 무질서로 어둠의 나락으로 빠진다. 밝음이 비춰지는 곳에 질서화가 이루어짐을 시인은 밝히고 있다

마을전체의 형태가 하나로 작동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을의 가장자리 어느 곳이나 아래를 내려다보면 통신(通神·그쪽 사람들이 득도의 최고의 경지 이른 사람을 말함)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경사로에서 위, 아래로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는 데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멀리서 상대를 응시하는 눈들이 날카롭다. 득도(得道)의 경지에 도달하기위해 오래 동안 쌓은 내공이리라. 시간이 만들어 놓은 평면, 입면에서 많은 건축적 아이디어가 숨어 있는 듯하다. 평면, 입면, 단면도가 설계실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현장의 삶에서 즉흥적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조금만 다듬으며 훌륭한 건축물이 될 법한 아름다운 건축물이 도처에 있다. 또한 뛰어난 형태를 가진 건축물이 도처에 있다. 그 놈들만 손 좀 보았으면 훌륭한 마을이 되었으리라. 어두운 심연의 유일한 밧줄인 통신이야 말로 구원 줄이다.

자신 스스로 구원의 경지에 도달한 이가 만듦 직한 건물 및 마을의 구조가 도처에 발견된다. 도면 없이 만들어지는 집, 통신에 의하여 즉각적,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집. 어떤 길로 가든지 장애물 없이 목적점에 도달케 함으로써 모든 길들은 하나로 통한다는 도의 깨달음, 시선을 정신세계에 연결하여 마음의 세계를 득도케 하려는 마을의 구조(입체적으로 반원형). 인체에 최적합선인 슬라롬 활강곡선(인체리듬의 체험, 호흡의 섬세한 느낌)과 같은 길은 통신을 이루면 이르는 경지가 아닌가?

통신을 이룬 자의 가슴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농축되어 있다. 그래서 그 셋을 동시에 가슴으로 본다. 다만 그 셋을 볼 수 있는 직관력의 큰 횃불이 필요하다. 어둠의 심연이 끝이 보이지 않으므로 질서화할 횃불을 커다랗게 높이 들어 올릴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우리는 질서를 더 명확히 볼 수 있으므로 우리는 지금껏 주위를 질서화하기에 너무 적은 횃불로 주위를 살폈다. 농축된 과거, 현재, 미래는 밝을수록, 반복을 자주 할수록 건축은 더욱 선명해진다. 물론 차이도 두드러질 것이다.

어둠은 무서운 '놈'이다. 우리가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이 시에서 보는 것처럼 바람의 허리를 꼭 껴안고 들어오는 무서운 놈이다. 그렇게 어둠을 끌고 와 어둠을 차곡 차곡 쌓아둔다. 어두움은 횃불과 반대다. 태극도마을이 어둠의 심연 속으로 빠질지 더 높고 더 큰 횃불 아래 설지 두고 볼일이다. 어느 쪽도 딜레마이다. 깊은 심연 속에 빠짐은 더 큰 횃불 아래 설 조짐이다. 더 큰 횃불 아래 서있는 것은 더 깊은 심연 속으로 빠질 징후이다. 그렇다할지라도 태극도마을의 시작은 횃불이고 태극도마을의 끝은 광채일 것이다. 왜냐면 무수한 반복은 광채. 반복은 통신 그 자체이므로. 차이는 어둠을 만들고 반복은 건축의 광채다.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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