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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세상이야기-그 곳에도 삶이 있다 <11> 수영에 최적화된 조류, 펭귄

펭귄, 바닷속을 날다… 100만년 전 하늘 대신 바다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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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거운 뼈·강한 날개로 박태환보다 3배 빠르고, 수백m 잠수도 거뜬
- 남극해 북쪽서 겨울나고, 여름 시작되는 11월 중순 돌아와 번식
- 무리지어 이동할 땐 한마리가 먼저 입수, 위험 감지 뒤 움직여
- 레오파드 해표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

어미 젠투 펭귄이 새끼의 수영을 지켜보고 있다.
2006년 남극을 찾았을 때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펭귄을 보고 싶었다. 수중 촬영장비를 챙겨 들고 둥지에서 바다로 향하는 펭귄을 따라 갔지만, 땅에서는 뒤뚱거리다가도 물에 들어가기만 하면 쏜살같이 사라지는 펭귄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방법을 바꿔 미리 바닷속에 들어가 펭귄을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낌새를 챈 펭귄은 나에게 거리를 주지 않았다. 한두 마리 눈앞을 스치듯 지나갔지만, 시속 25㎞ 이상의 속도로 헤엄치는 펭귄을 사진에 담아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바닷속에서 머물 수만은 없는 노릇. 차디찬 수온에다 바닷속에는 먼저 와서 펭귄을 기다리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남극 바다의 절대 포식자 레오파드 해표를 말한다. 이들은 펭귄을 주식으로 하지만 자기 영역으로 들어오는 모든 생명체를 공격한다. 2004년에는 영국 생물학자가 레오파드 해표에 물려 목숨을 잃기도 했다.

■물속에서 날아다니는 펭귄

빙산 위에서 레오파드 해표를 본 젠투 펭귄이 조심스럽게 바다로 돌아가고 있다.
펭귄은 땅 위에서야 서툰 몸짓이지만, 물에 들어가면 강한 날갯짓으로 헤엄친다. 헤엄치는 모습은 마치 바닷속을 날아다니는 듯하다.

펭귄은 분류학상 조류에 속한다. 그러나 수영만큼은 어류에 뒤지지 않는다. 이들의 유영 속도는 시속 25㎞에 이른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자유형 100m에서 48.70초로 금메달을 차지한 박태환 선수의 기록을 시속으로 환산하면 시속 7.4㎞이니 펭귄의 빠르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펭귄은 영하 1.6~1.9도까지 떨어지는 차디찬 남극 바다에 훌륭하게 적응했다. 촘촘하게 나 있는 깃털 바깥쪽에는 기름이 발라져 있어 얼음보다 차가운 물이 스며들지 못한다. 깃털 안쪽으로는 단열 작용하는 공기층이 있으며, 피부 아래에는 지방층이 두툼하게 자리 잡고 있다.

새들 대부분은 잘 날기 위해 진화를 통해 뼈의 무게를 줄여나갔지만, 펭귄은 오히려 속이 꽉 찬 무거운 뼈를 가지고 있다. 무거운 뼈는 하늘을 나는 대신 몸이 물속으로 잘 가라앉도록 해서 먹이가 되는 크릴을 쉽게 잡을 수 있게 해준다. 또 무거운 몸을 지탱하기 위해 날개는 점차 강해졌다. 무거운 몸과 강력한 날개의 도움으로 펭귄들은 수백 m까지 잠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수면을 돌고래처럼 헤엄치다가 물을 박차고 2~3m 높이까지 뛰어오를 수도 있다.

바다로 뛰어드는 아델리 펭귄. 펭귄은 먼저 바다로 들어간 동료의 안전이 확인되어야 무리 전체가 움직인다.
펭귄의 강한 날개는 먹이 사냥뿐 아니라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람들은 펭귄을 남극의 텃새로 알지만, 펭귄은 계절에 따라 남극을 오가는 철새이다. 이들은 혹독한 남극대륙의 겨울이 오기 전 비교적 따뜻한 남극해 북쪽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겨울을 난 펭귄들은 여름이 시작되는 11월 중순 땅으로 돌아와 번식한다. 1년에 두 번, 거칠고 험난한 남극해를 오로지 헤엄쳐 가로지르는 여정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1월 중순 새끼가 태어나면 부모 펭귄의 마음은 바빠진다. 먼 길을 떠날 수 있도록 새끼를 단련시켜야 한다. 번갈아 크릴을 사냥해 먹이고 새끼에게 수영과 사냥술을 가르친다. 새끼는 태어난 지 6~7주가 지나면 몸의 크기가 어미와 비슷해지고 8~9주가 되면 털갈이를 시작한다. 털갈이를 시작하면 부모는 새끼를 바다로 데리고 와 물에 조금씩 적응시킨다. 새끼들은 생존을 위해, 먼 길을 떠나기 위해 날개에 힘을 길러야 한다. 아무리 추위에 강한 펭귄이라도 남극의 겨울을 이겨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처럼 펭귄의 날개는 먹이 사냥과 이동을 위해 오랜 세월을 두고 단련됐다. 과학자들은 펭귄이 날 수 있는 기능을 잃은 것을 100만 년 전쯤으로 추정한다. 그 이전 모든 펭귄은 하늘을 날아다녔을 것이다. '자연계의 생물 개체 간에는 변이가 생겨 생존 경쟁을 하게 되고,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는 개체들이 더욱 많이 살아남아 더 많은 자손을 남긴다'라는 다윈의 자연선택론적 관점에서 하늘 날기를 포기하고 헤엄치기를 선택한 펭귄이 생존에 유리해 지금까지 살아남았을 것이다.

■바닷속 펭귄의 천적

크릴. 남극의 모든 생명체는 크릴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펭귄은 크릴을 주식으로 한다. 크릴은 난바다 곤쟁이 과에 속하는 동물성 플랑크톤이다. 길이가 5㎝ 정도이며 새우처럼 보여 흔히 '크릴새우'라 하지만, 분류학상 새우와는 연관성이 없다. 크릴은 남극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이다. 남극에 서식하는 동물 중 크릴을 먹지 않는 것은 없다. 남극대구, 남극빙어 등 어류에서부터 고래, 해표 등의 포유류와 펭귄, 가마우지, 남극갈매기, 스큐아 등의 조류에 이르기까지 남극에 사는 모든 동물이 크릴에 의존한다. 해양학자들이 추정하는 크릴의 양은 10~50억 t 정도이다. 한 해 인류 전체가 먹는 수산물의 양이 1억 t에 못 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크릴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해 볼만하다. 남극에서 크릴을 사냥하는데 펭귄만 한 사냥꾼은 없다.

그런데 바다는 펭귄만의 사냥터는 아니다. 펭귄도 사냥의 대상이 된다. 남극 바다의 강력한 포식자 레오파드 해표가 펭귄을 주식으로 하기 때문이다. 레오파드 해표는 바닷속에 머물며 펭귄을 기다린다. 레오파드 해표와 맞닥뜨린 펭귄은 '날개야 날 살려라' 하고 시속 25㎞ 이상의 속도로 도망가겠지만, 레오파드 해표는 더 빠르다. 땅과 가까운 곳이라면 껑충 뛰어올라 살 수 있겠지만, 땅에서 너무 떨어졌을 때는 레오파드 해표의 이빨에서 벗어날 수 없다. 펭귄을 입에 문 레오파드 해표는 두꺼운 펭귄 가죽을 벗겨 내기 위해 수면에다 펭귄을 패대기친다. 잠시 뒤 주위 바닷물이 벌겋게 물들고 수면에는 찢어진 펭귄 가죽만 남는다. 레오파드 해표가 노리는 것은 펭귄 위장이다. 그 속에는 반쯤 소화된 크릴이 가득 들어 있다. 레오파드 해표 역시 크릴이 목적인 셈이다.

췬스트랩 펭귄들이 무리지어 바다 위를 날 듯이 헤엄치고 있다.
펭귄에게 남극 바다는 사냥터이자 대이동을 위한 교통로 역할을 하지만 위험한 곳인 셈이다. 펭귄들은 이러한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공동생활을 한다. 무리를 이룬 펭귄들은 바다로 들어가기 전 순서에 따라 한 마리가 먼저 물속으로 들어가 본다. 다른 펭귄들은 먼저 물에 들어간 동료가 안전한지 물끄러미 지켜본 후 안전에 대한 확신이 서면 뒤따라 간다. 하루는 우리나라 세종과학기지가 있는 사우스셰틀랜드 군도, 킹조지 섬 해변을 걷는데 펭귄 한 마리가 레오파드 해표가 잠든 빙산 위로 뛰어오르는 게 아닌가. 멋모르고 뛰어올랐다가 레오파드 해표를 발견한 펭귄의 기분은 어땠을까. 당황한 펭귄은 머리를 숙인 채 조심조심 빙산을 내려갔다.

■펭귄과 인류의 만남

남극 바다에선 레오파드 해표의 존재가 큰 위협이다. 바닷속에서 레오파드 해표 울음 소리를 들은 기자가 땅으로 돌아오고 있다.
남극에서 펭귄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누구일까. 만남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지만, 1818년 2월19일 영국 상선 선장이었던 윌리엄 스미스가 남위 62도 지점에 있는 사우스셰틀랜드 군도의 리빙스턴 섬을 발견한 이후 1819년 러시아 해군 장교 벨링스하우젠과 1820년 영국 해군 장교 브랜스필드 등이 남극대륙의 존재를 확인했으니 펭귄을 처음 발견한 시점도 이 무렵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840년 남극대륙의 인도양 쪽 해안에 상륙한 프랑스 탐험가인 뒤몽 뒤르빌은 자신이 발견한 펭귄에다 자기 아내 이름을 붙여 '아델리펭귄'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담긴 하지만 17종의 펭귄 중 아델리펭귄이 제일 예쁜 편이긴 하다.

펭귄은 남극대륙을 찾은 탐험가와 해표잡이 사냥꾼들에 의해 사냥당하기도 했다. 1898년 얼음 바다에 갇혔다가 1년 만에 구출된 벨기에 남극 탐험대원들은 펭귄 고기로 목숨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들이 생존을 위해 펭귄을 사냥했다면 물개와 해표잡이 사냥꾼들은 해표 기름을 끓여내는 연료로 펭귄 기름을 사용하기 위해 펭귄을 조직적으로 사냥했다. 지금은 펭귄뿐 아니라 남극의 모든 동식물이 '남극환경보호의정서'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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