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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언 교수의 '건축, 시로 쓰다' <19> '반복의 힘' 부산시립미술관

'차이와 반복' 미술관의 숙명 고스란하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1-22 20:35:31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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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자형 지붕 4개…수장·보관·전시 반복해야하는 미술관을 구현
- 세계적 건축가 루이스 칸의 작품 킴벌 미술관 6개 지붕 닮아

- 옥상 정원과 계단식 정원은 곡선에 맞추고
- 노출콘크리트 벽면의 시간화 차이와 반복 표현
- 파도와 갈매기, 반복하는 요소 많은 부산 상징성도 부각

4개의 V자형 지붕 양식을 취하고 있는 부산시립미술관. '차이나는 반복'을 표현한 이 지붕으로 시립미술관은 영원성과 부산의 상징성을 구현하고 있다.
어느날 부산시립미술관을 지나고 있을 때 그것의 V형 지붕모양의 반복이 시인 정현종의 '노래에게'를 떠올리게 했다. 반복되는 어휘가 획일적인 반복이 아니라 차이가 나는 반복이었기 때문이다. '노래는/ 마음 발가벗는 것// 노래는/ 나체의 꽃/ 나체의 풀잎/ 나체의 숨결/ 나체의 공간/ 의 메아리// 피, 저 나체/ 죽음, 저 나체/ 그 벌거숭이 대답의 갈피를 흐르는/ 노래, 벌거숭이/ 武裝도 化粧도 없는 숨결// 돌아가야지 내 몸 속으로/ 돌아가야지 모든 몸 속으로/ 불꽃이 공기 속에 있듯/ 그 속에서 타올라야지// 마음을 발가벗는/ 노래여/ 내 가슴의 새벽이여'. '나체'가 6번 나오고 '벌거숭이'가 2번, '발가벗는'이 2번 나온다. 나체와 관련된 단어가 무려 10회가 나오는 셈이다.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잘 사용하지 않는 시인이 왜 동일하거나 유사한 어휘를 10회씩이나 반복하나? V형의 지붕이 4회, 계단식 정원 5회 등, 같은 어휘를 차이 나게 반복하는가? 시립미술관의 건축가 이용흠(일신종합건축사사무소·회장) 씨는 왜 동일한 건축적 어휘를 차이나게 반복해 쓰는가? '차이나는 되풀이'를 통해 영원을 쟁취하려는가?

같은 단어라도 맥락에 따라 나체, 벌거숭이, 발가벗는 등의 뉘앙스가 제각각 차이가 난다. 즉 나체의 꽃, 나체의 풀잎, 나체의 숨결, 나체의 공간의 메아리 등 나체와 관련된 어휘들이 다 다르다. 나체는 시에서 볼 수 있듯이 나체는 똑 같은 용어이지만 나체의 꽃, 나체의 풀잎 등은 서로 차이나는 반복일 뿐이다. 첫 번째 나체가 맥락적으로 결정되는 순간 두 번째 나체가 첫 번째 나체와 차이를 지닌다. 상기의 시립미술관을 예로 들면 V자형 지붕 4개는 각각 '차이나는 반복'이다,

'나체는 무엇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체가 개념화 되는 것을 막는 것은 차이나는 반복에 있다. 이 차이나는 반복은 맥락에 따라 무한히 존재한다. 그래서 이것을 아직 '발전되지 않은 차이'라 부른다. 반복은 '나체의 ○○' 식으로 그 차이 운동을 만드는 능력인 '반복하는 힘'에 해당한다. 차이나는 반복을 통해 사람이나 사물이 명쾌하게 보이는 과정의 예를 필자의 지인인 K의 경험을 통해 알아본다.

K가 백인을 처음 만났을 때가 초등학교 시절 아마 5학년 쯤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 때는 백인을 정확이 구분 못했다고 한다. 몰몬경을 들고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큰 코, 큰 키만 보이지 누가 누구인지 구분을 못 했다. 세월이 지나 42세 즈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고 한다, 7년간의 이민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 올 무렵 한국인 만큼 백인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희미하게 차이나는 반복에서 뚜렷이 차이나는 반복으로 전환된 것이다. 사과를 데생할 경우 처음에는 이쪽 사과나 저쪽 사과나 같아 보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구분되기 시작한다. 흐릿하게 차이나는 반복에서 도드라지게 차이나는 반복으로 넘어간 것이다.

전면에서 바라본 부산시립미술관 전경. 건축사진가 조명환
이 시는 시립미술관의 '차이와 반복' 구조와 거의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립미술관은 반복체이므로. 이와 아울러 계단식 정원(step garden)과 선큰 가던(sunken garden)에서 동일한 패턴이 반복해서 나타나니 위의 시에 못지않은 반복은 실상 차이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차이가 결국은 건축에서 장소성(場所性)을 만드는 것이다. 이 시도 결국은 나체란 단어들의 맥락에 따른 뉘앙스의 차이나는 반복이 특성을 이루게 될 것이다. 1995년 건립 당시 시립미술관을 어떻게 해석했나?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당시) 미술관 설계공모 당선작은 전체 11점(부산4점, 서울7점)의 응모작품 중에 파도 물결치는 모습으로 부산을 상징하면서 단순명쾌하고 솔직하게 외관을 표현한 일신(一信) 안이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술관은 수장, 보관, 전시가 목적이므로 그것 자체가 전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배경이 되어야 한다. 그림을 붙일 수 있는 풍경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수장, 보관, 전시가 효율적으로, 기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경우 같은 모양이 차이 없이 반복되는 듯한 미술관도 생길 수 있다. 시립미술관처럼 차이와 반복이 너무 미세할 경우, 일반인은 감지하기 어렵다. 마치 똑 같은 반복을 보는 것 같다. 서구철학과 예술이 거대한 동질성에 묶이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루이스 칸은 달랐다. 그는 모더니즘 시기에 이미 차이나는 반복에서 미세한 이질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건축적 생애는 모더니즘과의 미세한 차이 찾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위대한 작품, 킴벌 미술관(Kimbell Art Museum, Fort Worth, Texas, U.S.A.)은 미세한 차이를 개념에 묶을 수 없다는 식으로 요소 요소에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예를 들면 6개의 칸 사이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의 절묘한 차이. 이것이 결국 모더니즘과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부산시립미술관도 킴벌 미술관과 유사한 구조로 되어있다. 시립미술관은 V자형 지붕 4개를 가졌다면 킴벌 미술관은 거의 반원에 가까운 지붕 6개로 구성되어 있다. 구조, 공간, 그리고 빛의 통합이 6칸 모두 차이가 난다.

단순, 명쾌하고 솔직한 외관표현은 생각보다는 어렵다. 기능이 우선 단순, 명쾌하여야 한다. 솔직한 외관표현은 기능의 단순, 명쾌함으로부터 나오므로. 대부분의 미술관들이 조형적으로 실패하는 이유는 뭔가를 만들어 보려는 건축가의 욕망 때문이다. 자기작품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미술관을 진정으로 작품을 위해 건축할 때 그것은 빛나게 될 것이다. 차이나는 반복이 생성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차이나는 반복이 요구되는 곳에서는 과감히 그것을 받아들인다. 루이스 칸은 차이나는 반복을 교묘히 끌어 들였다. 노출콘크리트 벽면의 시간화에 따른 차이와 반복. 부산시립미술관은 킴벌 미술관의 차이나는 반복을 재현한 것 같다. 아니 재현한 것이 아니라 개념화한 것이다.

시립미술관의 주출입구는 남쪽을 향해 있고 가로등 모양의 열주가 좌우에 배치되어있다. 주출입구를 통과하는 동안 벽천과 선큰 가든을 통과해야 한다. 이외에도 출입구가 세 개 더 있다. 주출입구는 전면에 올림픽공원광장이 있다. 좌측 단부는 곡선형으로 되어 있으며 옥상정원도 곡선에, 계단식 정원도 곡선에 맞추어져 있다. 1층에는 하역데크, 하역장, 수장고, 해체, 포장실 등이 있다. 학예원실, 관장실, 사무실, 로비, 다목적실, 안내, 매표, 물품보관실 등이 있다. 2층에서는 기획전시실이 4개소가 있고 1층으로 오픈된 공간이 4개소 있다. 이외에도 역사전시실 4개소 있다. 3층에서 상설전시실이 4개소, 공예전시실 4개소가 있다. 이외에도 옥상정원이 있다. 3층의 특이한 점은 2, 3층을 관통하는 열린 공간이다. 이외에도 지하1층이 있으나 별로 중요하지 않으므로 생략한다. 건립 당시 신문기사를 살펴보자.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되고, 힘차고 개방적인 부산시민 미술관으로서의 위상에 부합되는 입면을 구성하였다. 전시실 내부 기능의 솔직한 외적 표출, 매스와 면의 반복에 의한 부산의 상징적 부각, 음영의 효과를 고려한 볼륨감과 변화감를 추구하였다.' 위의 문장에서 가장 핵심 어구는 '반복에 의한 부산의 상징적 부각'이다. 부산은 다른 도시와는 달리 반복되는 요소가 많다. 적어도 바다와 관련해서 말이다. 파도, 방파제, 갈매기 등. 차이와 반복에 의하여 이러한 것들이 상징적으로 또렷이 부각된다.

이동언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4개의 V자형 지붕 형태는 차이나는 반복만큼 장소성이 획득된다. 한편 2, 3층은 움직일 수 있는 전시공간을 만들었다. 변화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에 비해 입면은 반복이 수 없이 되풀이 된다. 왜 일까? 인간은 안주하기를 원한다. 동시에 변화하길 원한다. 영원성 속에서 변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순이다. 시에서도 나체의 '○○'으로 차이나는 반복을 통해 영원성을 획득 하듯이 미술관에서는 V자형처럼 생긴 것들의 반복을 통해 영원성이 획득된다. 2층에서는 내부의 융통성 있는 평면변화를 통해 변화무쌍함을 얻는다. 이 세상에 반복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차이만 존재하지도 않는다. 똑 같은 건물은 없다. 차이나는 반복 때문이다. 미세한 차이, 잘 되풀이 되지 않는 반복도 잡아내어 건축적 차이와 반복을 만드는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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