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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大 트레일을 연다 <3> 속초~주문진 (약 52㎞)

[창간 63주년 특집] 통일전망대 ~ 부산 650㎞

두 눈 같은 석호, 설악 담고 노래비는 푸른 희망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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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래사냥'의 촬영지인 강원도 양양군 남애항 전경. 동해안 3대 미항 중 한 곳이다. 양양군 제공

- 화랑·철새가 반한 누이같은 영랑호, 고깃배 오가는 오빠같은 청초호
- 하조대 소나무 보며 애국가 떠올리고 통한의 38휴게소선 '불망기' 가슴에 울려
- 남애항서 동해보니 '고래사냥' 절로 흥얼
- '오징어의 고장' 주문진, 배호 노래사랑 못말려

영랑호 수면에 설악산이 내려와 묵상 중이다. 한 폭의 영롱한 수묵화가 펼쳐져 있다. "이야, 기막힌 풍경이구먼!" 함께 돌아보던 (사)걷고싶은부산 박재정 상임이사가 연신 감탄사를 뱉어낸다. 고개를 들어보니 설악산 울산바위가 수려한 자태로 웃고 있다. 설악의 품 속에 완전히 안겨든 느낌. 발걸음이 날듯 가볍다.

■화랑들이 반한 영랑호

속초의 영랑호
신라시대 영랑(永郞)이란 화랑이 있었다. 영랑은 술랑(述郞)·남랑(南郞)·안상(安祥)과 더불어 신라 사선(四仙)이라 불린 인물. 그는 금강산에서 무예를 연마하고 무술대회에 나가기 위해 경주로 가던 중 호수의 풍광에 취해 대회 참가조차 잊고 말았다는 낭만파였다. 이때부터 호수 이름이 영랑호가 되었다고 한다.

영랑호를 즐기는 법? 그건 바로 옛날의 영랑처럼 걷는 것이다. 둘레길(7.7㎞)이 멋지다. 빨리 걸으면 2시간, 쉬엄쉬엄 걸으면 3시간 정도 걸린다. 자전거를 빌려 탈 수도 있다. 그러나 걸어야 제맛이다. 걷고 있으면 '호르르~'하고 청호반새와 흰뺨검둥오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길을 안내한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 최유정 사무국장은 "보다시피 철새도래지다. 여름철엔 백로, 왜가리를 비롯해 파랑새, 꾀꼬리 등이, 겨울철엔 잠수성 물새류가 많이 온다"고 했다. 그는 "꼭 지켜져야 할 곳인데 개발 압력을 많이 받고 있다"고 걱정했다.

■깨어나는 청초호

내친 걸음, 청초호로 간다. 영랑호와 청초호는 설악산이 거느린 남매다. 속초항의 내항으로 고깃배들이 드나드는 청초호가 정열적인 오빠라면, 영랑호는 그윽한 풍광을 품은 어여쁜 누이동생이다.

청초호는 둘레가 약 5km에 이르고, 선박들이 외해의 풍랑을 피할 수 있는 천연을 조건을 갖추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수군만호영을 두고 병선을 정박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1999년 속초에서 강원도 관광엑스포가 열리면서 잠자던 청초호가 깨어났다. 거대한 호수의 1/4가량이 매립되어 도로와 산책로, 레저시설 등이 들어섰다. 청초천이 유입되는 구역을 철새도래지로 남겨두었으나, 철새들의 서식지는 갈수록 잠식되는 상황이다. 최 사무국장은 "청초호에 100여 종의 철새들이 오는데, 언제까지 도래지로 기능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최 사무국장은 도보탐사단을 이끌고 청초호변 엑스포타워로 데려갔다. 지상 74m의 하이테크 전망대에 오르자, 설악산을 배경으로 두 개의 왕눈같은 석호(영랑호, 청초호)를 품은 속초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길은 멀고, 볼 것은 많고

주문진 소돌마을의 '파도 노래비'
속초 걷기는 영랑호-청초호를 중심으로 동선이 만들어진다. 영랑호를 한바퀴 돌아 장사동 횟집단지→해안도로→영금정(속초등대)→중앙동(로데오거리)→청호동(아바이마을)으로 들어간다. 영금정(靈琴亭)은 파도가 갯바위를 쳐 거문고 소리가 난다는 곳인데, 일제 때 항만개발 과정에서 훼손되었다고 한다.

청호동 아바이마을을 나와 청초호를 돌아 속초버스터미널 쪽으로 걸으면 속초해수욕장→외옹치→대포항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만난다. 길은 다시 7번 국도로 이어지고 설악(양양) 해맞이공원을 지나 낙산사로 접어든다. 길은 멀고 볼 것은 많다. 어쩌랴, 걸어서도 못보는 것은 못보는 것을.

속초에도 걷기운동이 점화되고 있었다. 속초문화원 김인섭 사무국장은 "환경단체 등과 함께 걷기모임을 발족시켜 설악산 자락과 영랑호-청초호를 끼고 걷는 걷기 코스를 연구 중"이라고 했다.

이른 아침에 찾은 천년고찰 낙산사는 맑고 고즈넉했다. 파도소리·풍경소리·산새소리가 어우러지는 경내를 돌다 의상기념관 앞에서 '길에서 길을 묻다'라는 문구를 발견한다. 화두를 안았지만 발걸음은 무겁지 않다. 낙산사 종합주차장(유스호스텔 방면) 쪽으로 들어가 경내를 한바퀴 돌아 후문으로 나오면 낙산해수욕장이다.

■남대천의 연어 생각

남대천 하구에 낙산대교가 걸려 있다. 여기서부터 양양(襄陽) 땅이다. 남대천은 연어들의 모천. 머지않아 강물이 와랑와랑 소란스러워질 것이고, 인간들은 축제를 할 것이다. 연어들의 장엄한 종생을 생각하니 가엾기도 하고 장단지에 힘을 솟기도 한다.

20여분을 걷자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지박물관이다. 1980년대 발굴조사가 이뤄져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인 약 8000년 전의 신석기 유적지로 확인된 곳이다. 박물관 덱 산책로를 따라 수렵·채집시대의 흔적을 더듬는다.

오산-동호-하조대-기사문-동산-죽도-남애-원포-지경 해수욕장을 차례차례로 만난다. 해수욕장을 일일이 챙기자니 숨이 찬다. 하조대는 조선 개국공신 하륜과 조준이 풍류를 즐겼다는 곳. 바위 벼랑 위의 소나무는 애국가 영상에 등장하는 명물. 하조대 무인등대는 천애 위에 핀 백합같다.

38휴게소를 지난다. 해방공간에 민족을 가르는 통한의 38선이 그어진 자리다. '겨레여! 여기 이곳은 저 파도소리처럼 잊지 말자…' 기념비에 적힌 황금찬의 '불망기'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반사적으로 동해를 본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흥얼거리며 양양군 현남면 남애항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영화 '고래사냥'의 촬영지다. 고향을 찾으러 떠난 세 젊은이의 모험담을 그린 이 영화는 삶의 푸른 희망을 이야기 한다. 산은 풀어진 것을 맺게 하지만, 바다는 맺힌 것을 풀어내게 한다. 동해가 그런 바다다. 남애항은 작지만 이쁘다.

■못말리는 '배호 사랑'

땅의 경계, 지경해수욕장을 지나자 주문진이다. '오징어 고장' 아니랄까봐 온통 오징어 홍보판이다. 소돌마을 아들바위공원이 웃겼다.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빌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신묘한 기암이 그렇고, 그 옆에 당당하게 세워진 배호의 '파도 노래비'가 그랬다.

'파도 노래비'는 2003년 7월에 강릉시가 세웠는데, 요절가수 배호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하지만 소돌해변의 파도가 장쾌해 '파도' 노래와 어울리는 면이 있긴 하다. 못말리는 '배호 사랑'이 '파도'를 세운 셈인데, 어쨌거나 이곳에서 해마다 달맞이축제가 치러지고 가끔 배호 모창대회가 열린다니 주문진 사람들은 뜻을 이뤘다.(참고로 배호는 서울 출신이다. 서울, 경기 양주, 경주에도 그의 노래비가 있지만, 주문진만큼 명소가 된 곳은 없다)

노래비에 500원을 넣으면 '짠짠~ 부딪혀서 깨어지는 물거품만 남기고…'라는 배호의 '파도'가 흘러나온다. 장쾌한 파도라도 치는 날, 노래는 독특한 감흥을 선사한다. 이쯤되면 지역 스토리텔링의 승리라 할 만 하다.


# 갯배와 아바이마을

- 전쟁의 상흔, 추억·관광명소로

속초의 갯배
속초의 명물 갯배는 청호동 아바이마을과 속초 시내(중앙동)를 연결하는 무동력 도선이다. 폭 50m의 청초호 양쪽에 설치된 쇠줄을 잡아당겨 움직인다. 아바이도 당기고 아마이도 당긴다. 나룻배도 아닌 것이, 바지선도 아닌 것이, 바로 그렇기에 유달리 기억되고 지속되는 도선이다.

배삯은 사람, 손수레, 자전거 공히 200원(편도)이다. 운행은 새벽 5시~밤 10시. 주민들과 함께 일어나고 잠든다. 한때 배삯을 300원으로 올렸다가 내렸다고 한다.

지난 4월 한 공중파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인 '1박 2일'에 아바이마을과 갯배가 소개되고부터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다. 갯배의 한 매표원은 "주말엔 하루 이용자가 6000여명, 연간 유료 이용객이 20만명에 이른다"며 스스로 놀라워 했다.

속초문화원 김인섭 사무국장은 "아바이마을은 6·25때 돌아가지 못한 함경도 실향민들이 모여 삶터를 이룬 곳"이라며 "변화가 있긴 하지만 갯배와 아바이마을, 아바이(오징어)순대는 가장 사랑받는 속초의 관광자원"이라고 설명했다.

10여년 전 방영된 TV드라마 '가을동화'의 은서네집 '동네슈퍼'가 지금도 그대로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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