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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세상이야기-그 곳에도 삶이 있다 <7> 불가사리에 대한 오해

불가사의한 불가사리… 바다의 해적이냐, 바다의 청소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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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연안에 서식하는 빨강불가사리(왼쪽), 젤라틴 형태의 반투명 위장을 노출하고 있는 불가사리.

- 바다생물 '생태계 포식자' 외래종 아무르불가사리뿐
- 희거나 누르스름한 몸체, 길이 40㎝ 달해 혐오스러워
- UN·국제해양기구 유해생물 포함

- 토속종 별·거미·빨강 불가사리 움직임 느리고 팔 짧거나 가늘어 생물 사냥할 능력 안돼
- 죽은 물고기·부패한 조개류 먹어 바다 밑 바닥 부영양화 되레 방지
- 산란철 불가사리 소탕작전…이로운 종만 잡아내는 실수

닥치는 대로 철을 먹어대던 전설의 괴물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무시무시한 괴물에게 절대 죽일 수 없다는 의미로 불가사리(不可殺伊)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바닷속에도 죽일 수 없는 괴물이 있다. 전설 속의 괴물이 쇠붙이를 먹어치웠다면 바다 괴물은 어패류 등 수산자원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불가사리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바다에서 없어져야 할 나쁜 종족으로 몰아갔다. 그런데 불가사리가 인류뿐 아니라 바다 생태계에 백해무익하기만 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니다'.


■부영양화 막아주는 순기능도 담당

고둥을 포식하고 있는 아무르불가사리.
불가사리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불가사리가 가지는 극피동물의 강력한 재생력 때문이다. 만약 팔이나 신체 일부가 잘리면 원래 몸에는 새로운 팔이 생겨나고 잘려나간 팔은 또 하나의 독립된 개체가 된다. 한 마리가 두 마리로 늘어나는 셈이다.

세계적으로 1800여 종, 국내에 100여 종이 서식하고 있는 불가사리 중 우리나라 해역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토착종인 별불가사리, 외래종인 아무르불가사리, 바다의 지렁이라 불리는 거미불가사리와 제주 연안에서 발견되는 빨강불가사리 등 네 종류이다. 이 중 해양 생물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먹어 어민들의 시름을 깊게 만드는 종은 아무르불가사리 한 종에 불과하다. 나머지 종은 죽은 해양생물의 사체나 각종 유기물을 먹어치워 바다의 부영양화를 막아주는 순기능도 담당한다.


■부패한 오염원을 청소하는 불가사리들

부패하기 시작한 어류를 포식하고 있는 별불가사리.
별불가사리는 토속종이다. 윗면에는 파란색에 붉은 점이 있고 배 쪽은 주황색을 띤다. 별불가사리가 조개류를 전혀 잡아먹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르불가사리에 비해 움직임이 느려 이들보다 빠르게 도망치는 전복 등의 복족류를 따라잡지 못한다. 고착생활을 하는 진주조개 등의 이매패류나 멍게 등의 피낭동물을 충분히 감싸 안을 만큼 팔이 길지도 못하다.

결국 포식할 수 있는 먹잇감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어 죽은 물고기나 병들어 부패된 조개류 등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별불가사리의 이러한 식습성은 바다의 부영양화를 막아주는 순기능으로 작용한다. 바다 밑바닥에 물고기가 죽어 썩어간다면 바닷물이 오염되겠지만 별불가사리가 오염원을 먹어치워 준다면 바닷물의 오염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닷속을 다니다 별불가사리가 모여 있는 곳을 들추어보면 대부분의 경우 그 아래에는 죽어서 부패하기 시작한 바다생물의 사체가 놓여 있다. 또한 바닷속으로 유입된 육상 오염물질도 별불가사리에게는 훌륭한 먹잇감이 된다.

바위틈을 들추자 도망가고 있는 거미불가사리.
이와 같이 바다환경에 어느 정도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별불가사리가 불가사리 구제라는 명분으로 무차별 죽음을 당하고 있다. 물론 별불가사리도 바다에서 잡아내야 할 대상이긴 하지만 아무르불가사리만큼 심각할 정도로 피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별불가사리가 무차별적으로 포획되고 있는 것은 불가사리는 모두가 나쁜 종이라는 오해에다 잡아내는 시점이 잘못된 탓이 크다. 일반적으로 불가사리 구제작업은 불가사리의 산란기인 봄에서 여름에 이르는 시기에 이루어진다. 하지만 수온이 따뜻해지는 이 무렵은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아무르불가사리들이 수온이 낮은 곳을 찾아 연안을 벗어나 깊은 바다로 이동한 후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여름을 보낸 후 수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늦가을이 되서야 연안으로 기어들어온다. 결국 불가사리를 잡는다고 산란철에 맞춰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별불가사리들만 만나게 되는 셈이다.

거미불가사리와 빨강불가사리류는 전적으로 해양 환경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는 불가사리라 할 만하다. 제주도 해양수산자원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이들은 조개류를 전혀 공격하지 않고 물속에서 부패한 고기와 유기물만을 먹이로 섭취한다고 한다. 거미불가사리의 경우 팔이 거미의 다리처럼 가늘고 길어 붙여진 이름인데 야행성으로 주로 낮 동안에는 바위 밑에서 밤이 오기를 기다린다. 가늘고 긴 팔로는 도저히 살아 있는 생물을 공격할 수가 없기에 부패한 고기와 유기물만을 섭취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이러한 식습성은 중금속으로 오염된 토양을 옥토로 만드는 땅속의 지렁이에 비유될 정도다.


■외래종 아무르는 생태계 파괴꾼

아무르불가사리 몸에서 새 팔이 재생되고 있는 장면.
외래종인 아무르불가사리는 캄차카와 홋카이도 등 추운 지역에서 건너온 종이다. '아무르'라는 이름은 아무르강(중국 흑룡강의 러시아 말) 주변 지역이 이들의 고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르불가사리를 물속에서 보면 소름 끼칠 정도의 크기(큰 놈은 길이가 40㎝에 이르는데 물속에서는 빛의 굴절로 실제보다 25% 정도 크게 보인다)에다 희거나 누르스름한 몸체 위에 나 있는 얼룩덜룩한 푸른 점 무늬가 상당히 혐오스럽다. 또 까칠하고 딱딱한 몸체는 건드리기 거북할 정도이다.

통발을 향해 기어가고 있는 아무르불가사리(왼쪽), 아무르불가사리가 미더덕을 포식하고 있는 모습.
이들은 이동할 때 안테나를 세우듯 몸의 중심부에서 뻗어나간 다섯 개의 팔을 위로 들어 올려 끝에 있는 안점(眼點)으로 주변을 살핀다. 안점은 사물을 분간할 정도의 충분한 시력을 갖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시각적 정보를 수집할 수는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가사리는 안점으로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먹이가 있는 방향으로 기어가기 시작한다. 일단 먹잇감에 다다르면 다섯 개의 팔로 조개를 감싼 후 팔 밑에 무수히 붙어 있는 관족으로 압박을 가한다. 이때 조개가 틈을 조금이라도 벌리면 불가사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반투명한 젤라틴 형태의 위장을 뒤집은 채 틈새로 밀어 넣는다. 패각 속으로 스멀스멀 침투해 들어간 위장은 소화효소를 뿜어 조갯살을 녹여 흡수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개는 빈껍데기만 남는다.

불가사리의 팔 끝에 위치한 안점.
무차별적 포식자인 아무르불가사리 떼가 지나간 곳에는 살아남은 조개가 없을 정도여서 말 그대로 싹 쓸고 지나간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실험 결과에 의하면 성숙한 아무르불가사리 한 마리가 하루 동안에 멍게 4개, 전복 2개, 홍합 10개를 거뜬히 먹어치운다고 한다. 바닷속에서 몸이 불룩하게 솟아 있는 아무르불가사리를 뒤집어 보면 조개를 움켜쥔 채 위장을 밖으로 내민 모습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아무르불가사리가 우리나라 연안뿐 아니라 전 세계로 급속도로 퍼지게 된 것은 선박의 이동에 기인한다. 선박은 자체 무게 중심을 맞추기 위해 하물을 내리는 항구에서는 바닷물을 채우고, 하물을 싣는 항구에서는 바닷물을 버리기를 반복한다. 이때 바닷물과 함께 선박으로 들어온 아무르불가사리 유생들이 배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특히 이들은 플랑크톤 상태로 이곳저곳을 떠다니다가 자기가 살기에 적합한 곳에 이르러서야 변태를 시작한다. 성체가 된 후 사는 곳이 마땅치 않으면 몸에 공기를 채워 부력을 확보한 후 조류를 타고 장거리를 옮겨 다니기까지 한다.

UN과 국제해양기구에서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 시 생태계 파괴가 심각하게 우려되는 유해 생물 10종을 지정했는데 그 중에 적조, 콜레라 등과 함께 아무르불가사리가 포함됐다.


# 불가사리 퇴비 이어 건강식품 만든다면

스쿠버다이버와 해녀들이 수거한 불가사리를 살펴보면 대부분 별불가사리이다.
불가사리로 인한 어민들의 피해가 늘어나자 불가사리의 약용화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수거된 불가사리들의 대부분은 땅 위에서 말린 다음 농작물 비료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채산성 때문에 비료로 사용하기 위해 불가사리를 잡아내지는 않는다. '몸에 좋다면 개똥도 귀해진다'는 말이 있듯이 불가사리가 약용으로 개발돼 부가가치가 높아진다면 불가사리 구제는 자연스레 이뤄질 법도 하다.

현재 국내외 연구진에 의해 불가사리의 약용화에 대해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 경우만 해도 1994년부터 2003년까지 특허청에 신청된 해양천연물 분야 국내 특허 출원 52건 중 불가사리에서 추출해낸 물질에 대한 의약소재 출원이 7건으로 단일 종으로는 최다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추출물은 혈전치료제, 칼슘제, 고지혈치료제, 항생제, 항알레르기제, 면역증강제 등 다양한 용도의 신약개발로 연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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