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께 0.3㎜ 안팎의 피, 지름 1㎝의 '고기 속'… 흔한 만두국과 달라
- 시원한 국물 덕에 술꾼 해장에도 인기

- 중국음식 '훈툰' 유래
- '원조 18번완당' 창업자, 일본에서 기술배워 와
- 1947년 포장마차 이어 부용동 개업 후 유명

- 부산 남포동 등 완당집 열 곳 안돼… 여행객 별미 코스로


'후루룩'. 한 그릇 뚝딱이다. 성질 급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완당 한 그릇 먹는 데 5분이면 족하다. 그만큼 완당은 별로 씹지 않아도 '꿀꺽'하며 넘기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는 음식이다. 진하고 구수하면서도 따뜻한 육수 국물에 야들야들한 밀가루 피에다 그 속의 잘 익은 고기가 어우러져 입 안을 행복하게 해주다가 어느새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완당. 전국 어디를 가도 쉽게 맛 볼 수 없는 '부산의 맛'이다. 물론 아직도 완당 맛을 보지 못한 부산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음식이 아니라는 의미다. 부산 사람들 가운데 완당 맛을 보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않은 이유는 완당을 취급하는 음식점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완당?"이라며 물음표를 던지는 이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더욱 완당이 '부산의 맛'으로 통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상적으로 흔히 먹는 식사가 아니라 좀더 특별한 의미의 음식, 즉 '별미'로 대우받고 있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만두국 같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흔히 먹는 만두국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완당의 그 황홀한 맛을 찾아 부산을 방문하는 전국의 식도락가들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부산이 아닌 곳에서는 완당을 먹기 힘들기 때문이다.


■두께 0.3㎜ 가로 세로 7.5㎝의 매력

얇고 보들보들한 밀가루 피와 그 안에 자리잡은 다진 고기가 시원한 육수와 어우러진 완당은 보통 만두국과는 확연히 다른 '부산의 별미'다. 숙취해소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어 더욱 인기가 높다.

완당이라는 음식에 대한 이해부터 하는 것이 순서인 듯하다. 완당은 대접에 담아 내는 완성된 요리를 말하기도 하고 '작은 만두'처럼 생긴 밀가루와 고기의 결합체를 뜻하기도 한다.

먼저 완성된 요리로서의 완당부터 살펴보자. 육수에 간장과 파를 넣고, 따로 삶은 '완당' 건더기를 담은 후 당근 쑥갓 어묵 장육 쑥갓 등의 고명을 가미한다. 멸치와 다시마 닭목 등을 주재료로 한 육수는 오랜 시간 우려낸 것이지만 멸치나 계육 특유의 냄새는 제거된 상태다. 국물이 시원한데다 얇고 보들보들한 건더기 '완당'까지 부드럽기 이를 데 없어 굳이 씹는 작업을 필요로 하지 않고 쉽게 넘어간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부산의 술꾼들은 완당을 숙취해소에 더없이 좋은 해장 음식으로 치고 있기도 하다.

부산 서구 부용동 '원조 18번완당' 집에서 만난 장길영(71) 씨는 "술 마신 다음날 아침 완당 한 그릇 먹으면 언제 술을 마셨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과 뱃속이 함께 맑아진다"며 "이 집의 수십년 단골이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완성된 요리로서의 완당은 얼핏 보면 만두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만두국은 끓는 물에 만두와 여러가지 야채를 함께 넣어 다시 끓여 내는 것이지만 완당은 육수와 건더기 고명을 따로 준비한 후 한 그릇에 담아내기 때문에 요리법부터 다르다. 무엇보다 큰 차이점은 바로 요리의 핵심인 완당과 만두의 차이다. 만두의 경우 밀가루 피가 1~2㎜가량이고 자연히 '속'의 크기도 3~6㎝로 크다. 한두 개만 먹어도 속이 든든해진다. '속'의 재료도 돼지고기 등의 육류의 비율과 여러 가지 종류의 야채 당면 등의 비율이 엇비슷하다.

반면 완당은 두께 0.3㎜ 안팎의 아주 얇은 밀가루 피를 사용한다. 밀가루의 텁텁함을 최소화함으로써 먹을 때 야들야들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비결이다. 또 밀가루 피의 크기도 가로 세로 7.5㎝ 정도인데 반해 '속'은 평균 지름 1㎝ 정도로 만두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 부담이 덜하다. 야채는 거의 쓰지 않고 돼지고기나 닭고기 다진 것에 양념을 해서 사용한다.


■중국에서 일본 거쳐 부산 상륙

완당의 유래는 원래 중국이다. 만두가 중국에서 유래된 것과 마찬가지다. 중국에서는 흔히 아침식사로 애용되며 일반적으로 '훈툰'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지역과 나라에 따라서 명칭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중국의 남쪽 지방, 특히 광동이나 홍콩에서는 '완탐'이라고 하고, 일본 오사카 쪽에 가면 '완탕멘'이라고 불리는데 부산에서 완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본식 호칭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부산에 최초로 완당 맛을 퍼뜨린 이는 부산 서구 부용동의 '원조 18번완당' 창업자이기도 한 고 이은출(1913년 생) 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이 씨는 3·1 만세운동 직후 양친을 모두 여의고 13세 때이던 1920년대 중반 일본으로 건너갔다. 완당을 만들던 식당에서 일하며 밤에는 공업학교에서 공부를 한 이 씨는 학교 졸업 후 일본 전기회사에 취업했다가 1945년 해방이 되자 조국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꿈꾸며 귀국선을 탔다. 혼란스럽던 해방 정국 속에서 이 씨는 부산에서 서너 가지 사업을 벌여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자 마침내 1947년 일본 식당에서 배운 완당 요리 솜씨를 무기로 중구 보수동 검은다리(현 흑교) 부근에서 포장마차를 개업했다. 부산 완당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6·25전쟁을 겪으며 몇 차례 부침을 거듭했던 이 씨는 1956년 서구 부용동의 당시 전차역 인근에 '18번완당'이라는 상호로 정식 완당집을 개업했다. 이런 연유로 지금까지 완당이라고 하면 '18번완당'이라고 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 것이다.

이 씨는 도시계획에 따른 도로 확장 등의 시대적 조류에 따라 전철역 주변에서 1972년 현재의 위치인 부산 서구 부용동 1가 69번지로 이사했다. 그는 지난 1981년 작고했지만 장남 이용웅(71) 씨와 손자 이상준(33) 씨가 3대에 걸쳐 맥을 이어가며 같은 자리에서 부산 완당의 자존심을 지켜내고 있다.

한편 '원조 18번완당' 외에 부산에는 중구 남포동과 수영구 남천동, 해운대구 반송동 등에 완당집이 있는데 모두 합쳐도 10곳도 안 된다. 6·25전쟁 전후에는 포장마차에서 맘편히 먹던 서민들의 음식이었던 완당이지만 이제는 흔히 접하기 힘든 '귀한 음식'이 된 것이다.

이런 까닭에 부산을 찾는 외지 여행객들로부터도 완당은 '부산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으로 통한다. 원조18번 완당집에서 친구 두 명과 함께 완당과 발국수(메밀국수)를 곁들여 먹던 조해련(32) 씨는 "대전에서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인터넷 검색을 하니 '부산에 가거든 완당을 꼭 먹어보라'는 추천을 보고 찾아왔는데 정말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에 감탄했다"며 "곰장어나 고래고기 밀면 등에 못지 않은 부산의 별미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 '원조 18번완당' 이용웅 대표

- 3대 잇는 장인정신, 50년 경력의 주방장이 나의 든든한 자존심

'원조 18번완당' 최맹호 주방장. 그는 1분에 70개를 빚는 '완당의 달인'이다.

부산 완당의 명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부산 서구 부용동 '원조 18번완당' 집의 이용웅(71) 대표는 자존심이 강하다. 대한민국에 완당을 들여온 원조 격인 부친 이은출 씨의 고단했지만 옹골찼던 삶의 흔적을 가업으로 물려받아 자신의 아들 대에까지 3대째 잇고 있다는 '장인정신', 그것이 바로 그가 갖고 있는 자존심의 실체다.

현 동아대 부민캠퍼스(옛 부산지방법원)와 부민초등학교 사이 골목에서 도로 하나를 건너 중부산등기소 쪽으로 10m쯤 가면 도착하는 '원조 18번 완당집'. 이곳에서 점심 시간 만난 이 씨는 점원들과 함께 음식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직 건강한데 열심히 도와야지"라며 바쁜 시간을 보내던 이 씨는 오후 2시께가 돼서야 겨우 한숨 돌리며 완당의 역사와 맛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는 1988년 창업주인 부친이 작고한 후 7년 동안 어머니 박필희(91) 씨가 혼자 가게를 맡아오던 것을 못내 안타까워하다가 서울의 국영기업체 고위 간부 자리를 미련없이 버리고 가업을 잇기 시작했다. 이 씨는 "처음에는 아버지만큼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많이 했는데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어느새 22년이 지났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서울의 명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장남 상준(33) 씨가 3대째 가업을 잇기 위해 함께 일하고 있어서 든든하다.

전통적인 방식의 수제 완당 제조법을 고수하고 있긴 하지만 너무 많은 손님이 몰려드는 바람에 할 수 없이 2000년 이후 완당 피 기계를 도입했다. 사람이 손으로 반죽하고 빚어서 0.3㎜의 밀가루 피를 만들기에는 뛰어난 요리사 1~2명의 능력 한계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육수 제조와 완당 삶기 등은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이런 그에게 50년 경력의 주방장 최맹호(64) 씨는 든든한 우군이자 동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