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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 리포트 <3-5> 산복도로에 살다

그림·사진 예술로 승화된 산복도로

`산복도로의 오늘`을 기록하는 세밀하고 날카로운 관찰자들

  • 배재한 기자 myway@kookje.co.kr
  •  |   입력 : 2010-02-22 20:41:04
  •  |   본지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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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허리로 빽빽이 들어선 집과 도로, 그리고 그 집들을 연결하는 골목길.

산동네를 가로지르며 난 산복도로는 부산의 역사가 만들어낸 풍경이요, 서민들의 고단한 삶이 녹아있는 공간이다. 부산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부산의 산동네. 산복도로가 빚어낸 그 독특한 풍경과 역사성은 눈맑은 예술인들에 의해 시 소설 영화 미술 사진 등 다양한 예술장르의 소재로 등장한다.

작가들은 산복도로에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불어넣는다. 문화와 예술로 다시 태어난 산동네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공간이 된다.


■ 화가, 가장 아름다운 골목을 그리다

- 수정산 산복도로 골목길과 사람들 화폭에 그려내는 서양화가 김형대 씨
- 전통한지와 흙 이용…독특한 분위기 풍겨

   
골목을 그린 작품 앞에 선 서양화가 김형대 씨.
서양화가 김형대(45) 씨는 민중과 서민의 삶을 주제로 20여년 그림을 그렸다. 김 화가가 가장 매력을 느끼는 소재가 바로 산복도로 골목길이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에 대한 관심은 그가 살고 있는 고장의 가장 후미진 공간이자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도시의 뒷골목'으로 이어진 것이다.

수정산 산복도로는 바로 김 화가의 작품 무대. 그는 틈만 나면 수정산 산복도로로 숨어든다.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진 산복도로 골목길을 명상하듯이 걷고 또 걷는다. 산복도로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쉼없이 오르내리면서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우리 이웃을 만나고 대화한다. 그리고 골목길의 체취를 온몸으로 느낀다.

그의 '골목길 만행'에는 어김없이 스케치북과 연필, 카메라가 동행한다. "화폭에 담을 대상을 찾게 되면 먼저 영상으로 카메라에 담습니다. 곧바로 스케치에 들어가죠. 그런 다음 작업실로 돌아와 눈과 마음에 남아있는 기억과 카메라의 영상을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산복도로 골목길은 그의 화폭에서 '예술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김형대씨의 작품. 곽재훈 김동하 기자
그가 산복도로 골목길을 화폭에 표현하는 형식과 재질도 특이하다. 세 번 접은 세 겹의 전통한지(일명 삼합지)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집 뒷산의 황토를 곱게 걸러 만든 천연 물감으로 캔버스에 덧바르는 형식이다. 흙이 주는 독특한 질감과 편안한 느낌이 서민공간인 골목길과 조화를 이룬다.

그렇다면 그는 왜 수많은 작품의 소재를 다 제쳐놓고 산복도로 골목길에 주목하게 됐을까. "대학시절부터 민중미술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민중미술은 결국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이 땅에 어렵고 고통받는 낮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재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장 가난하면서도 사람 살아가는 소리가 나는' 산복도로 골목길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회화적으로 봐도 산복도로 골목길은 더없이 아름답고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은 탐나는 공간입니다."

그의 작품은 가난하지만 사람냄새가 질펀한 골목길에 희망과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 대부분이다. 가난한 부부가 어깨를 감싸 안고 가파른 골목길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 어두운 밤 골목길을 환히 밝히는 가로등 불빛, 골목길 낮은 담장 너머로 손을 내민 나뭇가지에서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꽃망울…. 산복도로 밤풍경도 그의 단골 작품 소재다. 밤풍경에는 서민들의 또다른 애환과 사연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밤을 밝힌 부산항, 바다 멀리 반짝이는 오징어잡이 배들의 집어등. 부산항의 야경과 오징어 배들의 불빛은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삶의 현장입니다. 치열한 삶의 현장을 화폭에 담기 위해 산복도로 밤풍경을 자주 찾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그린 산복도로 골목길 작품은 300점이 훨씬 넘는다. 지난해 10월 이들 작품을 모아 '골목길 이야기'라는 전시회를 가졌다. 20년을 한결같이 산복도로 골목길만 그린 '산복도로 골목길 화가' 김형대 씨. 그는 자신의 작품 소재지인 산복도로에 창작공간을 열고 싶어한다. 산복도로 골목길의 주인공인 산동네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산복도로 그림을, 예술을 나누고 싶어한다. 그의 간절한 바람은 언제쯤 실현될까.


■ 카메라에 담는 산복도로 풍경과 기억

- 산복도로 토박이 사진작가 화덕헌 씨
- 40㎏짜리 장비 들고 골목길 걸어다니며 날 것 그대로의 풍경 렌즈에 담아내

   
지난 18일 부산 동구 수정아파트 근처에서 산복도로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진작가 화덕헌 씨.
사진작가 화덕헌(46) 씨는 산복도로를 역사의 한 장면으로 되살리는 작업을 한다. 어쩌면 산복도로의 풍경과 기억까지도 카메라로 담고 또 담는다. 도시경관 변화에 관심이 많은 그가 산복도로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2008년 11월부터다. 그는 유년기를 산복도로와 인접한 서구 부민동에서 보냈다. 산복도로에 자리 잡은 부산고를 다녔으니 어쩌면 산복도로와 그의 인연은 오래되고 질기다. "원도심 주거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촬영하다 불현듯 산복도로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산복도로라는 피사체를 찾아 답사여행을 다녔죠. 하루 촬영에 나서면 100, 200장씩 1년 가까이 산복도로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가 카메라에 담는 산복도로 사진은 여느 사진과 사뭇 다르다. 처음부터 기록을 목적으로 하는 다큐에 관심이 있다보니 필름 판형도 8×10인치다. 취미로 8×10인치 필름 판형으로 찍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은 더러 있지만 본격적으로 촬영하는 작가는 그가 유일하다. 8×10인치 필름 판형으로 찍은 사진이 완성되면 500, 600m 떨어진 골목길의 문패 글자까지 선명하게 나타날 정도다. 한 장 스캔하는데 비용만도 자그마치 40만 원. 카메라도 독특하다. 마호가니 소재로 만들어진 아코디언 형태의 대형 '디오도프 카메라'다. 1920년대 만들어진 제품으로 요즘 이런 카메라는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이 대형 카메라와 렌즈, 필름, 사다리 등 장비 무게만 40㎏이 넘는다. "장비가 아무리 무거워도 걷는 것을 철칙으로 합니다.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 뷰 포인트를 다 놓치게 됩니다. 버스만 타도 포인트를 지나치기 일쑤여서 무작정 걸어다니는 것이 최고입니다." 헌팅(촬영을 위한 사전 답사를 이렇게 표현했다)을 나갈 때 동영상 기능이 있는 카메라로 촬영 포인트와 조망을 먼저 담은 뒤 촬영장비를 챙겨 다시 찾기를 반복했다. 살아 있는 현장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동구청 옥상, 좌천동 두산위브아파트 옥상, 냉동창고 옥상, 동의대 기숙사 옥상 등 산복도로의 건물 가운데 올라가 보지 않은 곳이 없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사진찍기를 좋아했다. 대학 전공(교육학)과는 무관하게 취미를 직업 삼아 사진관을 열었다. 그것도 잠시, 사진찍기에 몰두하기 위해 '밥벌이'가 되지 않던 사진관의 셔터를 내리고 본격적으로 산복도로를 담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4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산복도로 사진전'을 열었다.

그는 산복도로를 미화하지도, 비판하지도 않는다. 그저 산복도로가 좋아 카메라 장비를 둘러메고 그 풍경과 서민들의 삶을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을 뿐이다.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를 산복도로의 풍경과 기억을 누군가는 광학적 리얼리즘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입니다. 내가 찍은 산복도로의 어제와 오늘이 산복도로의 밝은 내일을 여는 소중한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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