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복도로 조성 후 일대 난개발 막기 위한 고도제한의 산물…1978년 처음 선보여
- 이웃 조망권 확보에 옥상 활용 주차난 해소
- 부산항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 역할까지
- 차는 늘어나는데 주차공간 턱없이 부족
- 산복도로 품은 지자체 공영주차장 등 계획중
부산 동구 병곡교차로에서 시작되는 산복도로 망양로. 수정산 산복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건물 옥상에 버티고 있는 차량들을 볼 수 있다. 낡고 나즈막한 단층 또는 2층 집 위에 차가 몇대식 올려져 있는 낯선 모습. 부산은 물론 국내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옥상 주차장이다. 하늘과 맞닿아 부산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하늘 주차장'은 산복도로에서만 볼 수 있는 대표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옥상 공간의 재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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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동구 초량동 망양로 산복도로를 따라
옥상 공간을 활용한 '하늘 주차장'이 늘어서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
하늘 주차장이 많이 설치된 지역은 산복도로 망양로를 따라 이어진 ▷동구 수정동 초량동 ▷중구 영주동 보수동 대청동 ▷서구 동대신동과 서구 남부민동 해돋이길 등이다.
산복도로 하늘 주차장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그 과정을 알게 되면 하늘 주차장이 단순한 주차장이 아니라 산복도로 아이콘으로 손색이 없다는 사실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부산에 산복도로가 들어선 것은 1964년 건설된 수정산 산복도로가 처음이다. 산허리에 도로가 나면서 산동네는 산복도로 아래쪽과 위쪽로 갈렸다. 때마침 재개발 바람이 일면서 낡은 판잣집을 개·보수하려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이를 그냥 뒀다가는 조망권 침해 등 난개발이 불을 보듯 뻔했다. 부산시는 1972년 산복도로 아래쪽 주민들이 집을 새로 짓거나 증·개축하더라도 건물의 최고 고도를 산복도로 노면 이하로 제한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당시 건설부는 같은 해 8월 장관 고시로 '산복도로 아래쪽 주택의 최고 고도는 산복도로 노면 이하로 한다'는 도시계획시설 결정을 하게 된다. 하늘 주차장은 산복도로 고도제한의 산물이다.
하늘 주차장은 주차난 해결과 옥상 공간 활용, 이웃집의 조망을 가리지 않는다는 산동네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 등 삶의 지혜가 물씬 묻어나는 풍경이다. 단지 법정 주차 면수를 확보하거나 영업을 목적으로 엘리베이트 시스템을 갖춘 빌딩·대형 마트의 옥상 주차장과는 출발부터 다르다.
그렇다면 하늘 주차장은 언제 처음 등장했을까. 본지 취재팀의 취재 결과 부산 동구 초량6동 산복도로에서 선화석유점을 운영하고 있는 나상균(64) 씨가 1978년 최초로 만들었다는 것이 확인됐다. 나 씨 집에서 부산컴퓨터과학고(옛 선화여상)까지 12곳의 하늘 주차장이 맞닿아 있는데, 이들은 모두 나 씨 주차장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곳에서 하늘 주차장인 영광주차장을 소유한 조영래(71) 씨는 "군에서 장교로 전역한 뒤 소일거리 삼아 만들었다"면서 "다른 도시에서 놀러온 사람들이 차량을 주차해 놓고 부산항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산복도로 주차난 해법은 없는가
산복도로 주민들은 접근성과 함께 주차난을 가장 큰 불편 사항으로 꼽고 있다. 부산 동구 초량6동 산복도로에서 43년째 살고 있는 강영환 시인은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공영주차장에 월 5만 원씩 주고 차를 주차하고 있다"면서 "차는 늘고 있는데 공영주차장 시설은 턱없이 부족해 산동네 주민들의 불편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산복도로 주변과 골목길은 불법 주차 차량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밤낮이 따로 없이 주차 전쟁이 벌어진다. 김인철(49·부산 중구 대청동) 씨는 "주차 공간이 없어 도로 한 쪽에 주차할 수밖에 없는데 하루 밤 사이에 두 차례나 주차 단속을 당한 경험도 많다"며 주차 불편을 호소했다.
산동네 주민들의 주차난을 덜어줄 해법은 없을까.
부산시와 동구는 초량동 부산컴퓨터과학고 인근 485㎡ 부지에 차량 2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과 쌈지공원 전망대 등을 갖춘 '스카이웨이 주차장'을 올해 건설할 계획이다. 중구는 대청동4가 덕원학원 소유 1032㎡ 부지에 차량 50대 규모 주차장과 전망대를 갖춘 '스카이웨이 주차장'을 만든다.
현재 동구와 중구, 서구 등이 산복도로 주차난을 덜기 위해 도입한 노상 주차제, 차도와 함께 보도의 일부를 활용하는 일명 '개구리 주차'는 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노상 주차장과 개구리 주차는 평일의 경우 밤 9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운영한다. 노상 주차장제와 개구리 주차제는 그나마 주차난 해소에 도움이 되고 있다.
김형균 부산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복도로는 기본적으로 대중교통이 부족하다. 게다가 산복도로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차량이 더없이 필요하다. 이들의 주차 불편 해결을 위해 이제 행정이 답을 내놔야 할 차례"라고 지적했다.
◇ 산복도로 '하늘주차장' 주인들을 만나다
# 중구 대청동 김영천 씨 - "내가 중구 최초 … 한땐 전국 명물"
부산 중구 대청동 산복도로에서 1992년 중구지역 최초로 하늘 주차장을 시작한 김영천(75·사진) 씨.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자가용 보급이 늘었지요. 우선 제 차의 주차 공간 확보를 겸해 2층 양옥을 신축하면서 승용차 5대를 주차할 수 있는 옥상을 만들었죠. 중구에서 처음이었습니다. 차량의 무게를 고려해 튼튼한 기둥을 만드느라 철근을 무려 15t이나 사용했습니다."
김 씨는 "전국적인 명물이었어요. 당시 변종길 부산 중구청장이 우리 집을 찾아오기도 했습니다"라고 소개했다. 김 씨의 하늘 주차장 설치를 계기로 대청동과 인근 영주동, 서구 동대신동 등지에도 산복도로 변에 하늘 주차장 설치 붐이 일었다. 하늘 주차장을 설치하려는 사람들이 김 씨를 찾아 도움을 청하는 일도 많았다.
58년째 산복도로에서 살고 있는 김 씨는 석유가게를 하면서 번 돈으로 하늘 주차장을 설치했다. 그는 "주차 수입으로 노후를 대비할 생각이었지만 요즘은 월 20만 원도 안 된다"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주차 수요가 넘치면서 차량 한 대의 월주차 요금이 10만 원을 넘기도 했다. 그러나 젊은 층이 차츰 산복도로를 떠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요즘은 월주차 요금이 4만~5만 원선이지만 오히려 주차장이 비는 날이 많다. 하늘 주차장의 인기도 그만큼 떨어진 것이다.
# 정비업소 겸한 윤영식 씨 - "이젠 고도제한 좀 풀렸으면…"
부산 중구 대청동 산복도로 하늘 주차장에서 차량 타이어 교체·수리업소인 '대청카타이어'를 운영하는 윤영식(57·사진) 씨. 옥상을 빈터로 남겨두거나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것을 뛰어넘어 공간 활용이 돋보이는 대표적 사례다.
"고도제한에 걸려 산복도로 높이 이상으로 건물을 올릴 수 없으니 1995년 3층 건물을 신축하면서 6대 규모의 옥상 주차장을 만든 것입니다. 제가 차량 정비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듬 해 경정비 허가를 받아 건물 옥상에서 차량 정비를 시작한 것입니다."
하늘 주차장을 겸한 타이어 교환 전문 정비업소이다 보니 눈에 잘 띄고 입소문도 쉽게 났다. 물론 윤 씨의 기술력과 고객 관리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이 업소는 산복도로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정비업소로 통한다.
이 하늘 주차장은 그의 아버지 윤순재(83) 씨의 아이디어다. 평안남도 안주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4후퇴 때 월남해 이곳 산복도로에 정착했다. 악착같이 돈을 모아 집터를 사고 3층 양옥을 지었다. 그는 "고도제한으로 더 높이 올리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쉽다"면서 "산복도로에 접한 토지나 건물 소유자들이 재산권 침해로 손해가 큰 만큼 고도제한이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