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사이를 비집고 수십년 동안 사람의 삶을 이어주는 도로가 있다. 산허리를 두른 길, 산복도로. 산등성이 아래 병풍처럼 항구를 감싸고 있다. 부산의 동구 중구 서구 등 원도심 산등성이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그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대어 살아가는 큰 언덕이 산복도로인 것이다. 1910~1930년대 부두와 방직 노동자들이 산동네에 움막을 짓고 거주지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 산동네였다. 1945년 해방 이후 귀환동포, 1950년 한국전쟁의 피난민, 1960~1970년대 산업화 시절 갈 곳 없는 노동자들이 고단한 몸을 맡겼던 곳이 산동네였다. 이렇게 형성된 산동네를 따라 사람과 차량의 소통 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산복도로이다.
■부산의 원형질 산복도로
| |  |
| 부산 서구 남부민동 천마산 자락 산복도로에서 내려다 본 부산항. 멀리 영도와 남항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산복도로란 '산허리를 베어 터를 내고 닦은 길'을 말한다. 대체로 해발 70m 이상에 개설된 2㎞ 이상의 도로를 말하는데, 일단 산중턱까지 올라가서 산 주름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이다.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는 산복도로. 그러나 부산의 진면목을 보려고 한다면 산복도로에 올라가 부산을 둘러봐야 한다.
산복도로는 1962년 동구 초량동 초량입구~중구 영주동 메리놀병원 구간에 첫 착공돼 2년 후인 1964년에 '수정산복도로'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개설됐다. 올해로 산복도로 개설 46년을 맞게 된다.
"산복도로는 식민과 전쟁의 아픔, 산업화에 따른 도시확장과 쇠퇴 등 근현대사의 격랑을 오롯이 간직한 부산의 진수이다. 물론 몇몇 도시에서 산복도로를 찾을 수 있지만 부산만큼 그 길이가 길고 고개와 고개, 마을과 마을, 생산의 공간과 생활의 공간을 이어주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산복도로는 부산다움을 가장 많이 간직한 부산의 원형질이다." 부산발전연구원 김형균 선임연구위원이 내린 부산의 산복도로 정의이다.
■디지털세상, '아날로그' 향수
| |  |
| 부산 중구 영주동 산복도로. 산복도로를 따라 늘어선 낮은 아파트와
주택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김성효 기자 |
1980, 1990년대 도시 팽창기를 넘어 부산의 도시개발의 중심축이 해운대 기장 강서 등으로 이동하면서 침체일로를 거듭한 산복도로. 성장과 발전이 유일 목표이자 지향점이었던 시대, 산복도로는 숨기고 싶은 공간이자 부끄러운 기억이었다. 산복도로의 존재나 산복도로에 의지해 일상을 살아가는 '산복도로 서민들의 삶'을 회피하고 싶은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산복도로는 이제 더이상 감추거나 외면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성장과 발전이 절대 선(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산복도로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 가장 부산다운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시가 성장하고 발전할수록 오늘의 도시를 만든 과거를 돌아보게 마련이다. 부산의 역사성에 새롭게 눈뜨게 된 것이다.
부산의 어제와 오늘이 살아 숨쉬는 부산만의 공간이자 부산의 풍경과 기억이 녹아 있는 산복도로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산복도로에는 부산의 영광과 환희, 아픔과 눈물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이 산복도로가 부산만의 특색있는 역사 자원이자 도심 관광자원으로 활용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으며, 전국 유일의 문화 경관적 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산복도로는 1950~1960년대로 가는 타임머신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여전히 변치 않는 그 시대의 삶을 살필 수 있는 공간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원도심 재창조 두 마리 토끼잡기
부산의 성장과 발전은 산 아래 평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산복도로가 있는 산동네의 삶은 낙후의 상징처럼 홀대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산복도로에 대한 부산시와 연구자 등 지역사회의 정책적 문화적 관심은 '산복도로 르네상스'의 시작일 수 있다. 이런 흐름은 산복도로가 더이상 단절과 낙후의 공간이 아니라 과거와 소통하고 부산의 미래와 함께 하기 위한 작지만 큰 걸음이다.
그렇다면 산복도로 르네상스의 초점은 어디에 맞춰야 할까.
부산시 김영식 투자개발기획팀장은 "산복도로 르네상스는 기존의 개발방식이 아닌 사회문화적 접근방법을 통해 산복도로에 뿌리를 박고 사는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접근성 주차 등 주민들의 불편을 개선하는 작지만 쉬운 일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현재의 지형을 잘 보존하면서 주민들이 보다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의 발전을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김 팀장은 또 "산복도로 르네상스를 통해 주민의 삶의 질 개선과 함께 날로 쇠퇴하는 원도심 재창조를 이뤄내야 할 것"이라는 정책적 방향성을 제시한다.
산복도로 르네상스는 주민의 삶의 질 개선과 원도심 재창조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게 될 것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이뤄내지 못하면 절반의 성공에 그치게 될 것이다.
■지역 자산 보존 마지막 기회
부산을 영화도시로 자리매김하는 데 한 획을 그은 영화는 '친구'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친구'의 촬영무대였던 부산 동구 범일동 골목길은 '친구의 길'로 명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 '친구'의 무대였던 '친구의 길'은 사라졌고 삼일극장은 헐려나갔다.
경성대 강동진(도시공학) 교수는 "부산을 부산답게 만드는 상징 장소와 건물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면서 "부산을 가장 부산답게 만드는 공간이자 부산의 자산인 산복도로에 대한 보존과 창조적 재생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산복도로 르네상스는 기존 재건축이나 재개발 방식의 접근과 시도가 아닌 새로운 도시관리의 철학과 도시개발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면서 "산복도로 르네상스가 시급하다고 해서 서두를 것이 아니라 명확한 목표와 방향성이 서지 않을 경우 우선 원형대로 보존하면서 기다려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급증과 난개발을 경계했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 총괄책임자 김형균 씨 인터뷰
- 도로 원형질 보존과 개발·재창조 묶어야
부산발전연구원 김형균 선임연구위원은 부산시와 부산발전연구원이 공동 추진하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이자 본지 신년기획 '산복도로 리포트'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30여 명의 연구자와 5억4000만 원의 예산 등이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의 기본 골격은 올 연말께 완성될 예정이다.
-왜 지금 산복도로에 주목하는가.
▶세계적으로 국내적으로, 부산에서도 개발의 한계에 봉착했다고 할 수 있다. 개발의 한계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부산다움을 찾다보니 가장 부산다운 상징 공간인 산복도로에 주목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부산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을 가장 아름다운 공간으로 변화시켜보자는 움직임이다. 도로가 가진 소통의 의미도 간과할 수 없다. 산복도로는 부산이 원조이며, 부산 전역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발달해 있다. 이곳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시민이 120만 명으로 부산 시민의 3분의 1에 달한다. 산동네나 낙후지역을 창조적으로 재생하는 데 성공한 국내외 사례도 많다. 이런 사례를 잘 활용하면 산복도로가 도시 발전을 위한 무한한 보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 서민적 공간이자 서민복지의 사각지대 아닌가.
▶그렇다. 산복도로 르네상스는 '서민의 재발견'이자 '부산의 재발견'일 수 있다. 산복도로는 근대화 과정에서 서민들의 주체적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서민들을 위한 '재생적 복지정책'을 펼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산복도로는 계층과 공간이 분명한 재생적 복지정책을 펼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갖췄다.
-특히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은.
▶산복도로 르네상스는 원형 보존과 개발 그리고 재창조라는 새로운 철학과 패러다임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테면 문학 미술 디자인 민속 등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문화적 접근도 산복도로 르네상스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또 '북항 재개발' 사업과 산복도로 르네상스를 연계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기대 효과는 .
▶부산의 스토리와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이다. 주민의 삶의 질 개선과 원도심 재창조는 물론 부산의 도시 자산을 하나 더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