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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해남군 대흥사에 있는 초의 스님 조상에 헌다하고 있는 부산의 차인들. 앞에 있는 비문의 '명선'은 추사의 글씨이다. 이경순 영광갤러리 관장 제공 |
조선 후기의 선차 문화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초의 의순(1786~1866)이다. 초의(草衣) 스님은 해남 대흥사에 주석하면서 직접 차를 만들었고 우리나라 역래의 가장 소중한 차 관련 문헌의 하나인 '다신전(茶神傳)'과 '동다송(東茶頌)'을 펴냈다.
'다신전'은 중국 청대의 모환문이 역대 다서를 엮어 모은 '만보전서'의 '다경채요'를 등초한 것이지만 원저는 명대의 장원의 '다록'이다. '다신전'의 발문에는 "총림에 혹 조주의 풍이 있으나 다들 다도를 잘 알지 못하기에…"라고 발행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 말에 의거하면 당시에도 다도의 진면목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는 셈이 된다.
'동다송'은 17연으로 구성된 차에 대한 송가이다. 그는 이 글에서 육우의 '다경', 소이의 '십육탕품', 범증민의 '돈재한람', 장원의 '다록', 모환문의 '만보전서', 이백·소동파·노동·나대경 등의 다시, 다산의 '걸명소' 등 많은 고대 다서들을 참고하여 차의 내력에서부터 차를 달여 마실 때의 정신적 경지에 이르기까지를 읊고 있는데 그 문장이 마치 반짝이는 보석 마냥 아름답다. 초의는 또 이 저술에서 "육안차는 맛이 좋고, 몽산차는 약효가 뛰어난데 동차(東茶)는 둘을 겸한다"고 하여 우리 차의 우수함을 언급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몽산차, 뢰소차 등의 유명한 차 이름을 거론한 시가 더러 있고, 시취 또한 매우 깊다. "선정에 깊이 들자 죽로가 식어/남은 불씨를 지피려 구리화로를 당기네"라고 읊은 시를 보면 그가 주로 하는 일이 선정과 음차인 것 같다. 또 다른 시 "새소리 들으려 저녁 예불도 쉬고/가벼이 노니는 옛 시내 언덕/…찻자리 파하고 고요한 물가에 앉으니/그윽한 심사 돌아갈 기약도 잊었네"를 보면 그의 본분사가 예불인지 찻일인지가 모호하다.
그가 지은 다섯 평 남짓한 차실 일지암(一枝庵)은 우리나라의 대표 차실로 인지되고 있다. 일지(一枝)는 원래 '장자'의 '소요유편'에 "박새가 깊은 숲속에 보금자리를 지으나 나뭇가지 하나에 불과하고, 수달이 강물을 많이 마셔도 자기 배를 채우는 데에 불과하다"는 곳에서 차인했으니 그가 이 차실을 지은 지취가 어디에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당시의 저명한 사대부 차인인 정약용이나 김정희, 홍현주 등에게도 선차의 영향을 끼치는 등 조선 후기의 선차문화의 핵심인물로 보기에 손색이 없다. 후일 그의 다맥은 대체로 세 갈래 쯤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으므로 구체적인 언급은 다른 기회로 미루는 것이 좋겠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당대 최고의 금석학자이자 글씨와 그림의 달인이었다. 일찍이 조선에서는 사귈 만한 친구가 없다하여 연경에 자주 가 주로 중국 석학들과 사귀었다. 그러나 그의 친구 동리 김경연의 주선으로 만난 동갑내기 시골뜨기 중 초의와는 필생의 지음(知音)이 되었고 10년 먼저 죽은 추사의 제문도 초의가 썼다.
당시의 객관적 조건으로 보면 이 두 사람은 친구가 되기에는 너무나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다. 초의는 전남 무안군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일찍이 불문에 출가한 사문의 몸이요, 추사는 충남 예산군 월성위의 권문세가 집안에서 태어난 유가의 총명재질이었다. 신분의 차이로 치면 동해와 서해의 거리쯤 되랴. 성격도 추사는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오만방자한 편이었고, 초의는 조금 어눌하고 주로 남의 말을 듣는 축이었다. 그러나 이런 성격 차이가 오히려 두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석 역할을 하였는지 오만불손한 추사도 초의에게만은 온갖 투정을 하고 어리광을 부렸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성격 탓 만이겠는가! 만약에 그들 사이에 차가 없었더라면 만남 자체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의 차인들 가운데에는 이들의 관계를 심지어 동성연애쯤으로 보는 이도 있을 정도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추사는 차만 떨어지면 편지로 초의를 을러댔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보시게, 일지암 토굴 민대머리. 부처님을 모시는 몸이 그토록 신통력이 없는가. 꼭 말을 해야 아시겠는가. '초의차' 떨어져 못 마시니 혓바늘이 돋고 정신이 멍해지느니. 그러니 차를 빨리 안 보내면 내 당장 말을 몰아가서 일지암 차밭을 모두 짓밟아버릴 터. 그러나 원망하지 마시게. '초의차'에 중독시킨 죄값은 응당 그대의 몫이러니…" 이 정도 친구 사이가 되려면 차 아니면 되겠는가.
동의대 철학·윤리문화학과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