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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이경순(사진가·영광갤러리 관장) |
일본의 차문화는 불교 선종(禪宗)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일본 차문화의 최초 기록은 승려 사이초(最澄)의 행적에 보이는데, 그는 서기 804년 중국 천태산에서 천태종의 불법을 학습하고, 805년 일본으로 귀국하면서 차씨를 가지고 가 일본의 히에이산(比叡山)에 심음으로써 일본 최초의 차밭인 히요시다원(日吉茶園)이 이루어지게 했다. 비슷한 시기인 815년에는 승려 구카이(空海)와 에이추(永忠)가 사가천황(嵯峨天皇)에게 차를 바쳤으며, 천황이 이 차로 긴끼(近畿) 지역에 황실 전용 다원을 만들도록 했다고 한다.
좀 뒤인 1191년 민난에이사이(明庵榮西)가 천태산(天台山) 만년사(萬年寺)에 주석하던 허암회창(虛庵懷敞)으로부터 선을 배우고 인가증명서를 얻어 귀국했다. 그는 귀국할 때 선법과 다법을 아울러 얻어 와 일본에서 그가 주석하던 가마꾸라(鎌倉)의 수복사(壽福寺)나 교토(京都)의 건인사(建仁寺) 주위에 차를 심고 이 차로 말차를 만들었다. 만년에 그는 일본에서 최초의 독립된 차서인 '끽다양생기(喫茶養生記)'를 지어 명실공히 일본의 다조(茶祖)가 되었다. 원래 이 책은 가마꾸라 막부의 3대 장군 미나모토노 사네토모(源實朝)가 병에 걸리자 지어 올린 것인데, 이 책을 보고 감명을 받은 사네토모가 차를 많이 마셔 병이 치료되자 에이사이는 일약 일본의 육우로까지 받들어졌다. 지금도 에이사이가 창건한 건인사에서는 매년 4월 20일 그의 탄신법요에서 헌다의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 초기의 차 전래자인 사이초나 구카이, 그리고 에이사이는 모두 스님들이며 세 사람 모두 절강성의 천태산으로부터 불법과 차를 받아 갔다는 점에서 일본차문화의 전래 역시 선종과의 인연에 기인하였다고 보겠다. 에이사이가 불법을 전수받은 허암회창은 선종 오가칠종 가운데 임제종(臨濟宗)의 일파인 황룡파(黃龍派)의 고승으로서 이 또한 강서(江西)의 마조도일(馬祖道一)과 백장회해(百丈懷海)의 맥을 이었다. 오늘날까지 행해지고 있는 에이사이의 탄신법요 의식에서는 4두목(頭目)과 8두목을 중심으로 행해지고 있는데 이는 '백장청규(百丈淸規)'의 법식에 근본을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끽다양생기' 자체는 차와 선의 결합이기 보다는 중국 고대의 의·약학에 관한 문헌에 가깝다.
일본의 차문화가 명확히 선차(禪茶)의 모습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대략 15세기 이후의 일이다. 15세기 말 8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가 교토의 동산(東山)에 은각사(銀閣寺)를 세움으로써 동산문화가 일어났는데 동산문화의 시대에는 관상(觀想)의 풍조가 생겨나 차를 마시는 것에서 정신적 사유를 구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선승 이큐 소쥰(一休宗純)이나 와비차의 시조인 무라다 쥬코(村田珠光) 등은 이 시대의 인물들이다.
일본 다도의 정신적 괘탑(掛塔)이라고 할 수 있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일구(一句)는 전하는 설에 의하면 남송의 선종 양기파(楊岐派) 대사인 원오극근(圓悟克勤)이 문하의 한 일본 유학승이 귀국할 때 써 준 글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제자가 일본에 도착하였을 때쯤 배가 전복되고 말았고, 이 글은 이리저리 전하다가 이큐 소쥰의 손에 들어갔다 한다. 이큐는 이 글귀를 보고 다도의 대의를 얻었다 하여 이 글은 일본 다도의 보물이 되었고 지금도 교토의 대덕사(大德寺)에 소장되어 있다.
대덕사는 이큐 소쥰이 사까에 상인들의 도움을 얻어 창건한 절인데 당시 이 절을 중심으로 사까에 상인들과 선승들 사이의 접촉도 많았고 차문화 역시 번창했다. 이큐의 제자 무라다 쥬코가 와비차를 창안하여 선차(禪茶)의 경계를 확립한 것은 이러한 환경적 영향에 기인한 바가 컸으며, 이후 다케노 죠오(武野紹鷗), 센노리큐(千利休) 등의 다도 정신으로 이어지는 선하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차문화계의 일각에서는 이 글은 원오극근의 진적(眞跡)이 아니라 후대에 제작된 것이라 하고, 심지어 원오극근이 그러한 글을 써 주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조차 의심을 품고 있다. 이 문제는 한·중·일 차문화의 우호관계도 걸려 있는 문제여서 단편적인 자료들에 의거하여 함부로 논평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일본 차문화의 정체성을 재정립한다는 점에서 객관성 있는 연구가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의대 철학·윤리문화학과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