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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회 최고기술경영자(CTO)와의 만남'의 주인공인 (주) 성신신소재 임병문(오른쪽) 회장이 지난 14일 김해시 지내동 소재 자사의 연구시설인 (주)컴테크 케미칼에서
대양전기공업 서승오 사장, 바이넥스 이백천 회장, 리노공업 이채윤 사장, BN그룹 조성제 회장(왼쪽부터) 등 CTO 회원들에게 자사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다들 어렵게 지내던 1960~70년대. 추석빔으로 운동화라도 한 켤레 받으면 아이들은 신발코가 하늘에 닿도록 신나게 걸어 다녔다. 이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됐고, 어느새 엄마 아빠보다 더 커진 자기 아이들의 신발을 보며 세월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 이처럼 신발 한 짝에서도 우리는 잔잔한 추억과 가족사를 떠올릴 수 있다.
신발은 인류가 문명생활을 하는 한 영원히 존속될 산업이다. 하지만 그 어떤 산업보다 글로벌화돼 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나이키' '리복' '아디다스'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한때 부산 경제의 견인차였던 신발산업은 1990년대 이후 노동집약형 굴뚝산업, 경쟁력 없는 전통산업의 상징이 되었고 중국과 동남아 기업에 추월당해 침체의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신발산업의 경쟁력 회복은 4000만 켤레의 '신토불이'가 아니라 60억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화'와 '기술혁명'으로 풀 수밖에 없다. 국제신문과 부산과학기술협의회가 주최한 '제15회 최고기술경영자(CTO)와의 만남'에는 세계경영과 기술개발로 사양산업이라던 신발에서 블루오션을 찾은 부산 연제구 거제동 (주)성신신소재의 임병문 회장이 강연자로 나왔다. 지난 14일 성신신소재의 연구개발 거점인 김해시 지내동 (주)컴테크 케미칼 회의실에는 조성제 BN그룹 회장, 이백천 (주)바이넥스 회장, 신재철 거성ENG 회장, 허인구 DSE회장, 강진용 동헌산업회장, 서승오 대양전기공업사장 등 CTO회원과 김진섭 부산대 자연과학대학장, 정의덕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 등 3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사회는 리노공업(주)의 이채윤 사장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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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회장 |
성신신소재는
성신신소재의 임직원은 5000여명, 수출액은 연간 1억 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국내에 남아 있는 인력은 연구개발과 마케팅 전문가 57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중국 등 4개국 5개 공장에 분산되어 있다.
임병문 회장은 "1992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월급 5만 원의 중국 근로자 1명이 하루 100켤레의 신발을 생산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우리 근로자의 월급은 100만 원. 생산량은 같았다. 도저히 경쟁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임 회장은 해외공장 건설로 글로벌화의 벽을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임 회장은 1994년 인도네시아에 신발부품 업체 최초로 현지 공장을 설립한데 이어 1996년에는 태국과 중국 광저우 심천, 1997년에는 베트남에 현지공장을 세웠다. 지난해 1억900만 달러의 매출액을 올린 성신신소재는 해외공장에서 매출액 대비 7.8~16%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성신신소재는 또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1등 기술을 가진 연구중심 기업이다. 지난 10여 년간 기술료로 700만 달러 이상의 로열티를 받고 있다. 주 종목은 신발산업의 핵심인 중창. 중창은 신발 밑창 바로 위에 있는 부분으로 발바닥이 닿는 곳이다. 밑창이 미끄럼 방지 역할을 한다면 중창은 외부의 충격을 흡수하고, 발바닥을 편안하게 하며, 갑피(중창을 제외한 신발의 윗부분)가 쭈그러들지 않게 하는 신발의 골격이자 근육이다.
그러나 신발 중창은 무게가 70Kg이나 되는 금형과 프레스를 이용해서 원자재인 스펀지를 잘라내고 압축기로 눌러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수작업 공정이었다. 임 회장은 1992년 압축기를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 제어를 통해 금형에 직접 원료를 넣고 뻥튀기를 하듯 중창을 만들어 내는 사출성형(injection molding) 방식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기존 압축방식은 20여 과정을 거치는 수작업이어서 1인당 생산량이 하루 100켤레분에 그쳤지만 사출 성형은 3개 과정만 거쳐 1인당 1000켤레분의 생산이 가능했다. 말 그대로 신발산업의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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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니스 요정 마리아 샤라포바의 테니스화에도
성신신소재의 신발 중창이 사용됐다. |
임 회장은 새로운 기술공법 개발과 함께 사출성형 기계, 가볍고 탄력성이 높은 원료까지 독자 제작해 세계 신발시장을 휩쓸었다. 현재 전 세계의 고급 스포츠화 시장 규모는 연간 4억~5억 켤레. 이 가운데 10% 이상인 6000만 켤레가 성신신소재의 중창을 사용한다. 특수화 등을 포함할 경우 성신신소재 중창은 연간 1억 켤레에 이른다.
임병문 회장은
임병문 회장은 이공계가 아니라 인문계를 졸업한 기술전문가로 연간 매출액의 9%를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기술경영자이다. 행정학도였던 그가 오늘날 세계적인 신발 소재 부품업체의 대표로 성장한 계기도 기술 개발에 대한 집념이었다. 그는 1977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신발기업인 화승그룹에 공채 1기로 입사했다. 10년 후인 1987년, 대기업 상사원이던 친구로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엄청난 양의 신발용 특수고무를 주문받았는데 국내에서 못 만들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신발산업 세계 1위인 국내기술로 그 정도 제품을 만들 수 없겠느냐"며 우리나라 유수의 대기업 연구소를 찾아다녔지만 결과는 실패. 하지만 "이 정도 기술은 개발할 수 있다"고 판단한 임 회장은 작은 신발회사를 만들어 독립했다. 낮에는 영업을 하고, 밤에는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본인이 직접 화공약품을 배합한 지 6개월 만에 개발에 성공했다. 반응이 좋았다. 당시 그의 회사는 한달에 1만 켤레 정도를 만들 수 있었는데 한 달에 30만 켤레 분을 보내라는 연락이 왔다.
이후 그가 주목한 것은 앞서 말한 중창 제조공법의 개선이다. 한국신발피혁연구소, 대학 등과 산학협력으로 연구에 매달린 끝에 1992년 사출성형 공법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성신신소재를 단순한 신발부품업체가 아니라 세계적 정밀화학 소재산업체로 전환시켰다. 1991년 수출 500만 달러 탑을 받은 성신신소재는 1994년 1000만 달러, 지난해에는 매출액 1억 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회사 발전의 원동력과 좌절
임 회장은 "10년간 화승그룹에 근무하며 관리 자재 기술 외주 생산관리 등 다양한 부서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했다"며 "이 때의 경험이 기업을 하면서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안목을 키우는 바탕이 되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창업한 뒤 1992년 중국 출장길에 광저우와 심천 간을 자동차로 이동하던 8시간 동안 차창 밖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던 교량, 집, 공장 건설 현장을 보고 중국이 '발전'이 아니라 '폭발'하고 있다고 느낀 그는 기술개발과 해외진출을 기본틀로 삼아 회사를 성장시켰다. 기술개발의 상징인 특허는 현재 국내외에 35개가 등록돼 있다. 공장은 해외에 건립했지만 기술개발을 위해 사상구 삼락동 기존 공장을 1998년 김해시 지내동으로 옮겨 최신형 자동설비를 갖춘 (주)컴테크케미칼을 설립했다. 분기별로 1500종류의 각종 신발을 디자인하고 신소재와 제조공법을 개발하는 이 공장은 신발부품 산업을 고부가가치 정밀화학산업으로 바꾸는 임 회장의 포부가 담긴 연구중심형 공장이다.
외국의 현지 공장 건립도 전액투자 방식이 아니라 자신은 50~70%의 지분을 가지고 현지 기업인과 합작투자 방식으로 성장시켰다. 각종 인허가와 인력관리는 현지 기업인이 담당하고 기술개발과 마케팅은 성신신소재가 맡는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키워 나갔다.
현재는 세계시장에서 알아주는 임 회장이지만 사업을 하면서 위기도 많이 겪었다. 그럴 때마다 세상 일은 역지사지(易地思之)여서 사업이 잘된다고 자만하지도, 어렵다고 낙심할 것도 아니라는 말로 마음을 다스렸다. 1990년대 초반 신발산업이 휘청거리고 거래업체들이 연달아 부도가 나 매출액의 30~40%를 공중에 날려 보낼 때 임 회장은 눈앞이 깜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어려웠던 것은 수금이었다. 영업보다는 수금이 10배나 어려워 경제적 시간적 손실이 엄청났다는 것이다. 임 회장은 "내가 당한 일을 남들은 겪지 않도록 하겠다"며 어려운 속에도 물품대금을 매달 말 현금으로 송금시켰다. 금리가 연 20~30%에 이르던 당시 결제대금을 6개월짜리 어음으로 지급하면 이자수익으로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을 고스란히 남길 수 있었지만 현금 대금 결제의 원칙을 지켰다. 거래업체와의 신뢰는 IMF 때 진가를 나타냈다. 신발 소재는 모두 석유화학제품이어서 환율 상승으로 자고나면 값이 올라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었다. 이때 대기업에도 물품을 주지 않던 거래업체들이 임 회장에게는 원하는 양만큼 공급했다.
성신신소재는 회사 이익의 40%는 재투자, 30%는 종업원, 30%는 주주에게 돌린다는 분배 원칙을 정해놓고 있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처음 공장을 지은 사상구 삼락동 일대는 비만 내리면 물난리가 났다. 폭우가 내린 어느날 아침 겨우 회사에 도착해 보니 간부사원들은 없고 갓 입사한 현장직원 1명 만이 공장을 치우고 있더라는 것. 밀양에서 출퇴근 한다는 이 직원은 밤새 회사가 걱정돼 새벽 기차로 구포역에 도착, 낙동강 둑을 따라 삼락동까지 걸어와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 공장 앞길을 플라스틱 통을 타고 건넜다. 임 회장은 이때 공장의 기계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보다 "나보다 더 공장을 사랑하는 직원들을 위해 어떻게 보답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먼저 직원들 월급날은 어떤 경우에도 지켰다. 또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회의실과 구내식당, 복도, 화장실 등 회사 내부를 특급호텔에 버금가게 꾸미고 눈길 가는 곳마다 동·서양화를 전시해 놓았다. 김해에 있는 (주)컴테크케미칼도 그렇지만 4개국 5개 해외공장도 현지에서는 최고의 시설, 최고의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
# 임회장과 성신신소재미래전략
- "기업경영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죠"
임 회장은 기업경영을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하고 기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운전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성신신소재의 매출 구조는 부품소재 제조 70%, 자체 브랜드 신발 18%, 하바이아나스 등 유명제품 유통 12%이다. 제조 위주의 매출구조를 유통과 브랜드로 다양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부품소재 부문도 신발에서 차량과 선박의 내외장재, 의료용품, 헬밋과 생활용품 등으로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자체 브랜드는 무게가 기존 제품의 1/5(250g)에 불과한 헬스전용 신발인 '런온'을 비롯해 '듀플렉스' '보솜'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성신신소재는 기술확보와 해외 거점 확보를 바탕으로 유통조직화와 자기브랜드화라는 고부가가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임 회장은 또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에너지 자원인 바이오 에탄올을 염두에 두고 있다. 브라질 기업과 합작사업을 하기 위해 구체적인 논의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오스트리아 명예영사를 겸하고 있는 그는 기업활동과 문화의 연계성을 강조했다. 미국 유럽 바이어들은 특급호텔의 프랑스 요리에는 무덤덤했지만, 삼락동 재첩집으로 데려가 땀을 흘리며 뜨거운 국물을 마시게 하고, 도자기 체험 기회를 제공하자 오랫동안 추억으로 간직하더라는 것이다. 임 회장은 "기업활동 전반이 문화와 접목되어야 기업의 가치, 제품의 질, 종업원의 수준이 함께 상승한다"며 나라경제와 기업발전을 위해서는 문화와의 접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