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리성 성길. 안이 밖 같고 밖이 안 같은 선진리성은 속 편한 성이다. 안이면 어떻고 밖이면 어떠냐고 퉁을 놓고서는 드러누운 성이다. 사진=이종설

성은 벽이다.
안과 밖을 나누는 벽이다.
벽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이 겨룬다. 반목한다.
안은 밖을 내치고 밖은 안을 노린다.
벽을 사이에 두고
반목하는 안과 밖.
나를 사이에 두고 반목하는
내 안과 내 밖.
성벽을 따라서
난 바깥길을 걷는다.
성벽은 낮고 짧다.
낮아서 성벽 안을 기웃거린다.
짧아서 얼마 걷지 않아 성벽은 끊긴다.
끊기고 다시 이어진다.
끊기다 이어지고
끊기다 이어지면서 걷는 사람을
미로에 빠뜨린다.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인지 헷갈리게 한다.


사천 선진리성은 안이 밖 같고 밖이 안 같은 성이다. 바깥길로 걸은 것 같은데 와서 보면 성 안이고 안길로 걸은 것 같은데 걸은 사람도 모르게 성 밖이다. 선진리성은 그래서 속 편한 성이다. 안이면 어떻고 밖이면 어떠냐고 퉁을 놓고서는 드러누운 성이다. 성을 닮아서 길도 드러누운 길이다. 걷는 사람을 드러눕게 하는 길이다. 풀밭 같은 길에 댓자로 드러눕게 하는 길이다. 댓자로 드러누워 눈을 감게 하는 길이다. 나를 내버려두게 하는 길이다. 내 안과 내 밖이 어떻게 돌아가든 안과 밖이 어떻게 치고받든 나를 내버려두게 하는 길이다.

다 같은 마음인 모양이다. 어떤 남녀는 풀밭에 드러눕고 어떤 남녀는 남자가 솔방울로 제기차기를 한다. 남자 윗도리를 받아든 여자는 재밌다고 깔깔거린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사람 사는 일 여기가 저긴데 복잡하게 생각할 게 무어 있냐는 듯 깔깔거린다.

"멍게도 한 접시 만 원, 해삼도 한 접시 만 원, 다 만 원!"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해녀 할머니는 깔깔거리는 소리를 놓치지 않는다. 성 아래 돌계단 길목에 평상을 갖다놓고 오고가는 상춘객을 놓치지 않는다. 이래도 한 접시 저래도 한 접시, 이렇게 들리기도 하고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그렇게 들리기도 한다. 평상에 걸터앉는다. 접시가 수북하다.

"우리야 물질하고 사는 사람이 장삿속이 있겠능교. 그라고 봄날 한때만 장사하고 말지 평상시는 물질하고 안 사능교."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바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물때라서 그런지 갯벌이 드러난다. 저 바다에서 굴도 따고 조개도 캐고 저 바다에서 아이들 학교까지 다 보냈단다. 저 바다에서 한 세상, 다 보냈단다. 소금기 묻은 소리가 들린다. 짠내 나는 소리가 바다에서 들려온다.

'바다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바다는 물이 있어서 바다가 아니라/소리가 있어서 바다라는 생각이 든다./물이 밀려가고 밀려와서 바다가 아니라/소리가 밀려가고 밀려와서 바다라는 생각이 든다./물이 빠져나간 갯벌에서/물 위에 사는 것과 물 아래 사는 것이/날고 기며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바다는 물이 있어서 바다가 아니라/소리가 있어서 바다라는 생각이 든다.(뒤 부분 생략)'

내 안에서 소리가 부글부글 끓던 무렵에 쓴 시 첫 대목이다. 부글부글 끓던 소리를 주체하지 못해 쓴 연작시 하나다. 당시 심경이 엿보이는 구절이 있다. '나는 바다를 향해 속에 담아둔 소리를 내지른다./속에 담아둔 소리를 나의 밖으로 내보낸다.' 소리를 속에 담아두는 일도 밖으로 내보내는 일도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일이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이다. 어쩌랴. 그게 사람 사는 일이고 세상 사는 일인 것을. 그게 보통의 삶인 것을.

보통의 삶을 토닥거려 주는 게 사천 선진리성 성길이다. 약하고 물렁할 수밖에 없는 보통사람의 삶을 보듬어 주는 게 안이 밖 같고 밖이 안 같은 선진리성 성길이다. 속에 말을 담아두고 부글부글 끓는 일도 말을 꺼내놓고 아차 후회하는 일도 그게 뭐 어떠냐고 드러눕게 하는 길. 안과 밖이 어떻게 돌아가든 어떻게 치고받든 나를 내버려두게 하는 길. 그게 이 성길이다.

선진리성에서는 바다가 발밑이다. 여느 산성처럼 높은 데서 먼 바다를 내려다보는 성이 아니라 낮은 데서 가까운 바다를 굽어보는 성이 선진리성이다. 바닷물이 출렁이는 성이다. 선진리 선 자도 배 선 자다. 바람이 불면 돛대가 펄럭일 것 같다. 성벽에 올라서서 돌멩이를 던지면 바닷물이 옷에 튈 것 같다.

선진리성 성길은 바다를 굽어보며 걷는 길이다. 출렁이며 걷는 길이다. 펄럭이며 걷는 길이다. 딴딴하게 굳은 줄 알은 가슴에 바닷물이 출렁이게 하고 주눅 들어 지내는 어깨 위로 황포돛대가 펄럭이게 하는 길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멀리 펼쳐진 망망대해.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아무리 낮아도 망망대해 저 바다보다는 낮지 않고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낮으면 낮을수록 올라갈 여지가 넓어진다는 위안을 받으며 걷는 길이다. 그 길에 꽃잎이 내려앉는다.

꽃잎은 평상에도 내려앉는다. 평상을 훔치는 해녀 머리에도 내려앉고 동동주를 따른 잔에도 내려앉는다. 동동 뜨는 꽃잎을 후후 불며 입술을 적신다. 멍게도 한 접시 만 원이고 해삼도 한 접시 만 원이지만 사람들은 시큰둥하다.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은 이미 반술이 돼서 시큰둥하고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은 구경이 먼저라서 시큰둥하다. 멍게 맛있네 해삼 맛있네 굴도 맛있네, 바람을 잡아보지만 역부족이다. 해녀는 그런 내가 고마운 모양이다. 귀여운 모양이다. 초장도 듬뿍듬뿍 주고 물어보는 말에 대답도 시원시원하다.

"저기 보이는 저 바다가 보통 바단지 아나." 좀 친근해졌는지 말을 슬슬슬 낮춘다. 목청을 슬슬슬 높인다. "이순신 장군님이 왜놈들 무찌른 바다 아이가. 왜놈들이 바다에도 빠져 죽고 땅에서도 찔려 죽고 대단했다 카데. 거북선도 저 바다에서 싸울 때 처음 나왔다 아이가."

목소리에 날이 선다. 뱃전을 때리는 물살이다. 뱃전을 때리고 다시 바다를 때리는 물살 소리다. 해녀가 하는 얘기는 임진왜란 때 여기 선진리성 앞바다를 요란하게 들쑤셨던 사천해전. 성길을 걸으면서 안내판에서 읽은 내용이라 낯설지 않다. 맞장구를 친다. "하모, 하모." 얘기도 얼큰하고 술도 얼큰하다. 상춘객은 해녀를 힐끔거리며 나를 힐끔거리며 지나간다. 해녀는 얘기 중간중간에 한 접시 만 원임을 빠뜨리지 않는다.

무슨 소리가 들린다. 밀려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밀려오는 소리 같기도 하다. 물 위에 사는 것이 내는 소리 같기도 하고 물 아래 사는 것이 내는 소리 같기도 하다. 나의 밖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어쩌면 나의 안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하다. 소리는 들리다가 그치고 그리고는 다시 들린다. 소리도 성벽을 따라서 난 길을 걷고 있는 모양이다. 끊기다가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 걷느라 그치다가 들리다가 그러는 모양이다.

꽃잎은 자꾸자꾸 떨어진다. 소리가 나무를 건드릴 때마다 꽃잎은 떨어진다. 길을 걷는 소리가 길가 꽃나무 가지를 건드려서 꽃잎은 떨어진다. 내 속에 담아둔 소리가 나한테서 어렵게 어렵게 필 꽃잎을 떨어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꽃잎이 피기 전에 소리를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흰나비 같은 꽃잎이 봄하늘을 하늘하늘 날아다니고 있다.


# 임진왜란 중 거북선 첫 출전

- 사천해전

선진리성 앞바다인 사천바다. 멀리 보이는 다리가 사천대교다.

사천해전은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거북선을 최초로 이용한 해전이다. 임란 첫해인 1592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사천 앞바다에서 치러진 전투로서 이순신이 이끄는 전라좌수영 함대와 원균의 경상우수영 함대가 공동작전을 펼쳐 왜선 13척을 격파한 역사적인 해전이다.

1592년 임진년 5월 초순 옥포대첩 이후 일본 수군은 큰 타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서해안 진출의 기회를 줄곧 노린다. 이순신 함대는 일본 수군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 같은 달 29일 노량으로 나아가 사천 앞바다에서 경상우수영 수군과 합류, 지형과 조수를 이용하는 한편 거북선을 실전에 투입해 대승을 거둔다.

거북선은 함포로 무장한 최전방 돌격선으로서 적선 격침은 물론 적진을 혼란에 빠뜨리는 임무를 수행해 사천해전 이후 한산도대첩을 비롯한 각종 해전에서 조선 수군의 위용을 상징한다. 조선왕조실록에 거북선을 묘사한 부분이 나온다. '배 위에 판자를 펴서 거북등처럼 만들고… 칼과 송곳을 꽂았다.… 싸울 때는 띠풀을 엮어 만든 것을 덮어 송곳과 칼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여 적이 배에 뛰어내리면 송곳과 칼에 찔리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