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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老에 길을 묻다 <6> 천규석 농민운동가 / 대담 변홍철 녹색평론 주간

농촌공동체 살려야 진정한 자치 가능

유목주의는 정착농경 침탈하는 비자립적 삶

소농 외면한 한국농정, 관료·교수만 배불려

농산물 가공·유통업 대기업서 농민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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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대학 졸업 후 고향인 경남 창녕에 귀농한 '농민'이자, 한살림운동과 공생농두레농장을 통한 농민운동의 선구자이며 저술가이기도 한 천규석(69) 대구한살림 이사. 그는 흙에 바탕을 둔 생명주의 실천가로 도농직거래를 통한 지역자치 공동체의 부활을 위해 애써왔다. 창녕 남지의 공생농두레농장을 10여 년 운영해온 그는 요즘 대구시 남구 대명9동 대구한살림 사무국에서 일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꼴로 농장을 다녀온다고 한다. 천규석 선생과 대담에 나선 이는 녹색평론 변홍철 주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생태주의 잡지로 녹색담론을 이끌어가는 녹색평론의 일꾼이다. 두 사람의 대담은 지난달 29일 녹색평론사 편집실에서 이뤄졌다. 선생은 지난해에만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와 '소농 버리고 가는 진보는 십리도 못 가 발병난다'라는 2권의 저서를 내놓았다. 이들은 지난 1987년의 민주화운동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농업에 대한 정부와 정치인들의 근본적인 인식이 부족하다는 데 공감하면서 1시간 여 동안 농업과 농촌문제를 토론했다.

천규석 대구한살림 이사가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라는 자신의 저서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농업과 농촌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변홍철 주간=선생님, 지난해는 책을 2권 내셨는데 지난 한해가 어떠셨습니까. 또한 대구한살림의 살림살이는 좀 어떠하신지요.

천규석 이사=대구한살림은 제가 능력이 없어 장사가 잘 안돼요. 대형매장 등과 비교하면 불편하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이 제 때 없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이용을 잘 안 해요. 조합원 숫자가 줄지는 않아 실패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변=책에 대해서도 말씀을 좀 해주시지요.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라는 책은 자본과 산업문명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했는데요. 사회적 논쟁이 심화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유목주의를 왜 침략주의라고 규정하시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천=책을 내면서 산림자원만 훼손하는 것 아닌가 싶어 미안하고 부끄럽네요. 유목주의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나 심지어 경전처럼 떠받드는 학자나 지식인도 있고 '무식한 농사꾼이 들뢰즈 같은 학자의 원서도 안 읽고 유목주의를 비난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에요. 그러나 모든 텍스트는 자기 안목으로 읽는 것이고 그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봐요. 아무튼 저 같은 농사꾼이 보기엔 지금 유행하는 유목주의는 세계시장주의나 상업주의와 한 통속이라는 것, 나아가 국가 이데올로기와 결코 상반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변='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라는 선생님의 비판은 요즘 정부가 하는 이미지 조작을 보면 수긍이 갑니다. 가령 최근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정부 측 광고를 보면, 말을 타고 깃발 휘날리며 대륙을 달리는 침략주의 혹은 팽창주의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거든요.

천=진리는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지요. 유목주의에 아무리 정교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해도 그것은 정착 농경민에 대한 침략이거나 교역으로 살 수밖에 없던 비자립적 삶의 방식임에 틀림없죠. 자생·자치적 농촌 공동체를 흔들고 해체해야만 유지가 가능한 오늘날의 시장주의와 수탈이 본질인 국가주의는 그런 의미에서 유목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죠.

변=한미FTA라는 큰 변수가 있겠습니다만, 지금의 우리나라 농정이 앞으로 농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천=지금까지 보면 농정이란 게 오히려 농업을 죽여왔어요. 농업을 핑계로 먹고사는 관련 귀족들, 관료와 교수들 배만 불리는 것이지요.농업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각종 예산을 책정해 자기네들끼리 나눠먹는 식이지요. 심지어 농촌을 황폐화하는 수많은 도로 공사들도 그런 농업 관련 예산에서 나오는 거예요. 실제 소농들을 소리 없이 정리하면서 농업 기득권 세력들의 이익만 챙기게 하는 것이 지금 한국 농정의 본질이에요.

변=올해는 대선도 있고 여러 의미에서 소위 '87년 체제'에 대한 평가와 극복이 우리사회의 화두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습니다만.

천=87년 이후 소위 '민주화세력'들도 그전의 박정희 식 성장주의 세력과 본질적으로는 마찬가지라고 봐요. 처음부터 농업에 대한 철학, 진정한 민주주의의 토대로서의 농업에 대한 인식은 없었다고 봐야지요. 실제로 87년 이후 20년 동안 농업은 엄청나게 퇴보했고 몰락해왔잖아요.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부의 독점과 갈등, 차별, 나아가 엄청난 생태계 파괴, 민주주의 위기 등은 결국 이러한 농업의 몰락, 농촌공동체 파괴와 관련이 있어요. 그렇다면 87년 체제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토론과 논쟁도 농업의 가치를 중요한 화두로 끌어들여야만 의미가 있을텐데, 농업 및 생태환경 문제가 그 논의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정치가 편 가르기, 파워게임에만 몰두해 있으니, 풀뿌리 민중의 생존이나 운명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변=지난해 녹색평론이 중심이 돼 '지역직거래'를 화두로 농업 관련 좌담을 열기도 했는데요. 그 핵심은 도시의 노조 및 학교와 지역 농민회 간의 직거래를 중심으로 농업 회생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자는 것이지요. 이 새로운 길을 잘 닦아나가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말씀해 주십시오.

변홍철 주간
천=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크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 좌담 이후 노동자, 농민 단체 관계자들이 대화를 해온 것은 분명합니다. 농민은 원래 자치적 인간이고 농촌마을은 하나의 작은 자치공화국이에요. 그런데 오랫동안 농업이 시장에 너무 깊이 편입되다 보니 농민과 농촌이 가지고 있던 자치 역량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지금 농촌은 생산만 하고 유통이나 가공은 모두 대도시 상인이나 대기업에게 빼앗겼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농산물 유통을 도시에서 하지 말고 사람과 돈을 농촌으로 이전해서, 농촌이 중심이 된 유통을 하자는 것이 직거래운동의 취지 아닙니까. 농촌을 떠나온 사람들을 설득해 유통의 역량도 농촌으로 되돌려야 해요. 가공을 비롯해서 대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는 부문들도 농촌마을로 되돌리는 운동이 필요해요.

변=바로 그런 재구조화, 사회적 재편을 위해서도 좀 더 나은 정치권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합니다. 전농 같은 농민운동측도 그렇고요.

천=현실적으로 그런 정부를 기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조직이 없이는 불가능하고 지역에 기반한 풀뿌리 차원에서의 자치적인 노력이 선행되어야 겠지요. 무엇보다 '자기혁명' '자치혁명'이 필요하고 그것이 토대가 돼야 근본적인 삶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변=지난 95년께 시작한 창녕 공생농두레농장은 요즘 어떻습니까. 두레농장 10여 년을 돌아보시면서 한 말씀해주시지요.

천=사실 두레농장은 땅이 1만 평 정도에 불과해요. 뜻있는 젊은이들이 이를 근거로 해 인근 마을들을 재공동체화 하자는 뜻에서 마련한 것인데 처음엔 귀농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와서 주위 마을과 유대를 가져 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어요. 무료 한방 진료나 심지어 무료 과외까지 해주기도 했지만 당시만 해도 처음에 유기농을 하니 '도시놈들이 들어와 별 미친 짓을 다한다'며 비웃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일반 농민들도 유기농을 하지 않으면 팔아먹기도 힘들게 됐는데 문제는 판로예요. 판로 개척이 안 되니 이제는 유기농 하겠다는 농민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형국이 돼 버렸어요. 이런 점에서 마을공동체 실험은 실패에 가깝지요. 유기농 판로는 정말 문제예요. 이런 데서 진정한 의미에서 도농직거래 도농연대가 이뤄져야만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 늘 건강하시고 오래 사셔야 합니다.

천=이제 앞으로 내가 할 일이 더 있겠어요. 늘 잔소리나 하고 실수나 거듭하는 것 말고.


# 약력

◇천규석

1938년 경남 창녕 출생. 서라벌예대 및 서울대 미학과 졸업. 65년 귀농. 90년 한살림운동 대구공동체 조직. 창녕 공생농두레농장 운영.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2대 공동의장 역임. 현재 대구한살림 이사. 저서로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 '쌀과 민주주의'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 등 다수.

◇변홍철

1969년 경남 마산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98년부터 녹색평론 근무. '대구경북 농업회생과 지역자치를 위한 사회연대' 정책위원. 대구지역청년단체 '땅과 자유' 회원. 현재 녹색평론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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