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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2학년 때 소아암이 발병했지만 완치 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김남균씨. 그는 소아암 병력이 있더라도 대부분은 결혼생활에 문제가 없다고 단언했다. 이용우기자 ywlee@kookje.co.kr |
민간보험사는 소아암 완치자의 보험은 받아주지 않는다. 국가의 의료비 지원도 최초 발병에만 집중돼 있다. 재발했을 경우 집을 팔거나 빚을 내 치료비를 감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결혼'이나 '성'을 둘러싼 근거없는 유언비어와 편견도 '소외받은 우리들의 이웃'을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다.
"병은 깨끗하게 완치됐는데 민간보험에는 가입이 안돼요."
부산 B대학 3학년인 장민호(가명·25)씨는 스포츠맨이다. 재생불량성빈혈 완치 판정을 받은 7년 전부터 재활 운동에 매달렸다. 볼링은 수준급이다. 고등학교 때 학교 대표로 전국볼링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180㎝의 훤칠한 키에 보디빌딩으로 단련된 근육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그런데 장씨는 민간보험 '제외' 대상자다. 소아암을 앓았다는 병력 때문에 어느 보험사에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난치병을 앓았을 경우 또 다른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장씨의 어머니(50)는 "완치 판정을 받아 사회생활에 이상이 없는데도 보험가입이 안된다"면서 "암을 뺀 상해보험이라도 가입시켜줘야 하지 않느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소아암 완치자의 보험 가입이 원래부터 제한됐던 것은 아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전에는 치료 종료시점부터 5년이 경과했을 경우 보험 가입이 허용됐다. 그러나 '경제 회생'이라는 명목으로 기업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민간보험사가 난치병 환자의 보험계약을 거부하더라도 제재할 수단이 사라져 버렸다. 동아대병원 소아암 완치환자 가족 모임인 '동심회' 김숙녀 회장은 "재산이 최소 10억원은 있어야 병 걱정 안하고 자녀를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부모들의 푸념섞인 걱정"이라고 한숨지었다.
전문가들은 국가의 책임을 강화해 사보험 공백을 채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국가 암관리 사업은 △암 조기검진 △소아암 의료비 지원 △재가 암환자 관리 △암환자 지원 확대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동아대병원 왕경희 사회사업실장은 "소아암을 앓았던 환아들의 가장 큰 걱정은 질병의 재발이나 합병증"이라며 "완치 후에도 국가에서 제공하는 정기 무료 암진단을 받을 수 있다면 재발예방은 물론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가 5대 암(위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간암 대장암)에 한정된 조기 검진제도를 소아암 완치자에게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산대병원 소아과 임영탁 과장도 "소아암을 이겨낸 환아들이 건강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재발 예방 프로그램을 시행할 시기가 됐다"면서 "완치환자 정기 검진 프로그램도 한 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아암 완치자에 대한 재발·후유증 예방프로그램의 필요성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그러한 지적이 타당하다고 판단, 지난해 '암 환자 재활프로그램개발사업' 예산을 신청했지만 갑상선·전립선암 등 현재 암 환자 관리에 대한 예산이 부족한 상태여서 완치자 재활프로그램 신청 예산은 삭감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완치자 추적 관리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의사들에게 강제할 수 없는 부분이며 국가가 나서려면 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한 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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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부산 서구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부산지부에 모인 '천사사랑회' 회원들. 천사사랑회는 소아암 완치자 부모나 아이를 먼저 떠나 보낸 어머니들의 모임으로 4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배성재기자 passion@kookje.co.kr |
◇ 사랑도 근거없는 왜곡으로 '주홍글씨'
"방사선 치료 재발률 높다"
"기형아 낳는대" 수군수군
소아암 환자와 가족들을 괴롭히는 또 다른 편견은 '결혼'과 '출산'이다. 완치자나 일반인 모두 이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방사선 치료를 받은 환자가 결혼하면 90% 재발한다거나 기형아를 낳는다는 근거없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 완치 판정을 받은 환아나 보호자들이 '암 병력'을 숨기기 위해 연락을 끊는 경우가 많아 정보는 더욱 부족하다.
동아대병원 동심회 김숙녀(42) 회장은 "사실 부모들은 완치 후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지켜 보고 싶은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연세대병원 소아과 전공의 김남균(28)씨는 소아암 환자들에게 '희망 천사'이다. 중학교 2학년이던 1993년 비호지킨스 림프종을 앓았던 그는 1년2개월 동안의 항암치료 과정을 견디고 의사가 됐다. 지난해 6월에는 의예과 동기인 부인과 결혼해 내년쯤 2세를 가질 계획이다.
"의학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았다면 일반인과 다를 바 없어요. 아내도 소아암 병력을 알았지만 '완치'의 의미를 잘 알기 때문에 결혼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김씨는 완치된 소아암 환자들이 결혼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않기 위해서는 의사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완치 후 합병증만 없으면 결혼생활에 문제가 없다는 정보를 분명히 전달해야 합니다. 기형아 출산 등의 유언비어가 떠돌지 못하도록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는 특히 "청소년기에 소아암이 발병했을 경우 정자를 미리 받아 정자은행에 보관해 두면 2세를 보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일찌감치 소아 종양과로 진로를 택했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받고 있는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해서다. "소아암 병력이 '주홍글씨'가 돼서는 안됩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 속에서 힘겹게 완치된 아이가 또 다시 사회적 차별이나 편견 때문에 '제2의 투병'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작지만 큰 김씨의 '외침'이다.
◇ 환자 부모들의 아우성
"환자생애 추적 논문 한편 없어요"
- 처방약 병원 설명 자세하게
- 의료비 지원 대상폭 늘려야
엄마들은 괴롭다. 소아암 환자보다 더 힘들다. 그래서 할 말이 많다.
소아암 환아 보호자 모임인 부산대병원 '천사사랑회' 이영희씨는 "한평생 시한폭탄을 안고 산다"고 했다. 항암제의 부작용이나 합병증이 언제 생길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완치 판정을 받아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빨만 흔들려도 '혹시나'하는 마음에 종합병원으로 뛰어간다. 할 수 없이 많은 어머니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생계전선에 뛰어든다. 살림하랴, 아이 돌보랴, 돈 벌랴…. 소아암 환자를 둔 엄마는 '수퍼우먼'이 될 수밖에 없다.
이씨는 "아이가 아픈 것도, 몸이 아파 공부를 못하는 것도 엄마 탓으로 돌리는 주변의 시선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한숨을 쉬었다.
5년 전부터 화장품 판매업을 하는 김지혜(가명·42)씨. 올해 중학생이 되는 아들은 신경모세포종 진단을 받고 치료 끝에 3년 전 완치 판정을 받았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남편이 화난 표정으로 '친정에 소아암 환자 없었느냐'고 묻더군요. 너무 서러워 밤새도록 울었어요." 부산대병원 소아과 임영탁 과장은 "대부분 소아암은 후천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선천적으로 발생하더라도 유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소아암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이나 편견을 떨쳐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주영(가명·39)씨는 아이를 놀이터에 데려가지 않는다. "저 아이가 백혈병에 걸려 치료를 받았는데, 언제 죽을지 모른다더라"라는 수군거림을 듣기 싫어서다. 병원의 '항생제 처방실태' 대목에선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씨는 "항생제는 종류에 따라서 심장에 무리를 줄 수 있고, 불임을 초래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누구 하나 설명을 안해줘요. 오히려 주변 부모들에게 듣는 정보가 더 많다니까요"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다른 부모는 "만약 우리 아이에게 처방한 약이 어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지 안다면 더 조심하고 대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생불량성빈혈 환아를 둔 김진경(가명·49)씨는 "아이의 눈이 최근 갑자기 나빠졌어요. 혹시 골수이식 수술이나 항생제 때문인지 의사에게 물었더니 '의학적으로 밝혀진 게 없으니 지켜보자'는 말만 하더군요."
학계의 연구 부족도 도마에 올랐다. "국내에선 소아암 환자의 생애를 추적한 논문이 하나도 없어요. 사실 부모들이 궁금한 건 어떤 부작용이 많이 발생하는지, 사회생활에 무리는 없는지, 결혼해도 잘 살 수 있는지 하는 거잖아요." 결혼 적령기의 딸을 둔 부모의 애타는 심정이다.
보건복지부가 소아 암환자 의료비 지원 대상 기준으로 삼은 연령 기준 '18세 미만'을 민법상 미성년자인 만19세까지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18세 이상 환자의 경우 의료급여 수급자(1, 2종)로 선정되거나 국가 암 조기검진 사업에 의해 암이 발견된 경우, 법정 본인부담금 중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액수가 적을뿐 아니라 비급여 부분은 본인이 전액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정정애 부회장은 "환자 가족들의 의료비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선 최소한 고3때까지만이라도 국가가 지원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박미주 사회복지사는 "소아암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와 내 아이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병이란 생각으로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사회1부 광역이슈팀=이노성 배성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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