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생로병사로 요약된다. 생로병사는 거의 병원과 연관된다. 병원은 그만큼 인간의 삶에 중요한 요소이고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시설이다.
미국의 병원은 지역사회와 잘 연계돼 있다. 주민들을 포함한 환자들에게 수준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여기에 덧붙여 지역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이보다 더 부러운 것은 병원이 나눔과 베풂의 현장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산업으로서의 의료
‘지역경제 유발효과 연간 21억달러(약 2조5000억원), 고용창출 연간 3만5459명, 지방세수입 4540만~5010만달러(530억~600억원)’.
미국에서 암 치료분야의 1, 2위를 다투는 텍사스주 MD앤더슨 암센터가 지난 2002년 소재지인 휴스턴시의 지역경제에 기여한 각종 수치들이다.
휴스턴 남서경제연구소에서 분석한 이 자료는 끝부분에 ‘MD앤더슨은 휴스턴시와 텍사스주 경제에 절대필요한(vital)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암치료를 받아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이 병원은 750병상 규모의 텍사스 주립대학 부속병원이다. 부산지역 대학병원들보다 병상규모는 작다. 그러나 고용인원은 의료진을 포함해 총 1만4127명에 이른다.
지난해 신규등록환자 2만2000명 등 50만명 이상의 암환자를 치료했다. 신규환자 가운데 절반은 휴스턴과 텍사스 주민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그밖의 지역이나 외국 환자들이다.
하루 2500명에 이르는 외래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오고가며 지출한 비용까지 포함한다면 이 병원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은 대기업이나 웬만한 공단의 규모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취재에 동행한 과학기술부 주명선 사무관은 “단순한 보건의료기관의 범위를 넘어 고부가가치 산업체라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 위치한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 120년 전통의 이 병원은 MD앤더슨 암센터와 함께 미국 최고의 암전문병원으로 꼽힌다. 규모는 427병상. 지난 2002년 외래환자가 37만4661명이나 된다.
연간 방사선 치료 11만여건, X선 검사 및 특수 검진 23만여건을 시행하는 이 병원은 진료수입 9억달러를 포함한 수익이 11억7510만달러(1조4000억원)에 이른다. 고용인력도 의사 기초의과학자 간호사 등 1877명을 포함한 7953명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1시간이면 도착하는 볼티모어는 인구 65만명의 메릴랜드주 최대의 도시. 19세기초에는 미국 철도의 동쪽 출발지로, 또 조선해양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이 도시는 근래들어 존스 홉킨스 대학병원이 옛 영화를 대신해 주고 있다. 각종 조사에서 10여년째 미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으로 선정된 이 병원은 쇠퇴하는 지역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볼티모어 일대 7개 의료시설에 1376병상을 운영하는 존스 홉킨스 대학은 의사와 기초의과학자 3320명, 간호사 4080명 등 2만2500명을 고용하고 있다. 2002년 한해동안 154만여명의 외래환자를 치료했으며 연간 수익은 27억달러(3조2000억원)에 이른다.
볼티모어시는 병원 운영에 모든 행정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존스 홉킨스병원의 메인 센터가 있는 곳은 주변이 모두 할렘가다. 이마저 경기침체로 거의 빈집들이다. 이런 빈민가를 존스 홉킨스 병원이 구입해 병원건물을 신축, 미국 전역과 세계 각국의 환자들을 유치하고 있다. 병원이 도시재개발 사업까지 하는 셈이다.
이 병원의 방문교수인 동아대의대 차문석(산부인과) 교수는 “어떤 시설도 들어서기 꺼리는 할렘가에 병원을 지어 환자를 유치하기에 시당국도 땅 매입에서 건축까지 모든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주민들도 병원측에 감사하고 있다. 병원에서 10㎞ 가량 떨어진 주택가에 살고 있는 차 교수는 “존스 홉킨스 병원에 근무하는 것을 알고는 아파트 주인이 월세를 다른 세입자보다 20% 할인해 줬다”며 “볼티모어에서는 일반적인 관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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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D앤더슨 암센터 2층 휴게실 벽면에 빽빽이 붙어있는 기부자 명패(사진 상). 뉴욕의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가 폐암연구비 모금을 위해매년 개최하는 자선마라톤 대회에는 폐암 생존자와 가족은 물론 사망자의 가족까지 참가한다. |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볼티모어 컨벤션센터에는 수만명이 한꺼번에 모이는 국제 의료학술대회와 의료장비전시회가 일년에도 수차례씩 열린다. 병원이 컨벤션 사업까지 측면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병원들은 우리와 달리 입원치료가 아니라 통원치료 위주다. 병원 주변에는 통원환자와 보호자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호텔과 콘도들이 성업하고 있다.
휴스턴의 MD앤더슨 암센터는 아예 병원안에 로터리클럽에서 운영하는 10층 규모의 호텔이 들어서 있다. 시내 외곽에는 이 병원을 중심으로 9개 병원이 밀집된 텍사스 메디칼센터의 환자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호텔이 6~7곳이나 되고 중소규모의 콘도형 모텔도 성업중이다. 병원의 발전이 관광산업으로 바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나눔과 베풂의 현장
휴스턴 MD앤더슨 암센터 1층 로비는 특급호텔 같은 분위기다. 실내에는 바이올린 선율이 은은하게 울려퍼진다. 안내테스크에는 백발의 노부인 2명이 외부인들을 맞이했다. 바이올린 연주자나 노부인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의료시설을 제외한 취재팀의 병원 투어는 30대 후반의 존 오하러씨가 담당했다. 그도 PR실에 소속된 30여명의 자원봉사자 가운데 한명이다. 세무사인 그는 한달에 두번씩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1시간 뒤 로비로 되돌아오니 이번엔 미모의 30대 백인 여성이 피아노를 연주했다. 암 환자인데 자원봉사자로 등록해 통원치료 때마다 30분씩 연주를 한다. 1시간 뒤에는 또다른 자원봉사자가 로비와 2층 휴게실에서 악기를 연주할 것이다. 이 병원의 자원봉사자는 1500명. 연간 27만시간을 봉사하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한복판에 서있는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도 721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자원봉사자 가운데 절반 가량이 암치료를 받아본 환자이거나 보호자들이다. 암과의 투쟁에서 생존한 사람들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까지 환자들의 수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병원은 기부의 대상이기도 하다. MD앤더슨 암센터 8층의 소아암 입원실은 ‘조지 E 포먼 소아 및 청소년 입원환자실’이다. 헤비급 권투선수인 포먼이 기부한 돈으로 내부를 새로 꾸몄다.
건물 3층 유방암 센터의 진료접수대에는 중년여성의 실물 크기 흉상이 있다. 이곳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은 전 주지사 부인이 감사의 뜻으로 거액을 기부한 것을 기려 병원측에서 세운 것이다. 2층 휴게실에도 20m 길이의 벽에 벽돌 크기의 기부자 명패 648개가 빽빽이 붙어 있다.
이처럼 개인 또는 단체가 기부한 돈이 지난 2000년에만 8680만달러(1300억원)에 이른다. 1999년 완공된 13층 규모의 병동 등 대형 병동 4개도 개인 기부금으로 건립됐다.
외부의 기부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병원은 구내식당의 음식값이 외부보다 1.5배 이상 비싸다. 의료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렇게 모은 수익금(모금)은 환자들의 복지를 위해 쓰인다.
기부자들을 위해 병원측은 최대의 존경과 감사를 나타낸다. 존스 홉킨스 대학병원은 최근 완공한 12층짜리 임상연구동을 거액기부자의 이름을 따 ‘로스’빌딩으로 정했다. 빌딩안에 들어가면 각 층은 물론 교수연구실마다 기부자의 이름이 따라 붙는다. 출입문에 붙어 있는 교수들의 명패는 언제라도 바뀌지만 병원발전을 위해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은 영원히 남아 있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의 토마스 패시 수석부원장은 “미국은 재산상속보다는 기부를 미덕으로 삼고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것을 중요한 덕목과 경력으로 인정한다”며 “이러한 문화가 병원을 나눔과 베풂의 장으로 만들며, 병원측도 환자와 지역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 미국 = 손동운기자
News2000 system
◇MD앤더슨 암센터의 규모 및 휴스턴 지역경제 파급효과 (2002년도) |
병상수 |
750개 |
직 원 |
1만4127명 |
자원봉사자 |
1500명 |
외래환자 |
44만8690명* |
연간수입 |
10억8000만달러 (1조2787억원)* |
지역경제파급효과 |
21억2800만달러 (2조5195억원) |
주민소득증대효과 |
13억3900만달러 (1조5853억원) |
신규고용창출효과 |
3만5459명 |
자료출처 : 남서경제연구소(Southwest Business Research L.L.C.)*는 2000년 통계
<참고> 1. 부산지역 A대학병원 규모(2003년) 병상수 1008개, 직원 1634명, 자원봉사자 276명, 매출액 1290억원 연간 외래환자 72만9337명 2. 동남권 원자력의학원(2007년 완공) · 병상수 200개, 필수요원 310명, 생산유발효과 1조2479억원(5년간) 취업〃 14만3977명 (〃) · 병상수 500개일 경우 필수요원 740명 · 중입자가속기 건설시 필수요원 100명이상 추가, 관련산업분야 1만8000명까지 신규고용 창출 <자료 : 부산발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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