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킹스 연구소. 박사급 연구원 80여명, 지원인력 140여명이 확고한 재정적 뒷받침과 연구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국가전략과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곳. 미국의 자존심과도 같은 이 연구소를 세운 이는 목재상 부르킹스였다.
덴마크 코펜하겐 미래학 연구소.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력한 미래문제연구 집단 가운데 하나. 최근 ‘정보화 시대 이후는 무엇인가’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라는 보고서를 발간, 감성시장의 콘텐츠를 제시한 곳.
삼성경제연구소. 국내 네티즌 싱크탱크 접속 1위. 연간 예산만 2백억원. 경제 사회 행정 각 분야에 포진한 석·박사 연구원 82명이 기업 컨설팅과 정부정책보고서 등 매년 150~200건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곳.
이런 세계적인 연구소가 부산에 있다면. 전문가들은 이런 가정이 결코 꿈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지역의 리더와 학계, 경제계가 눈을 크게 뜨고 인재육성 전략을 펼친다면 실현못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부산의 싱크탱크라 불리는 연구소들은 척박한 연구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부발연 위상정립 시급=“제대로 된 연구를 하려면 현장조사, 사례 및 문헌조사, 설문조사 등이 필수적이나 현실적으로 손이 안따라 갑니다. 후배들이나 아는 인맥을 동원해 밥 사주며 주어진 과제를 처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부산발전연구원의 한 연구원이 털어놓는 연구현실은 막막한 느낌을 갖게 했다.
지난 92년 문을 연 부발연은 시 출자금 33억원, 민간 72억원 등 1백5억원의 기금으로 설립된 지역의 연구기관. 지역경제, 환경, 교통 등 7개 분야에 15명의 연구원이 일하고 있으나 재정난에 인력난이 겹쳐 깊이있는 연구를 못하고 있다.
열악한 여건은 질낮은 연구로 이어진다. 새로운 트렌드 연구나 정책연구는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있으며, 기존연구를 답습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매년 40억~80억원의 운영비를 지원받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나 경기개발연구원 등 타지역 연구기관과 달리, 기금의 이자(2001년 5억7천만원)로 운영비를 조달하는 부발연은 IMF 이후 금리하락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박사급 42명을 포함해 상임 연구원만 52명인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나 160여명의 연구진을 거느린 국토연구원등 국책연구기관과는 연구여건에 있어 비교 자체가 안된다.
전문가들은 “부발연이 홀로서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재원확충이 시급하고, 현재 부산시장이 맡고 있는 이사장직도 민간으로 넘겨 최소한의 자율성을 확보토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시는 올해 처음으로 부발연에 5억원(2억원은 세금 체납액, 실제로는 3억원)을 지원하는 응급처방을 했으나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타 연구소=부산시 정책개발실의 위상도 재정립해 연구체제를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1실 3부 2센터 체제로 19명의 석·박사급 연구원이 일하고 있으나 계약직 공무원이란 한계가 있는데다 대부분의 연구과제가 각 실·국·과의 업무지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것. 일각에서 각 부서의 ‘팀 닥터’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
민간 차원의 연구소로는 부산경제연구소, 동남발전연구원, 동남경제연구원 등이 있으나 대부분 업체에 대한 종합경영컨설팅을 제공하는 수준. 부산경제연구소 김형구 소장은 “부산에는 영세기업이 많고 시장규모가 적어 싱크탱크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책적 제도적 장치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산업자원부가 출연한 한국신발·피혁연구소(부산진구 당감동)는 연간 50억원의 재정규모로 50여명의 연구원이 큰 어려움없이 연구에 임하고 있다.
▲대학 연구소 역할 미흡=대학 연구소들의 역할도 미미하다. 대학마다 수십개씩 연구소가 있지만 전임연구원이 아예 없거나 연구 성과물 없이 한해를 보내는 ‘이름뿐인’ 연구소도 적지않다.
연구소 43개가 있는 부산대의 경우 전체 연구원 208명 중 전임연구원은 16명에 불과하고 지난해 연구논문을 발간하지 못한 곳도 5곳에 달했다.
부산 P대학 D연구소. 7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PC 1대, 노트북 2대 그리고 스캐너와 카메라, 프린터 1대가 장비의 전부다. 책으로 둘러싸인 연구실은 보직교수가 2년 임기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내세울 만한 연구실적이 없다.
동아대는 23개 연구소에 박사급 전임연구원 8명을 두고 있으나, 2001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과제연구비 지원을 한 건도 받지 못했다. 지난해 과제연구비를 지원받은 전국 30위권 대학 중에는 부산지역에서 부산대가 유일했다.
동아대 성장현 연구처장은 “예산 부족으로 전임연구원을 두기가 힘들고 연구과제가 있어도 연구인력이 없어 큰 어려움을 겪는다”며 “연구소끼리 네트워크를 구성해 연구 프로젝트를 공동수주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 박창희기자
/ 임은정기자